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읽은 책 중 5권 꼽기

1. 캐치22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심할 때 읽어보세요.

2. “종의 기원”을 꼽을까 했는데, 이건 어차피 다들 읽으실 테니까, 인기곡 대신 숨은 명곡을 추천하는 빠돌이의 심정으로 인간의 유래

왠 지 고리타분할 것 같아서 미루기만 하다가 2008년에야 다윈의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솔직히 그저 원전으로서의 아우라 때문에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되어 있으리라고 내심 넘겨짚고 있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뻥뻥 내지르고 우기는 책은 아닐까 쪼끔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니까 킹왕짱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생 읽어봤던 그 어떤 것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기록이 깨질 수 있을 지조차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인류의 모든 책이 들어있는 도서관에 불이 나서 딱 한 권만 구해낼 수 있다면 저는 종의 기원을 들고 나오겠습니다. 마침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A.D. 200),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라고 합니다. 올해 안에 꼭 읽어보세요.

3. 회의적 환경주의자

기왕이면 환경 제대로 지키자는 책으로 읽었는데, 분위기를 대충 보니까 환경 안 지켜도 된다는 책으로 까이고 있는 듯하다;;; 헐.

4. 행복의 공식

전에 친구 생일에 러셀의 행복론을 선물한 적 있는데, 올해 다른 친구에게는 이 책을 선물했다.

5. 며칠 전까지였으면 타고난 반항아를 꼽을 뻔했는데, 연말연시에 걸쳐 읽은 “개성의 탄생”으로 변경.

이건 뭐 욕쟁이 할머니가 따로 없음. 설로웨이를 거의 황우석급으로 발라버리네.
그 개성적인 문체만으로도 올해의 책 등극. 다 만 실질적으로 세상에 추가하고 있는 정보면에서는 약간 미흡한 듯. 비유를 하자면 “xx 먹으면 10년을 더 산다!”는 돌팔이 약장수들 까는 것까진 참 유익한데, 끝에다 “인간의 수명에는 순환계, 호흡계, 신경계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뭐 이런 걸 덧붙인 느낌. 한국에 허준이 있다면 미국에는 프로이트가 있는 듯.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사형 제도에 대한 태도의 유전 가능성은 0.50이며, 조직적인 종교는 0.46, 독서는 0.37이다.”

ps. 벼.. 별로 다독가는 아니라능 !

핀치의 부리

왠지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 떠는 느낌. (나 아무래도 도킨스에게 단단히 세뇌된 듯…) 그러니까 현재진행중인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호들갑. 근데 과연 그럴까? 핀치 자료를 들이밀면 진화를 못 믿던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당신은 손톱이 자라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깎아보면 아는 거지 무얼.

부리의 1쩜 몇 미리 차이가 생사를 결정지었다고 감격하던데, 평균의 차이가 그 정도라면, 죽고 살은 집단간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얼마나 됐을지 조금 궁금했음.

스타일에 있어서도, 중간중간 고전 인용도 왠지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나중에 폼나라고 끼워넣은 것처럼 따로 노는 듯했음. 쩝.

나방 색깔이나, 물고기 색깔이나, 핀치의 부리 길이가 오락가락한다던가 하는 것은, 물론 자연선택의 작용인 것이 분명하지만, 창조론자 입장에서는 신이 설계한 원형prototype이 그 정도쯤은 가변적이었다고 선언해버리면 그만일 듯. 실제로도 새로 나타난 형질이라기보다는, 유전자 속에 숨어있던 과거의 형질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나타난 것을 목격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도 꽤 있다고 생각하고. 창조론자의 입장에서 목격하고 싶은 “진화”는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그런 진화지. 따라서 여전히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자연 상태에서는. 지성과 기록의 역사가 일이만년 안에 끝장나지는 않기를 바랄 수밖에.

말 나온 김에, 나 같이 집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은, 무언가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설득당한다. 실제로 검증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 책에서는 이런 걸 좀 흉보지만. 어쨌든.

더글라스 아담스 형이 이런 독실한 마음가짐을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는데, 다음과 같다.

Anything that happens happens, anything that in happening causes something else to happen causes something else to happen, and anything that in happening causes itself to happen again, happens again. Although not necessarily in chronological order.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고,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일이 다른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을 일어나게 하고,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일이 스스로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다시 일어난다. 굳이 꼭 시간순서대로일 필요는 없다.

진화 오라토리엄까지는 아니더라도, 진화 텅트위스터쯤은 되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진화를 떠받드는 무신론자인 이유를 셜록 홈즈께서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는데, 다음과 같다.

“When you have eliminated all which is impossible, then whatever remains, however improbable, must be the truth.”

“불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시키고 나면,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진실일 수밖에 없다.”

진실로 향하는 길

… 잘못된 사실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과학의 진보에 큰 해악을 끼친다. 그러나 잘못된 견해도 어느 정도의 증거를 바탕으로 지지된다면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건전한 즐거움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잘못으로 향하는 경로 하나가 폐쇄되는 동시에 진실로 향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기불이님께서는 과학책에 유통기한을 두자고 하십니다만, 흥! 1809년에 태어난 사람이 쓴 이 과학책, “인간의 유래”를 읽는 기쁨은 매우 컸습니다. 이 책에 유통기한을 둔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옛날옛적 유클리드의 과학책? “기하학 원론”이 직관과 연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희열을 준다면, 이 책은 경험과 귀납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순수한 기쁨을 준다고나 할까요. 신중함과 자신감을 모두 갖춘 성실한 지성만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입니다. 중간에 사슴이 어쩌고 풍뎅이가 어쩌고 줄줄이 나열할 땐 좀 졸렸지만 -_-; 그래도 지루한 부분을 견디고 나니까 막판에 다시 감동의 폭풍이 휘몰아칩디다.

“이거 왼쪽을 보니까 1234가 있고 오른쪽을 보니까 6789가 있음. 이건 아마도 5인 듯 ㅇㅇ.”

“1, 2, 3, 4, 5, 6, 7, 8, 9 다음에는 아마도 10이 올 것 같음. ㅇㅇ”

기본적으로 미취학 아동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렇게 간단한 논리만 가지고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다니, 짱 아닙니까? 열심히 지구 전역에서 동식물 표본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던 시대에 드디어 다윈이 생명의 주기율표를 발견한 겁니다. 사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던지라 월리스의 공동발견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다윈이 아니었더라도 생물 진화의 이론은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윈만큼 잘, 성실하게, 탁월하게, 간단하게™ 정리해서 내놓으려면 백년은 걸렸을 듯..

[펌] 핵 발전소 얘기

핵 에너지는 일반적으로 정부와 시민 사이의 신뢰 문제를 안고 있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상상의 세계(Imagined Worlds)』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패가 허용되는 한, 핵 에너지는 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다이슨은 이렇게 설명한다. 핵 에너지는 너무나 큰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사고율 0이라는 기준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당국은 핵 발전이 깨끗하고, 안전하고, 싸고, 어떤 에너지원보다 유리하다고 강조하도록 강요당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은 거짓말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박사들의 과장된 선전,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기준으로 만들어진 규칙들과 지침들뿐이라는 것이다. 다이슨은 1920년대까지 줄잡아 10만 가지나 되는 비행기와 제트 엔진의 설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들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100가지 정도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다이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혹독한 선택 때문에 살아남은 소수의 비행기들은 놀라울 정도로 튼튼하고, 경제적이고, 안전하다.” 여기에서 문제는 10만 가지 원자로 설계에서 100가지의 튼튼하고, 경제적이고, 안전한 설계가 나올 때까지 우리가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핵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당국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한 다음에, 우리는 그 거짓말을 믿는 것이다.

-마이클 셔머, 과학의 변경지대, 72-73쪽.

핵 발전소는 비행기보다는 로켓에 비유하는 게 좋았을 거 같은데. 하여튼.

ps. 책은 무지 재밌다. 특히 자칭 영웅 프로이트 엄청 깐 다음 진짜 영웅 다윈이랑 비교대조하는 챕터는 좀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음. ㅋㅋㅋ 그나저나 프로이트 상태가 좀 안 좋은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 시간 나면 언급된 책이나 읽어봐야겠다. 설로웨이라는 사람이 썼다는데 과연 번역이 되어 있으려나. -_-_-_-

다윈이 어째서 중요한가

Why Darwin matters -Richard Dawkins

다윈이 어째서 중요한가

찰스 다윈에게는 큰 아이디어가 있었다. 분명 사상 최강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모든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그러하듯이, 그것 역시 매우 단순하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로 초보적이고, 눈부시도록 확실해서, 그 이전의 사람들도 그 근처까지 가보았으나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볼 생각조차 못했을 정도이다.

다윈에게는 다른 훌륭한 아이디어들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산호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그의 독창적이면서도 대체로 옳았던 이론이 그러했다. 하지만 생물학의 나머지 부분이 말이 되도록 해주는 지배 법칙이자 인도 원리를 제공한 것은, 『종의 기원』에 실린 자연선택이라는 그의 큰 아이디어였다. 그 차갑고 아름다운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자연선택의 설명력은 이 행성 위의 생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 중에, 원리상으로조차, 모든 행성 위의 생명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것이다. 우주 다른 곳에 생명이 존재한다면(나는 아마 그럴 거라고 보는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어떤 변형이 그 생명 존재의 기반으로 밝혀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윈의 이론은 외계 생명이 아무리 이상하고 낯설고 기묘할지라도 (그리고 나는 아마도 그것이 상상 이상으로 기묘할 것이라고 보는데) 똑같이 잘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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