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에 반대하기

생명복제기술 -꺾이지 않는 펜

답덧글 읽고 나서 며칠 곰곰이 생각해보고 답덧글 단다는 게 벌써 이렇게 됐군요. ^^; 늦었지만 덧글 쓰려다 괜히 길고 좀 뜬금없기에 트랙백으로 대신합니다.

생명공학 자체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과 생명공학자들의 주장이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사안에는 찬성이나 반대 같은 의견을 가지는 것이 가능합니다. 두 사람, 아니 열 사람이 똑같은 경제지표들을 보고도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정책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기만 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게 그런 거죠. 상식적인 곳(현대 민주국가, 화목한 가정, 일할 맛 나는 회사 등등)에서는 그런 경우 타협할 수 있는 데까지 타협을 합니다. 물론 타협하더라도 어떻게든 다수쪽으로 기울기 마련이고, 타협 불가인 문제의 경우 그냥 어느 한쪽 의견이 관철되어버릴 수밖에 없겠지만.

하지만 말씀하신 것(생명공학 자체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 자체)은 그러한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공학 그 자체의 단계에서는 전혀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사실 문제일 뿐이거든요. 따라서 ‘생명공학 자체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은 타협의 대상이 되는, 존중받아야 할 의견이 아니라 남들이 신경쓸 거 없는 개인적 취향에 불과합니다.

음, 유전자 변형 식품의 예를 들어봅시다. 일단 생명공학 관련한 얘기고, 재배, 판매 수출입 등등과 관련한 정책이 요구되는 얘기니까. (다만 앞으로 제가 들 예들은 모두 사실여부를 검증하지 않은 픽션입니다. 믿지 마세요. -_-;)

어떤 사람이 유전자 변형 식품의 재배와 판매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반대하는 공적 이유가 “나는 자연을 사랑하니까.”라던가 “조물주의 조화에 거스르니까.”, “>>ㅑ, 징그러워.” 따위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런 건 자기가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 내적 동기쯤이야 될 수 있겠지만, 남들한테 얘기해줄 사항은 못되죠.. 그런데 이런 게 바로 현재 유전자 변형 식품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또는 다른 이유(주로 정치경제적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뻔한 핑계죠.

유전자 변형 식품에 올바르게 반대하는 방법은? 조목조목 팩트를 들이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찬성하는 쪽이 선별적으로나마 들이대는 게 바로 이런 종류죠. 수확량 증대나 원가 절감, 인체에 전혀 무해함~ 같은 얘기들. 싫다고 도리도리해봤자 수확량이 증대되고 원가가 절감되며 인체에 무해하다면 도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 싫으면 도리도리만 하지 말고 합당한 이유를 대야죠. 유전자 변형 식품을 먹었을 때 몸에 어떤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경험적 증거, 유전자 변형 작물을 재배할 때 생태계에 어떤 해로운 영향을 줄 것이라는 구체적인 증거 같은 것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반대하는 것은 유전자 변형 식품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변형 식품이 가져올 폐해에 대한 반대입니다. (저는 모든 올바른 반대란, 절대로 어떤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리라고 짐작해봅니다.)

바로 이 때에야 비로소 타협이라는 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도입시 이익이 어디에 얼마나 될지, 또 손해는 어디에 얼마나 될지 양쪽에서 들이미는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해보고, 그때에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다면, 그 때부터는 정치적 사안이 되는 거죠. 이를 테면, 인체에는 정말 무해하고 경제성도 좋은데 반면에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양쪽의 질적 가치를 비교하고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일은 정치적 찬반에 따라 결정할 문제입니다. 반대하는 정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싫다고 끝까지 울면서 우기기만 했을 때에 가능한 최선의 타협 지점은 아마도 어느 제품에 유전자 변형 식품이 들어있다는 간략한 표기 정도 뿐일 겁니다. 십중팔구 무시&미움받기 일쑤겠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누군가 생명 공학 자체에 열렬히 반대해서 진정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생명공학자들의 짜증과 분노 뿐입니다. 그 자체로서 윤리와 불화하는 것은 아마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특정 교리나 법에 불화하는 것은 여기저기 많겠습니다만.

황우석의 사기와 같은 사건은 어느 분야에서나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틈타 은근슬쩍 원래 그런 거 자체에 반대하고 다니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판에, 평소에 즐겨보는 은하님의 블로그에서까지 비슷한 논리를, 그것도 부당한 이유를 정당화해가며 펼치고 계신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과학은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떠한지에 대해 말해줄 뿐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과학적인 무대에서 갑자기 어떤 정당화나 도덕적 판단, 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식의 발언이 결론으로 튀어나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주장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이지 그 무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결론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러한 결론의 오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자체를 거부해 버리곤 한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엮음. 68쪽. 헬레나 크로닌, ‘인간의 본성이 권리를 얻다’ 中.

인문학도로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이에요. 추천 한방. :) 오늘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은하님의 글이 다시 떠올랐더랬습니다.

ps. 그러고 보니 누가 하지도 않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스스로 만들어낸 다음 신나게 후려치는 것 역시 관련업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중 하나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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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에 반대하기”에 대한 2개의 생각

  1. 생명공학 그 자체의 단계에서는 전혀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사실 문제일 뿐이거든요. ===> 그렇지 않습니다. 낙태문제를 보면 그걸 쉽게 알 수 있죠. “사람”이 무엇인지, “생명”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등의 문제는 과학자들이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히 하지 못한 문제니까요. 그렇다고 접근해 가고 있다는 식으로도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절대로 해를 얻을 수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지만요.)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팩트”가 아니라 “정치적 사안”이나 “이데올로기” 등이 중요해집니다. 그걸 팩트를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문제라고 쉽게 결론내릴 수 없습니다. (“팩트”를 말하지 않아서 생기는 혼란이라고 비난하는 관련업자들의 후려치기 역시 이런 경우에는 100퍼센트 “이데올로기”일 뿐이거든요. ;P )

  2. t/ 앗, 덧글 다는 새에 덧글이. @_@

    하긴,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좀 오바했네요. 황구라 땜시 생명공학이 비윤리와 연관되는 것은, 마치 무신론자라고 양아치 취급 받는 것 같아서 좀 울컥했나봐요.

    사람이란 게 무엇인지 아직 완전히 다 알지도 못하고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당장 그에 대한 입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인은 20세 이상인 것이고, 법인은 사람 대접해주는 것이고, 수정란은 사람 취급 안 하기로 임의로 정해두는 것에 불과한 것이겠죠.

    그러고 보니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려는 경향은- 오묘한 이유로 인해 수정란부터 사람으로 보고 싶어하는 천주교가 생명의 정의를 현재의 타협점으로 끌어내린 덕이 큰 것 같은데 저는 그게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뭐랄까 현재의 타협 지점은 어느 정도 제 이데올로기와도 합치되는 것 같습니다만, 거기에 이르는 논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듣다 보면 만사가 귀찮아져버릴 지경입니다. 적어도, 타협에 이르는 토론의 스킬이 좀 더 세련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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