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국의 실체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실체

아래 글에 정밀한 고증이나 확실한 근거 같은 거 안 키웁니다. 저녁 먹고 배불러서 소화 시킬 겸 그 동안 쌓인 분을 풀어볼께요. 잘 정리된 곳이 곳곳에 있겠지만 찾아보기도 귀찮습니다. 그냥 평소 불만을 끼적일테니, 틀린 부분 지적 환영.

1. 주민등록번호 입력칸
한국의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는 회원 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합니다. 유사시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몰라도 되는 걸 왜 굳이 알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 친구놈은 이게 다 한메일 때문이라고 투덜거리곤 합니다. 대한민국 인터넷 태동기부터 당연시되어온 관습이라 이제 와서 되돌릴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주민등록 번호 입력을 강제화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해는 분명합니다. 일단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사용자의 이용을 막습니다. 외국인이나 교포 등등. 이건 뭐 쯩 안 까면 장사 안 하고 말겠다는 심보죠. 저는 주민등록번호 입력칸이 어쩌면 북한 사람들이나 조선족들이 남한 사람들과 한데 섞여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으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음모론을 품고 있습니다. -_-;

2. 검열
중국 구글에서 천안문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뭐 공식 홍보 자료 같은 것만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죠. 중국의 법 때문.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이트를 통채로 막아버리기도 하고, 검색이나 접근을 못하게 한 단계 막아놓기도 합니다. 사이트를 통채로 막아버리는 것은 주로 음란사이트와 친북사이트의 경우입니다. 검색이나 접근을 일시적으로 막는 것은 주로 성인용 사이트입니다.

  1. 음란/친북사이트: 아마도 dns 차원에서 막아놓은 것인지라 다 자란 성인조차 유효한 자기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도 접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외설물을 금지하는 법과, 북한과의 교류를 막는 법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접속을 시도하면 관련 정부 부서와 경찰서 등의 연락처가 적혀 있는 친절한 메세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이게 왜 뻘짓인가 하면- 간단히 말해서 대한민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다른 모든 곳에서는 원활하게 접속이 가능한 사이트이기 때문입니다. 뭐 어느 나라에 가면 대마가 합법이라더라, 왜 한국은 안되냐, 그런 식의 투정을 부리려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서 대응방법에 차이가 생기는 문제도 있다고 봐요. 즉, 정말로 외설물이 문제고, 대북 관련 정보가 문제라면, 대마처럼 막기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막아지나요? 막아지고 있나요? 외설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면 외설물을 못 보나요? 안 되는 걸 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인터넷은 세관처럼 dns 좀 막는다고 막을 수가 없어요. 친북사이트 역시 마찬가지. 이건 안 막아져서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찾는 사람도 없지 않나요? 친북사이트가 막혀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있기나 한가요? 그거 열어놓으면 남한사람들이 막 몰려가서 주체사상에 세뇌되어 대남 공작을 개시할까요? 아니라고 보거든요.
    2.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탐스런 열매이자 기반은 바로 자유로운 정보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열 문제는 완화되기는커녕 최근 대통령 선거 관련해서 검열 대상이 하나 더 추가되기에 이르렀는데요. 저는 제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주변에 마음껏 알릴 자유를 원하듯, 음란물이나 북한 관련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해요. 뭐 알바들의 공작이 무섭지 않냐고요? 알바들이 마음대로 날뛰게 풀어놓으면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일종의 정보 면역이 생길 거라고 봅니다. 카더라-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카더라-할 수 있는 입들을 전부 봉해버리기 보다는 누구나 카더라 할 수 있게 놓아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를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유치원에도 보내고, 놀이터에도 보내야지, 무균실에 가둬둔다고 만사형통이 아니죠. 아니 그 이전에 국민이 뭐 국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애들도 아니지만. 그 반대라면 몰라도.
  2. 성인용 사이트: 이건 청소년 보호법이 그 근거일 겁니다. 그 존재의의와 목적에 대해서는 위의 경우와 달리 온전히 납득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고 봐요. 주민등록번호 입력으로 실명을 확인하는 건 진짜 닭짓입니다. 외국인이나 교포들 때문만이 아니에요. 주민등록번호에는 성인 확인 기능이 없어요. 사진 박혀 있는 주민등록증에는 있을지도 모르죠. 제시자와 사진이 일치하는지 확인이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달랑 번호만 입력받는 성인/본인 확인의 맹점을 이용해서, 한때는 가짜 주민등록번호 생성기가 유행했었죠. 주민등록번호 마지막 한 자리를 가지고 유효한 번호인지 의미없는 13자리 숫자인지만 확인했었습니다. 저는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참신한 방법이 도입될 줄 알았어요. 근데 새로운 닭짓을 하더군요. 신용카드 사용기록 등을 이용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번호인지 여부를 확인하더군요. 초기에 신용정보 기록이 전혀 없던 어린 저는 어떤 사이트에 가입을 못하는 사태도 벌어졌었습니다. -_-;; 중국 사람들이 국산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하기 위해 내국인 주민등록번호가 대량으로 유통된 적도 있었죠. 저는 그때야말로 참신한 해결책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근데 짱깨 나쁜놈 욕만 해대더니 해결책은 안 나오더군요. -_-;;
    1. 정말로 굳이 주민등록번호를 성인 확인 용도로 쓰고 싶으면, 주민등록번호에 추가로 비밀번호라도 달아야 돼요. 동사무소 가서 수시로 바꿀 수 있는. 근데 이렇게 주민등록번호의 용도를 강화하는 해결책은 싫어요. 맨 위에도 썼듯이.
    2. 아니면 차라리 신용카드 정보를 쓰던가 하세요. 이거 좋잖아요. 돈 관계가 있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고. 그러나…

여담인데,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실시되었을 때, 저는 김유식이 국내 법에 저촉받지 않는 해외 법인이라도 차릴 줄 알았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외국 회사가 외국 서버에 한국어 사용 가능한 제로보드 하나 깔아놓으면 뭐 방법이 있나요? 심지어 디씨 유저들이 한국어 사용이 가능한 어느 외국 게시판에 쳐들어가서 갤러리화해버리면 뭐 막을 방법이 있나요? 하다 못해, 제가 지금 쓰고 있는 wordpress.com만 하더라도 가입시나 사용시 본인 확인을 한답시고 주민등록번호 같은 거 물어보지 않습니다. wordpress.com에 블로그 몇 개 생성해서 갤러리처럼 익명으로 놀면 뭐 막을 방법이 있나요? 수십만명이 몰려가면 아 이제 막자- 하고 막아야 하나요? 저는 그렇게 지 대가리만 파묻고 영구 없다-하는 걸 닭짓이라고 부릅니다.

3. 액티브엑스
제가 선뜻 신용카드 정보를 성인확인용으로 쓰자고 추천할 수가 없는 것이. 한국에는 액티브 엑스라는 또 다른 난관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게 뭐시냐 하믄, 그러니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서 돌아가는 익스플로러에서만 작동하는 물건인데, 뭐 보안성 높인답시고 쓰기 시작했고 어쩌고 해서. 다른 오에스를 쓰거나, 다른 브라우저를 쓰는 사람은, 아예 관련 기능을 쓸 수가 없게 만드는 악의 축입니다. 은행 거래는 물론이고, 단순 쇼핑사이트에서 물건 하나 사려고 해도 특정 회사의 특정 브라우저를 작동시켜야만 해요. 이게 왜 거지 같은 거냐 하믄, 음. 굳이 설명을 해야 하나? 각자 스스로 잘 생각해보세요.

4. 스팸
뭐 꼭 비아그라 사라고 광고를 해야만 스팸이 아니에요. 그런 건 뭐 글로벌한 문제니까 그렇다고 쳐요. 제가 싫은 건 대한민국 사이트에서 주로 보이는 만행. 지가 이런 걸 보내도 되는지 안되는지 아무런 고민 없이 보내는 메일이 싫어요. 저는 선생이 학생을 때릴 때, 자칫했다가는 콩밥 먹는 수가 있구나, 하고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금의 현실이 참 마음에 들어요. 한국의 업체나 기관의 메일 발송자들도 마찬가지 변화를 겪어야 해요. 최근 오는 메일들을 보면 그런 고민이 부족해 보여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팸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수신거부를 보다 편하게 하고, 신고를 더욱 간소화하고, 스팸 발송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한메일 같은 곳에서 스팸신고를 받으면 법적 대응까지 좀 대행해주면 좋겠는데, 그냥 지네들이 부실하게 만든 스팸필터 알고리즘으로 착취만 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놔.. -,.-

소화 다 됐네.

내가 종교인이 되었으려면

  • 난 무교이다. 정확히는 무신론자. 갈 데까지 가서 여기서 더 갈 데는 없는 거 같다. 반신론자가 남았나? 하하.
  •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지론자였음. 다들 뭐 하나씩 믿는데 뭔가 있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 싶었었다.
  • 더욱 어릴 땐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뭔가 있나 본데 그게 뭘까 궁금해론자였던 듯. 그래서 할머니의 구약을 뜻도 모르면서 읽어봤었더랬다.
  • 가끔씩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만약 특정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되었으려면 내 삶 속에 어떤 요소들이 더 필요했을까?
  1. 종교 존재 감지: 누군가 종교라는 걸 믿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희박.
  2. 많은 교인 수: 근데 그 종교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10~30%. 무난. 이게 내 어린 시절에 해당.
  3. 부모님: 태어나 보니 부모님께서 특정 종교인이었다면. 50% 안팎으로 크리티컬.
  4. 친척과 이웃: 그런데 아는 이웃이나 친척집도 전부 그 종교를 믿고 있다면. 20% 추가 데미지.
  5. 교통과 통신: 지구 반대편에는 세부 내용이 전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떼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 90% 이상. 아니, 오히려 거기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면. 99.9% 확률로 확정! ㅊㅋㅊㅋ.

반대로, 난 그래서 누가 “모태신앙이에요”라고 그러면, ‘아.. 50%는 먹고 들어갔구나.’라고 생각함. 중세까지의 사회 꼬라지도 이해가 감.
현대사회는 대략 10~90% 비율로 이해 가능과 이해 불가능.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건 아직도 이해해보려고 다각도로 노력중. (한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낭비시키고 있다는 점에 종교에 또 한 가지 해악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려나? ^^;)

만들어진 국가

배송 받아 놓고 아직 읽지는 않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에, “아이에게 특정 종교를 주입하는 것은 아동학대”라는 말이 나온다고 들었다. 아이는 ‘특정 종교-free’하게 길러져야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무슨 종교를 굳이 가지겠다 그러면 뭐 그럼 그러려무나 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줄로 안다.

신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일부 집단에게는 꽤나 도발적으로 들릴 지 몰라도, 국가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당연한 소리다. 그런 국가는 종교보다 역사가 훨씬 짧은 인공물이며 근대국가에서는 종교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이 망상인 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기 때문이지만, 국가가 망상이 아닌 것은 있는 만큼만 있다고들 보(고 있다고들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아이에게 특정 국적을 강요하는 것이 아동학대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중삼중국적으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이상적인 게 아닐까? 어째 이를 부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쩌면 국가라는 망상의 시작점이 아닐까?

이중국적이 병역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겠답시고 한국 국적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국가라는 망상이 커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포르노

다음에서 여자가 오줌 싸는 동영상을 검색하는 분들이 즐겨찾는 제 블로그입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검색어 낚시를 해볼까 합니다.

포르노, 중에서도 야동 장르 이야기입니다. ‘음란성’이라는 적법성 판단 기준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사상을 원천봉쇄해버린 국가보안법만큼이나. 대통령의 기계적 정치 중립을 요구하는 선관위만큼이나.

저는 포르노가 사지절단 유혈낭자 고어물과 비슷한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장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지 싫어하는, 애들한테는 보여주면 안되리라는 것이 자명한, 깊은 곳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뭐 그런 점에서요. 저는 자신의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미성년자에게 제공될 루트를 차단하는 것은 술/담배가 그러한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이지만, 다 큰 성인들에게 조심스럽게 제공되는 루트까지 법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포르노가 커다란 사업인 저기 저 나라 요기 요 나라에서조차도 아동포르노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하는 것까지도. 왜 그럴까요. 왜 그럴까요. 왜 그럴까요. 포르노라는 것이 단순히 “작품-관객”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있는 걸 보고 즐기기만 하는 거라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려 “출연자”가 있습니다. 포르노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사람이지만, 아동이 포르노에 출연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에연. ㅠ_ㅠ 사지절단 엽기물과는 달리 포르노에는 ‘아, 저건 가짜야, 고무 팔에 빨간 물감이겠지’하는 안도감이 없습니다. 노모 본격적인 포르노는 일종의 스너프입니다. 등장인물이 정말로 죽은 게 아니라 죽는 척하고 있는 거라는 안도감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혈낭자 공포물은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영화에 가깝습니다. 살색 빤스 입고 상체가 왔다리갔다리하는. 대한민국에서 에로영화는 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ㄳ. (당연하게도) 불법적으로 제작된 스너프가 소비자를 은밀히 찾듯, 아동 포르노도 소비자가 있으면 은밀하게 제작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금지하는 거죠. 마약 제조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처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한국에서 포르노가 불법인 이유는 물론 음란성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나. 선~나. 하지만, 옆나라에서 아동 포르노를 금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개인적으로 그 말도 안되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아동을 보호하려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한국의 성인 여성이 포르노 산업 현장에서 일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적어도 아직까지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마초입니다. 이른바 “한국의 특수성”은 국가보안법이나 호주제가 아니라 포르노 배우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마초입니다. 아니 그러면 외국인 용병배우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놈에게 씨발놈아!를 외쳐주는 저는 마초입니다. 포르노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대체로 여성들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도 어떤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 근데 왜 해외 포르노도 못 보게 하느냐! 저는 이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국 시장도 없는 상황에서 외화 쓰기 싫은 자존심 정책의 일관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정책도 완전히 파토가 났습니다. 당국은 현재 중국이 천안문 차단하듯 일일이 차단하고 있습니다만, 당근 역부족입니다. 대한민국의 다음 행보가 주목됩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제2, 제3의 김본좌를 잡아가두면 되는 건가?! 제2, 제3의 홍수빈을 잡아가두면 되는 건가!? 되겠죠, 뭐. 그래도 제56, 제792, 제 2981의 김본좌와 홍수빈까지 잡아가진 못하겠죠. 길은 두 갈래 뿐. “금지/몰래”라는 분열증적인 시대를 이어갈 것인가, 에라 포기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어쨌거나 현 시점에서 남는 건, 실제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는, 사이버 배우가 등장하는 가짜 포르노(혹은 애니메이션)와 포르노 만화, 포르노 문학 등이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숨죽이며 읽었던 기욤 아폴리네르(아 이 어려운 이름까지 다 기억나다니)의 “일만일천번의 채찍질”을 상기(그 상기가 아니라 이 상기)해보면 야설문학은 대충 눈감아주는 것 같습니다. 마광수는 음란성 때문이 아니라 괘씸 때문에 잡혀간 거라고 봅니다. 저는 물론 이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나. (읽지는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어쩌고의 “로리타”도 대단한 순문학이라고 인정받는 걸 보면 아동물도 영상물이 아니라면 한반도 바깥에서도 대략 넘어가는 분위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 게임 산업의 미래는 현실감 넘치는 3d 가상 배우가 등장하는 포르노 산업으로 얼마나 성공적으로 변신하느냐에 달렸다!

이것이 오늘 뻘글의 결론입니다. ㄳ.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 ‘너무’와 ‘같아요”

0. 먼저 저는- 아무리 널리 쓰여도 틀린 건 틀린 거지만, 아무리 틀렸더라도 인정해줘야 할 때가 온다고 보는 편입니다. 즉 제가 바로 말글 생활에는 머릿수가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1. “너무”는 deulpul님께서 말씀하신 부정적인 뉘앙스가 이미 많이 희석된 상황입니다. “내 인생의 활엽수”, “어의 없다”-,.- 같은 말이야 확실히 틀린 말이라 고쳐지는 편이 더 바람직하겠지만, “너무” 정도야 뭐, 가벼운 마음으로 사전상의 정의를 고칠만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요즘 누군가 “너무 잘했다”라고 할 경우, “그렇게 잘하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쓸데없이 잘해버렸다”라던가 “컨닝한 거 아냐?” 같은 뜻보다는, 보통 “내 기대를 넘어설 정도로 훌륭히 잘해주었다”는 식의 뉘앙스로 널리, 아주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참, “컨닝”도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당당한 한국어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수사적 부정으로서의 “너무”가, 말씀하신 부정적인 뉘앙스의 “너무”와 혼용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맥락에 따라 충분히 파악해 냅니다. 그리고 전자가 더 자주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해둬야 할 것은 단지, 아직도 한국어 사회에는 “너무”라는 말이 나오는 즉시 부정적인 뉘앙스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며,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약간 귀찮은 해명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는 것 정도. 그래서 언론, 학문, 공무 등에서는 쓰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 정도.

2. “~ㄴ 것 같다”는 표현 역시 거의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변하는 겁니다. 기존 표현과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갖는 새로운 표현들은 계속 생겨나지만 그 중에 완전히 새로운 말이 뿅하고 생겨나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맨 첫 문장에서 썼던 “~라고 보는 편입니다” 같은 표현은 어떤가요. 널리 쓰이는 표현인데 “보다”라는 동사의 뜻이 그대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한국어 사용자라면 별 문제 없이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보다”라는 동사가 가진 부분적 의미이며, 어쩌면 그 부분적 의미는 “~라고 보다”라는 표현이 생기고 나서야 더 부각된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들으면서 보긴 뭘 보냐는둥, 시각 장애인은 써서는 안될 표현이라는둥 그러면 이상하겠죠. “~ㄴ 편이다”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 그냥 관용적인 표현일 뿐인 것을 무의식적인 편가르기 정서가 반영되었다면서 비판하면 이상하겠죠. 미국인이 자주 쓰는 “be supposed to~” 어쩌고를 처음 들었을 때의 혼란과 당황이 떠오릅니다. 대체 뭘 가정했냐는… ;ㅁ; 단어 사전만 들고서 유추해내기 힘든 표현은 어느 말에나 있는 모양입니다.

“같다”의 경우 사전상의 정의는 추측이나 불확실한 판단을 의미합니다. 그럼 정말로 논술 채점하듯 그런 맥락에서만 쓰일까요. 말이란 게 늘 그렇듯 “~ㄴ 것 같다”는 표현이 가진 판단보류의 뉘앙스는 새로운 쓰임새를 얻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겸손한 표현이기도 하고, 다른 목적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저 말버릇이기도 합니다. “나 아픈 것 같아”라는 표현은 자기가 아픈지 안 아픈지 판단할 줄도 모르는 사람의 한심한 표현이 아니라, 판단의 권한을 청자에게 위임하는 겸손이기도 하고, 그 판단을 해달라는 바램, 즉 내가 아픈지 좀 봐달라는 바램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일 때도 있고, 선생님한테 아프니까 조퇴해도 되냐고 곧장 물으면 속보이니까 작업 거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동안 아픈 것을 참다가 말한 것이라면 자기 능률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지 않기 위한 수사일 수도 있습니다. 대개는, 그냥 별뜻없는 말버릇일 수도 있고요.

“이 책 너무 좋은 것 같아요”가 책이 좋은지 안 좋은지도 판단 못하는 사람의 잘못된 표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은지 안 좋은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자기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남들도 좋아할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그 책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 또 뭐 어떻습니까. 그 책을 읽고 좋다는 감정이 들긴 했는데, 그게 그 책 때문인지, 그 책을 싸게 샀기 때문인지, 그 책을 선물해준 사람이 이뻐서인지, 아니면 그냥 괜히 기분이 좋은 건지 잘 모를 수도 있는 노릇 아닙니까. 그냥 좋아하나보다 하면 되지 굳이 말한 사람의 머리 속을 까봐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좋아 죽겠다” 같은 표현을 두고 따지면서 이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풍조를 탓하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유머가 아닌가 했지만 아니더군요. -_-;;; 그냥 아주 많이 좋은가 보다 하시면 됩니다. “너무너무 좋아요”라는 표현도 마찬가지, 아주 많이 좋은가 보다 하시면 됩니다. “좋은 것 같아요”도 마찬가지. 백번 양보해서 싫지는 않은가 보다 정도로만 이해하셔도 됩니다. 이미 그러시고들 계시겠지만.

3. 오마이뉴스 기사가 지적한 표현들이 언론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말일지는 몰라도,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말은 절대로 아니다. 인터뷰나 방송에 적합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존나 좋아요” 정도는 되어야지.

이글루스 또 실망

워드프레스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던 작년 4월 이글루스에서 포토로그가 개장했었다. 웹앨범 서비스로서 exif, 태그, 썸네일 등등을 지원하는 꽤 쓸만한 서비스로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료회원만 쓸 수 있던 사진의 원본 저장 역시 곧이어 유료회원제 자체가 사라지면서 덩달아 무료화되었었다. 타지(에 있는 서버에서 제공되는 블로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내가 왜 옮겼을까 내가 ㅄ이지. 아 도로 갈까. 아니야, 가오가 있지. 아, 그래도 원본이 저장이 된다는데! 아직 몇 달 안됐고 그 동안 별로 쓴 것도 없으니, 여기서 썼던 걸 그리로 옮기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거야. 흑흑, 마이 프레셔스~ 이러면서 혼자 골룸 놀이를 했었더랬다. 이글루스로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면 딱 하나, 앨범 비공개 기능을 못찾았었기 때문. 나는 원체 수줍어서 비공개 앨범을 주로 쓰는 편인데, 이글루스 포토로그에서는 그걸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서 참 아쉬워하면서 그냥 여기 주저 앉아버렸더랬다.

그렇게 군침만 흘리며 바라만 보던 이글루스에게 처음으로 실망했던 것은 작년 말 스팸 트랙백 대공세 때였다. 참다 참다 못 참겠어서 궁시렁거리자마자 상당히 효과적인 조치가 있긴 했지만, 내 실망은 이글루스 측에서 그 조치 이전에 스팸트랙백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하고 있으니 언제쯤까지 기다려달라는 제대로 된 공지가 없었던 데에 대한 실망이었다.

한번 삐졌던 마음, 최근 다시 삐지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밸리에서 포토로그 view 개선 2.28이라는 제목의 공지를 보고 뜨오오옷! 아니 대체 거기서 어떻게 더 좋아졌다는 거지?! 비공개 앨범 기능 만들었나? 진짜 도로 이사갈까? 가오는 무슨 가오. 나 가오 같은 거 없어. 짱이다! 우와우와! 하고 설레발을 치면서 클릭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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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진

다카하시 츠토무라는 만화가의 지뢰진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뭐랄까 씬시티라던가 데어데블을 연상케하는 음울한 마초 히어로물로 기억하는데, 경찰인 주인공의 그 뭐랄까 비장미 넘쳐흐르는 개망나니짓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아마도 주인공한테 방법 당하던 나쁜놈이) “경찰이 이래도 돼?” 그러니까 “지금은 비번이지롱” 하는 장면이었음. 지금은 비번이라 경찰이 아니다 이거지.

물론 이건 만화 속 얘기지만, 오늘날 공권력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식의 제도적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를 테면 오늘이 근무일인가? 아직 퇴근 시간이 안 지났나? 시민이나 자기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인가? 위험하다면 얼마나 위험한가? 무기사용 허가는 받았나? 기타 등등등등등)이 맞아떨어져야지만 간신히 발동(해야)하는 매우 성가신 힘이 바로 공권력이다.

스파이더맨의 삼촌께서는 말씀하셨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당연하다는듯이 그 책임을 피터나 클라크 같은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버리지만, 공권력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다각도로 제한하는 법이 있고 원칙이 있기에, 귀찮고 성가시고 짜증나고 불편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공권력이다.

뉴스 덧글이나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경찰 잘했다, 나쁜놈들은 몽둥이질을 좀 당해도 싸다, 칭찬은 못해줄 망정 무슨 조사에 징계냐고들 아우성이던데, 님들아 대한민국은 저지드레드의 나라가 아니에염. 한국 경찰들이 갑옷 입고 설치는 실베스터 스텔론이 아닌 거죠. 퇴근한 경찰은 직업이 경찰인 시민인 거죠. 그래서 위험한 경찰 장비는 안 쓸 땐 반납해야 하는 거죠. 한국이 미국도 아니고 모든 경찰이 브루스 윌리스도 아닌 거죠. 경찰 업무가 아닌데 경찰이다!라고 외치면 일종의 사칭이 되겠죠.

그럼 이런 정교한 제도적 제한이 없던 시절의 공권력의 존재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훨씬 간단했습니다. 걍 패는 거죠. 공권력을 인정 못하고 팬다고 개기면 더 패는 거죠. 더 팬다고 또 개기면 또 패는 거죠. 그러다 뭐 혹시 죽기라도 하면 대충 내다버리는 거죠. 간단하게 어디 가둬버려도 되고. 공권력 인정하는 사람만 살아서 돌아다니니까 빨래- 끝.

공권력의 존재 기반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두 가지뿐인 것 같고, 저라면 전자를 선택하겠는데, 그렇다면 이번 야구빠따 사복경찰들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해보고 징계할 부분에 대해서는 징계하고 형사처리할 부분이 있다면 형사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텐데, 어째서 그렇게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야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