제로존 이론
Posted by intherye on 2007년 08월 26일
제로존 이론
yy님 블로그에
라고 쓴 적 있다. 그 땐 지면상에만 공개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다시 보니 넷 상에도 기사가 공개되어 있네? 함께 디벼보자.
망상의 징후가 이토록 뚜렷하게, 그리고 전혀 다른 무언가-과학?-로서 주요 언론에 묘사되는 일은 흔치 않을 듯…하긴 하지만 사실 종종 눈에 띈다. 하하하.
아래 모든 인용 출처는 신동아 홈페이지입니다.
지금부터 신동아는 15년 동안 ‘미친 듯’ 수만장의 수식(數式)을 써내려간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풀어 나갈 것이다.
실험기구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 그러나 눈에 띄는 게 있다. 사람 키 높이만한 육중한 금고다. 양동봉 원장에게 물어보니 연구원에 7개가 분산돼 있다고 한다.
금고 안에는 연구원의 핵심 자산이자 양 원장의 ‘혼(魂)’이 담긴 노트가 들어 있다. 8절지 크기의 그 노트엔 양 원장이 ‘뭐에 홀린 듯’ 써내려간 수학 공식이 빽빽하게 담겨 있다. 그는 “집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도 금고 안에 있는 노트는 소실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39세 되던 해 그는 안락한 삶에서 ‘이탈’하고 만다. 1992년 가을 오전 진료를 끝낸 양 원장은 편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엔 흰 종이와 펜이 놓여 있었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종이에 뭔가를 적어 나갔다. 원형성, 원칙성, 동인성, 방향성, 보상성, 회귀성, 그리고 통일성. 각기 ‘성(性)’으로 끝나는 7개의 단어를 보자 그는 “마음이 편해지고, 삶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는 내가 써놓고도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뜻 같다. 모든 것은 다르지만(원형성)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원칙성). 그것을 움직이는 원인이 있고(동인성), 또 방향이 있다(방향성). 부족한 것을 보완하려는 속성(보상성),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속성(회귀성)이 있다.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그 자리는 예전의 자리가 아니다(통일성).”
총 21자, 7개의 단어를 발견한 양 원장은 그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도 그랬고, 복잡한 과학책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것도 그랬다. 그는 1992년 10월 대전에 미래과학연구소를 설립한 뒤 진료나 수술이 없는 날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과학 교과서를 탐독했다.
줄잡아 3000권의 책을 읽었다는 그의 독서법은 특이하다. 읽었다기보다는 베껴 썼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 내용을 베꼈고, 그러다 지치면 그 부분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베끼고, 사색하고, 베끼고, 사색하기를 거듭하면서 그는 수학과 물리학의 오묘한 세계에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이런 기이한 행동에 부인은 물론 아이들까지 어리둥절했음은 불문가지. 아들이 병원에 나가는 날보다 집에서 수학 공부하는 날이 많아지자 그의 어머니마저 견디지 못했다. 게다가 병원과 집을 대전에서 속초로 옮기고, 병원은 후배 의사에게 맡기자 주위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속초에 가서도 이어졌다. 바닷가에 책상을 펴고 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개나 고양이, 돌고래 혹은 바이러스와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를 ‘엉뚱한 몽상가’로 치부했다.
그가 공부하는 방법은 통상적인 스타일과 다르다. 답을 먼저 발견하고 난 뒤, 그 답이 나온 원인을 추적하는 귀납법이라고 할까. 그 답은 직관을 통해 나왔다. 까닭도 없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수식이나 수치를 그는 종이에 적었다. 지금도 양 원장의 잠자리 옆엔 늘 노트와 펜이 놓여 있다.
그의 직관력은 대부분 잠을 잘 때 발현됐다. 낮엔 책을 읽고, 밤엔 숱한 방정식과 놀았다. 꿈에서 수학 공식을 보고, 일어나 ‘미친 듯’ 종이에 적어 나갔다. 이 때문에 그는 의식이 잠들고 무의식이 활동하는 새벽을 좋아했다.
그가 복소수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은 ‘1’이란 존재의 의미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허수에도 붙어 있는 숫자 1의 존재(i×1=i이란 뜻에서).
양 원장은 숫자 1과 에너지적으로 닮은 중력상수, 플랑크 길이와 허수개념을 이용해 차수가 10-86인 무차원수를 계산했다. 이 수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수이자, 제로존 이론에서 ‘무한 개념’으로 연결됐다.
양 원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창 시절 선사(禪師)들의 말씀을 즐겨 읽었던 그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1이란 숫자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 적용해보았다.
그가 설명한 말을 기자의 언어로 풀어보면 이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로서 1을 발견했더니 공(空=0)이었고, 공(空=0)인 줄 알았더니 또 다른 1, 혹은 1의 쌍둥이인 -1(허수)이었더라.”
그의 논법에 따르면 0 안에는 +1과 -1이 공존한다. 이걸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해도 좋고, 천부경에 나오는 일석삼극(一析三極)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양 원장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그가 이 이론을 제로존(Zero Zone)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0의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인간의 인식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을 양 원장은 0의 세계로 보았다.
예컨대 물의 특정 온도를 자연의 상태라고 치자. 그럼 물의 온도를 재기 위해 인간이 온도계를 들이대는 순간, 온도계라는 기기가 포함된 물의 온도는 변화한다. 결국 인간은 절대 자연 상태의 온도를 알 수 없는 셈이다. 온도계를 대는 순간 오염되니까. 파악하려고 측정하는 순간, 대상의 본성은 사라지면서(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미 과거가 된다.
양 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질문하는 기자에게 질문하는 법이 틀렸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기자에게 질문이 틀렸다는 건 ‘옷 벗으라’는 말과 같다. 질문을 업(業)으로 삼는 기자가 틀린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니까.
그는 “있냐? 없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매우 난감한 요청이었다. 있느냐, 없느냐는 질문은 ‘기자인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의 질문이고, 그것은 기자의 기본적인 질문이다. 확인할 수 없는 기사는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 원장의 지적은 수학과 물리학의 세계, 자연의 상태와 그걸 벗어난 상태를 분리해서 질문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건 질문을 명확하게 해달라는 요청이기도 했다. 예컨대 ‘이건 빨간색이냐’고 묻지 말고, ‘섭씨 40℃, 1기압 상태에서 오후 4시에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건 빨간색이냐’고 물어달라는 것이다.
그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은 또 있었다. 존재가 무엇인지 묻지 말고,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 대해 질문해달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뭐냐, 거리가 뭐냐는 질문보다 시간과 거리는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인간은 존재 자체를 간단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관계를 파악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가 컴퓨터에 입력해놓은 9억개 이상의 숫자는 관계 파악을 기다리는 자연의 모습이다. 이미 양 원장은 소립자들을 여러 방법으로 조합해 특정한 숫자를 찾아내거나, 역으로 숫자를 놓고 조합비율을 찾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우주의 생성 원리를 찾는 작업이다.
양 원장이 발견한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지금 여기서 밝히는 건, 기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수차례 그를 만나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의 ‘강연’을 듣고 토론했지만, 그가 15년 이상 공부하면서 밝혀놓은 것들을 며칠 만에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연구원의 커다란 금고도 인상적이지만 하얀 벽지에 수백개의 수식을 빼곡하게 적은 것도 잊을 수 없다. 모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식들이고, 아직 세계의 과학자들이 밝히지 못한 방정식들이다.
그의 꿈은 이 같은 그의 이론이 세상에 알려져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 사라지고, 아프리카의 기아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의 꿈은 곧 인류의 꿈이기도 하다. 여럿이 같은 꿈을 꾼다면 그건 이미 현실이다. 그 꿈이 조만간 실현되기를 바란다.






August 20th, 2007 at 9:47 pm신 동아 직접 봤어요. 저야 뭐 세부적인 내용은 맞는지 틀리는지 뭔 소린지 알 길이 없는데, 점쟁이 무당 같이 쓸데없이 내지르는 헛소리에 주눅든 (저와 마찬가지로 뭔 소린지 모르는 것이 분명한) 기자의 고분고분한 받아쓰기식 기사 작성 태도를 보는 게 참 재밌었어요. 어디 원장이라느니 어디 학장이라느니한테 인정받았다는 얘기만 썼으면 저 같은 사람은 그냥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