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틱 바이트

“아, 이번 달 제 통신 요금에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서요. 무슨 복권 당첨된 줄 알았어요. 평소보다 0이 열댓 개는 더 붙어서 왔더라구요.”
“종량제 요금을 쓰셔서 그렇습니다. 고객님. 이번 기회에 범국민 안심 요금제로 바꿔보세요.”

“아니, 종량제인 건 아는데,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니까요? 말이 안 돼요.”
“확인 결과 고객님의 청구서에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요금이 항성간 통신 요금에 붙어 나왔군요.”

“그래도 그렇지, 난 안드로메다에 사는 친구한테 ‘안녕?’이라는 안부 인사 한 마디 보냈을 뿐인데, 그렇게 많이 나올 리가 있어요? 저도 바이트당 요금이 얼만지 정도는 안다구요.”

“아니 아무리 종량제라도 그렇지. 한글 두 글자에 물음표 하나잖아요. 겨우 요거 보내는 데에 용량이 얼마나 된다고. 이게 말이 되냐구요. 제가 보낸 메세지의 상세 내역을 좀 알려주세요. 도대체 뭘 얼마나 보낸 거에요?”
“총 2시멘틱바이트만큼 보내셨습니다.”

“아니 겨우 그거 보냈는데 뭐가 그렇게 비싸요. 아무리 종량제라도 너무한 거 아녜요?”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방금 알려드린 것은 의미론적 용량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쓰는 시멘틱바이트는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는 크기가 아니거든요. 종량제 요금은 물리적 용량을 기준으로 부과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지금 물리적 용량을 계산중입니다. 요새는 개인용 컴퓨터에 사설 저장 장치 따위를 달아놓는 긱들 말고는 물리적 용량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거든요.”

“됐으니까, 몇 바이트인지나 빨리 알려줘요.”
“고객님께서는 안드로메다로 총, 삼.백.구.십.칠.조.오.천.삼.백..십.억.오.천.오.백.팔.십..만.구.천.오.백.삼.십.육.. 바이트를 전송하셨습니다.”

“에라이, 거기서 착오가 있었구먼. 난 겨우 두 글자 보냈다구요. 한번 확인해보세요.”
“착오는 없었습니다. 용량 대부분을 주로 광고가 차지하고 있네요. 고객님께서 선택하신 사항입니다. 광고가 붙으면 대개 송신비용이 줄어드는데, 이 경우엔 메세지 자체가 너무 짧다 보니 오히려 비용이 늘었나 보네요. 지금 고객님께서 이용중인 터미널로 상세 내역을 전송해드리겠습니다.”


보내신 메세지의 물리적 용량 상세 내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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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지 전송 필수 용량
——————-
메세지 텍스트: 5바이트
메세지 텍스트 전송 오류시 수정용 코드: 372바이트
송신자 정보: 3728바이트
수신자 정보: 2718바이트

이용자 선택 옵션: 내용과 관련된 광고 및 정보 용량
——————————————–
메세지와 관련된 광고 텍스트: 2589632바이트
메세지와 관련된 광고 이미지: 8265892302바이트
메세지와 관련된 광고 동영상: 379898652372바이트
광고 검색용 인덱싱: 372812바이트
메세지와 관련된 최근 시사 정보: 4592016바이트
메세지와 관련된 교육 정보: 27389481바이트
메세지 음성 변환 정보: 2837492바이트

보안용 정보
———-
개인용 암호화: 3678421바이트

추가: 세관 및 검역용 정보
———————-
전송자 관련 정보: 172839바이트
수신자 관련 정보: 278391바이트
통신업체 관련 정보: 3728192바이트
바이러스 및 악성 코드 검사필 인증: 2718바이트

항성간 통신 프로토콜이 필요로 하는 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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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화시 이음새 표시 정보: 3728198바이트
안정적 평행 전송을 위한 메세지 중복: 위의 총합x1024

총계
———————–
397531055809536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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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틱 바이트”에 대한 3개의 생각

  1. 물론 이건 농담이고.

    실제로 물리적 용량은 최종 사용자들로부터 한없이 멀어지고 있다.

    1. 아예 os단계에서 잡아먹는 포맷 방식에 따른, 물리적 디스크를 잡아먹는 용량.

    2. 데스크톱 검색, 이미지 뷰어, 백신 따위의 인덱싱이 잡아먹는 용량! 이제 이런 건 거의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오. 세월이여.

    3. 하다 못해 언그제 작성한 워드 파일이 몇 바이트인지 기억하는 사람? 이제 간단한 메모조차도 .txt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궁극적으로 아무도 로컬 드라이브의 용량 따위에 신경 안 쓰는 세상이 곧 오리라.
    파일 시스템 자체에도 큰 개선이 있어야 함. 8.3 칸 늘려주고 규칙 완화해준 거에 감지덕지하던 게 벌써 언젠데. 아직도!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빨라지면 세상은 또 얼마나 달라질까.

    두근두근두근두근.

  2. 멋진 패러디입니다.

    몇 년 뒤에는, “그땐 기술이 없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지, 그런 시절이었어”라고 지금의 기술들을 회상하는 시대가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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