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

요즘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신나게 감상중입니다. 벌써 일년치 이상 보고 있군요.
재밌다 재밌다 말만 들었는데 이거 정말로 재미있네요!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싶었는데 그것은 바로 돈키호테였습니다. 두둥.

1. 우선 장르 자체를 소재로 삼는 메타적 유머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대체 이게 뭔 소리람? -_-a) 두 작품의 핵심인 기사도 문학에 대한, 아니메에 대한 끊임없는 패러디! 각자의 시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의 총결산입니다. 그래서 패러디 대상까지 어느 정도 알지 못하면 재미가 떨어집니다. 제가 어릴 적, 테레비에서 어린이 명작만화랍시고 돈키호테를 하는 걸 (아마도 유럽산 간지…) 보고 벙쪘던 기억이 납니다. 만화라면 고등학교 때까지도 반에서 혼자 야자도 빠져가며 포켓몬, 레이아스, 슬레이어즈를 볼 정도로 사족을 못 썼었는데. 어릴 때 기억으로 아직까지도 대체 포인트가 뭔지 이해할 수 없는 만화가 바로 저 돈키호테와 고바리안과 아스테릭스였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 보고 나서 자 이제 재미있는 부분을 보여줘… 하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_-;;; (음, 고바리안은 분명 로보트 나오는 건데, 어째 뭔가 너무 난해했던 걸로 기억.. -_-;;;; 아스테릭스도.. -_-;;;) 그건 그렇다 치고 돈키호테의 경우 소설을 매우 재미있게 읽은 오늘날 돌이켜 보니-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제 잘못이 아니었던 겝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딴 걸 어린이 명작만화랍시고 제작, 광고, 방송한 놈들 탓! 흥. 아이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를 충분히 뽑아낼 수 있는 정치풍자 세태풍자 블랙코미디인 걸리버와는 달리, 돈키호테 애니메이션은 아동을 대상으로 재해석해서 남길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 미친놈 미친짓 뿐이기 때문입니다. -_-;;;;;; 아이들에게 돈키호테 책을 읽히시거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시려거든 차라리 케로로 중사를 보게 하세요. 자기 자신과 장르와 시대를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패러디의 본질과 핵심을 체험하는 데에는 차라리 케로로가 교육적이리라는 데에 300원 겁니다.

2. 등장인물들 캐릭터 자체가 패러디입니다. 덜떨어진 자칭 기사와 산초 판자 콤비, 덜떨어진 자칭 군인 전대는 각자 미친놈 망상과 외계인 오버사이언스라는 설정을 통해 중구난방 이야기를 끌어나갑니다. 주로 유쾌한 실패담이 주를 이루지만,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어떤 슬픈 진지함이 깔려 있습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인 기사도 문학 광팬 돈키호테와 건프라 오타쿠 케로로는 어딘가 나사 풀린 삶을 살면서 남들에게 폐만 끼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랑스러운 주인공인 이유는 끊임없는 삽질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살짝살짝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는 진짜 목적이야 물론 자기복제-,.-겠습니다만, 우리 지구인들은 돈이나 사랑, 행복 같은 가짜 목적을 추구하며 사는 데에서 더없는 보람을 느끼는 별종들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진짜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종종 정말로 진짜가 되어버리기도 하죠. 이런 가짜 목적들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것들이야말로 우리네 짧고 가련한 삶을 보다 즐겁고 윤택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몰입도 같은 것이랄까. 기사도 소설 같은 장르 문학이나 건프라, 게임, 아니메, 오컬트 등등은 바로 이런 가짜 목적 중 이름난 것들입니다. (여기 들르시는 독자분들께는 블로그도 빠트리면 안 되겠군요. ^^) 개인적으로 문명의 발달 정도를 가늠하는 한 가지 척도는 바로 이런 가짜 목적들에 대한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하하. 저는 놀 줄 모르는 동물이나 외계인과는 그다지 교류하고 싶지 않아염. 삶의 가짜 목적들에 대한 몰입도가 지나쳐서 삶의 다른 중요한 부분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캐릭터들은 감상자들에게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웃음과 함께 제공합니다. 이런 훌륭한 패러디는 그 자체로 패러디의 소재인 가짜 목적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지표입니다.

3. 케로로는 왜색이 짙습니다. 하지만 왜색 덩어리를 알량한 한 꺼풀 손바닥으로 감추려 했던 플라네테스와 달리 케로로는 꽁수를 쓰지 않고 정도를 걷습니다.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창작자의 자세일 것입니다. 플라네테스가 역했던 이유는 뻔히 보이는 걸 설정이랍시고 아닌 척하는 유치하고 가식적인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케로로식 왜색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오히려 일본 문화에 대한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하. 돈키호테 역시 당시 생활상이나 사람들 사고방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학습자료입니다. 사극 좋아하시는 분들도 한번 속는 셈치고 읽어보셈. ㅡ,.ㅡ

어이쿠, 쓰다 보니 이게 뭔 개소리람. 닥치고 마저 보기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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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에 대한 2개의 생각

  1. 글쎄….요; 전 케로로의 그 “인생의 가짜목적”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단순히 (일본에는 오타쿠가 넘쳐난다는) 현실에 의해 자연발생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에 케로로에 딱히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재미는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케로로만이 아니라 일본 만화계나 애니계가 통째로 패러디에 올인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에겐 그다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외려 패러디의 범람 현상이 제게는 현 세대가 고만고만한 문화코드를 장기간 공통소비한 결과 창작마저 그들에게 발맞춰 기존 코드의 재탕으로 점철되는, 일종의 자가복제 현상으로만 보였습니다.

  2. 하/ 앗, 전문가 강림!

    “일본 만화계나 애니계가 통째로 패러디에 올인해있는 상태” -> 앗, 그런가요?! 제가 사정을 잘 모르다 보니… ㅡ,.ㅡ 이 정도 수준의 패러디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라면 그것도 대단하군요.

    변명해주자면 기존 코드의 재탕, 자가복제 현상 등등은 창작의 정체를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숙할만큼 성숙한 문화산업이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는 외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으니, 헌 거 가지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수밖에 없어지는 시기..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도래했다는 뜻이라고 봐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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