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intherye on 2008년 07월 24일
그렇게 달 형무소 토요일 특식의 성분 배합 비율이 결정되었다.
이제 남은 절차는 헌법에 따라 사형 집행 전에 대통령의 인가를 받는 것 뿐이다. 그런데 솔직히 대통령의 일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다. 반드시 대통령 업무 자동화 시스템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 동안 해당 분야에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정보혁명을 이끌었던 대통령을 기리는 뜻에서, 대통령 업무 자동화 시스템의 이름은 여전히 민주주의 2.0이라고 부르고 있다.
업무 자동화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보 처리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접목되어 이룰 수 있었던 현대 사회의 쾌거이다. 현재진행중인 이 현상을 두고 (근육을 대체한 산업혁명에 비유하여) 정보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주요 내용은 물론 두뇌의 대체.
물론 처음에는 통장형 대통령이 있었다. 국내외의 모든 일에 참견하고도 시간이 남아돌던 대통령. 그러나 인구가 어느 정도 불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지자 이것이 불가능해졌다.
일이 한 사람의 업무 한계량을 막 초과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대통령의 모든 업무가 사안을 열심히 요약 설명한 다음 O/X 퀴즈 형식으로 끝을 맺는 두꺼운 보고서 끄트머리에 서명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처음엔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업무 효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사소한 변화로는, 서명 대신 두 개의 만년도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다행히도 이 시기에 컴퓨터가 각 가정과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에도 보급되어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결제 서류의 전자문서화와 전자서명의 도입은 정치 분야의 보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게다가 대통령 집무실의 종이뭉치가 전자문서로 전환될 때 쯤에는, 그 곳에 절실히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이미 다른 용도로 완벽하게 개발되어 있는 상태였다. 스팸 메일을 걸러내기 위한 상업용 스팸 필터가 바로 그것이다.
스팸 필터의 기본 기능은 내용물의 패턴을 인식하여 뻔하디 뻔한 것과 별로 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이 능력은 이전 냉전 시대의 국가 경쟁 상황에 비견할만한, 활발한 초국가적 시장 경쟁 덕분에, 당시의 하드웨어로 도달 가능한 한계치를 이미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업무량이 점점 늘어나기만 하던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덕분에, 이름이나 수치 같은 세부적 내용만 약간씩 다를 뿐 하루 세번 끼니 때마다 꼬박꼬박 날라오는, 달에 사는 어떤 나쁜 놈의 통계적 사형 집행 승인 명령서에 전자 도장을 찍는 것 같은 일은, 대통령이 직접 하지 않아도,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몇 단계의 메뉴 조작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예 초기화면 목록에 나타나지조차 않는다. 아무리 전자 도장이 초당 20번씩 찍을 수 있더라도, 또 각종 분류법에 따라 한꺼번에 찍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인공지능 스팸 필터를 활용한 자동 전자 도장의 효율성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 각국의 대통령들은 예전처럼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골프도 치고, 사진도 찍으러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동 도장 필터에 걸러지지 않는 비일상적인 사안들, 이를 테면, 옆 나라에 선전포고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는 대통령이 직접 도장을 찍고 있다… 음… 아마도…
그날 저녁의 통계적 사형 집행 명령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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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therye on 2008년 07월 24일
그날 저녁의 통계적 사형 집행 명령이 승인되었다.
그 즈음 어느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엄마 엄마. 달에는 누가 살고 있어?
-달에는 달토끼가 살고 있단다. 저기 토끼의 모습이 보이지?
-어디?
-저어기, 저기 기다란 게 토끼 귀고, 저기 동그란 게 토끼 눈, 저건 입…
-우와 진짜! 토끼다! 저 토끼는 뭘 먹고 살아?
-달에 사는 토끼는 유전자 변형된 거대 육식 토끼라서 사람을 먹고 산단다.
-사람? 달에 사람도 있어?
-저기 달의 테두리가 반짝이는 거 보이지? 저기에 나쁜 사람들이 살고 있단다.
-나쁜 사람들?
-응, 나쁜 사람들. 경찰 아저씨들이 잡은 나쁜 사람들은 전부 다 로케트에 태워서 달나라로 보내고 있어. 저 토끼는 그 사람들을 먹고 산단다.
-402동 살다가 잡혀갔다는 그 아저씨처럼?
-그래, 그 아저씨도 지금쯤 달에 가 있을 거야.
-달 토끼가 사람들을 막 산 채로 잡아먹어?
-아니, 달토끼는 큰 절구통을 가지고 있어. 죽은 사람을 그 절구통에 넣고 덩더쿵덩더쿵 방아를 찧는 거지.
-절구통이 뭔데?
-딱딱하고 큰 그릇 같은 거야. 토끼는 달에서 죽은 나쁜 사람에게서 우선 피부를 벗겨내고 눈알이나 간 같은 비싼 장기를 떼어내서 우리에게 보내주지.
-아 나도 알아! 그걸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식해주는 거지?
-학교에서 배웠나 보구나. 그래. 나쁜 사람 한 명이 죽으면 착한 사람 열 명이 더 오래 살 수가 있단다.
-그런 다음 절구통에 넣고 빻는 거야?
-아니아니, 그 다음엔 살코기를 발라내지. 그런 다음에야 나머지를 바싹 말려 큰 절구통에 넣고 빻아서 가루를 낸단다.
-덩더쿵하고?
-그래, 덩~더쿵 덩더쿵.
-토끼는 그렇게 빻은 가루를 먹는 거야?
-토끼는 그 가루를 주물럭주물럭 주물러서 조미료를 치고 색소를 발라 푸딩 같은 음식을 만든단다.
-에이, 뻥치시네. 어떻게 사람이 푸딩이 되냐?
-왜 말이 안돼? 너도 어제 푸딩 먹었잖아?
-그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푸딩이 니가 됐는데, 너는 도로 푸딩이 못 될 거 같아?
-엥… 그런가?
-거봐.
-이상한데… 그럼 내가 어제 먹은 푸딩도 토끼가 만든 거야?
-아니, 니가 먹은 푸딩은 육지에서 만든 웰빙 푸딩이란다. 토끼가 만드는 푸딩은 달에 사는 나쁜 사람들에게나 먹이지.
-우웩. 맛없겠다.
-아냐, 맛은 있을 거야. 토끼가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은데. 대신 토끼는 그 음식에 독을 타.
-독? 먹으면 죽는 거?
-응. 토끼는 빻은 가루를 반죽해서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그 음식에다가 먹으면 죽는 독을 잔뜩 집어넣는단다.
-그랬다가 달나라 사람들이 한번에 다 죽어버리면 어떡해?
-당연히 한꺼번에 다 죽지는 않을 만큼만 넣어.
-그럼 402동 아저씨도 언젠가 푸딩 먹고 죽어서 푸딩이 되겠네?
-그래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기도 하지.
-맛있겠다! 근데 나쁜 사람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나면, 토끼는 뭘 먹는 거야?
-정말? 그러고 보니까 토끼는 도대체 뭘 먹지?
-에이, 무슨 옛날 얘기가 그래?
-호호호
-하하하
달의 재활용 시설은 태양에너지로 가동되게 설계되었을 뿐, 나머지는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와 대충 비슷하게 돌아간다. 어쨌거나.
그렇게 음식이 다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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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therye on 2008년 07월 21일
그렇게 음식이 다 만들어졌다.
음식 관련 설비 중 가장 나중에 도입된 자동 배식 장치가 규격화된 식판을 날라왔다. 예전에는 일일이 간수가 손수레를 밀고 다니면서 나눠주곤 했다. 당시엔 통계적 사형을 위해 치사율이 사전 조정된 음식과, 딱 정상수준으로만 위험한 일반 음식이 끼니마다 일정 비율에 따라 임의적으로 번갈아 나왔었다. 이는 과거 총살형을 할 때 사형수를 향해 총을 들고 사열한 병사들에게 일정 비율로 공포탄이 든 총을 지급하던 것과 비슷한 취지의 실무자 인권 보호 수단이었는데, 아무래도 밥은 총알과는 달리 한 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하루 세 끼씩 꼬박꼬박 먹는 것이다 보니, 간수가 자신에게는 멀쩡한 음식(총살이라면 공포탄에 해당하는)이 할당되었으리라고 아무런 근거없이 믿으며 위안을 얻고 편안한 밤잠을 이룰 가능성이 며칠만 지나도 급격하게 떨어져버렸기에, 곧 배식도 기계 장치가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사형수들을 제외한 달의 무인화, 완전 자동화라는 보다 큰 목표도 배식 장치 도입에 한 몫을 했다. 오늘날 사형수가 아니면서도 달에 상주하는 사람은 소장 뿐이다.
오늘의 메뉴는 토요일 저녁의 특식이었다. 신선한 스테이크, 아직도 따끈따끈한 빵, 걸쭉한 조개 스프. 스테이크는 원재료야 무엇이었든, 송아지 안심맛이었는데, 한 입 물자 베어나오는 육즙이 아주 훌륭했다. 이처럼 맛은 훌륭했지만 사실 겉이 살짝 탄 스테이크에는 기준치 이상의 발암물질이 들어있었고, 마찬가지로 빵에는 농약이, 조개 스프에는 중금속이 들어있었다. 모든 것이 사형수의 사망 가능성을 판결문에 명시된 수치만큼 정확하게 높이도록 세밀하게 조제된 음식이었다.
전에 돈까스에 된장국이 나왔을 적에 무심코 된장국을 들이켰다가 된통 당했던 기억이 있는 이 사형수는 음식을 먹기 전에 한 입씩 시식을 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배설물-음식물 순환 설비에 사소한 고장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료에 처리가 덜 되어 말 그대로 똥국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하긴 공기 필터 예산도 빠듯한데, 겨우 배설물 필터가 제때 교체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상식을 깨고 요즘 들어 배설물 필터의 예산만큼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로 무심코 똥국을 들이켰던 소장의 열의 덕분이었다. 공기 필터는 개인용 산소마스크라는 저렴한 대안이 있었지만, 음식은 그런 대안도 딱히 없었다.
달 형무소가 지구상의 여느 시설과 다른 점은, 인간을 단지 살려만 두기 위해서도 온갖 보조 장치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공기 여과기의 필터 교체시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모든 수감자가 순식간에 몰살당할 수 있다. 사실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예산상의 문제 때문에 예비 여과 설비 확충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어차피 이제나 저제나 곧 죽을 사람들을 보다 확실하게 살려두기 위한 설비를 만들 돈을 내놓으라고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스테이크와 빵과 조개 스프의 미각과 생명 양쪽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협을 오늘도 무사히 넘긴 사형수는 디저트로 제공된 푸딩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건더기가 푸짐한 푸딩은 타르 함량이 높은 담배와 함께 형벌의 효과적인 보조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푸딩 속에 들어있는 건더기들은 매우 높은 치사율을 가지도록 세밀하게 조정된 크기와 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귤처럼 생긴 건더기가 가장 위험했다. 방심하고 후루룩후루룩 달콤한 푸딩을 마시다시피 하던 사형수는, 먹으면서 동시에 코로 숨을 쉬던 미묘한 리듬이 오늘따라 잠시 살짝 어긋나는 바람에, 귤처럼 생긴 건더기가 그만 기도를 꽉 틀어막아버렸는데, 콜록콜록 고통스러운 기침을 한참 동안 해대다가, 그만 영영 고꾸라지고 말았다.
오늘 그렇게 또 한 명의 사형수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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