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의 히트작. 겉질(피질?), 마루엽(두정엽?) 같은 한글도 아니여 한문도 아니여 번역이 쫌 생소했음. 이렇게들도 쓰나?
신경과 의사인 저자에게 찾아온 각종 신경계 이상 환자들에 대해 쓴 짤막한 이야기들 모음집.

음..

그래, 남의 얘기인 것처럼 쓸 필요없지.. 책 얘기 할 거 없이 내 얘기나 해보자.

며칠 전 TV에 난데없이 중간중간 욕을 해대는 뚜렛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나왔었다. 그걸 보면서 어머니께 내가 그 증후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그래, 너도 어릴 때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서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했었지. 더 심해지면 병원 가보라셨는데 몇 달 안 가 멈추더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심리학 개론 때도 남의 얘기처럼 흘려 배웠던 각종 증상에 대한 나 자신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1. 꽤 어릴 때, 보다 정확히는 미취학 아동 때 ^^ 나는 말을 더듬었다..고 전해진다. 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던가. 이 때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몇 가지 기억나는 거.

a. 소심하게스리 한글을 거의 완전히 깨우칠 때까지 겉으로 드러나게 한글 읽기를 시도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일단 읽기 시작하니까 완전 한 방에 술술술.. 읽는 것처럼 보였겠지. 신동 탄생 비화. v-_-V

b. 말 중간중간마다 “….어?…어?…” 하는 추임새를 넣었었다. 두 세 문장 말하려면 대여섯 번은 들어갔던 듯. 전형적인 말더듬, 틱 증상과 유사.

2. 그보다 좀 커서, 꽤 낮은 음역으로 성대를 울리는, “음”, “음”하는 소리를 내는 버릇(이라고 쓰고 틱이라고 읽는다)이 몇 달 간 지속된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게 아마도 이 때인 듯. 지금 생각해 보면 주온의 그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냈던 듯. 짧게. 뜬금없이.

3. 어디 그 뿐이랴.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입을 크게 쩍 벌리는 틱, 눈을 깜빡이는 틱, 눈을 크게 떠서 쌍꺼풀을 뒤집는 틱-_- 기타 등등등을 거쳐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가지가지했다. 헐. 그래도 각각 몇 달 정도씩 경미한 수준에서 넘어가고 심화되지 않은 것은, 걱정은 할지언정 바로잡겠다고 야단친다거나 하지 않은 부모님의 덕이 아니었을까. 이런 버릇들은 원래 야단치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함. 못하게 하면 할수록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충동임. 난 뭐 하고 싶어서 한 줄 아나.

4. 이게 끝이 아니다. 사춘기 땐 눈썹을 뽑고 싶은 충동에 몇 달 간 시달린 적도 있다. 못해도 수십 개는 뽑았던 듯. 미용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근 대인기피로 이어지는 테크트리. 그래서 최근 그 증상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혼자 뜨끔했었다.

0. 초등학교 저학년 때, 태권도장 사범이 하던 용의검사를 무사통과하기 위해 물어뜯기 시작했던 손톱은 요즘에도 종종 신경이 곤두서면 물어뜯곤 한다. 뜨헉. 처음에 물어뜯기 시작했던 이유롤 저걸로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 울 어머니께서도 뜯는 걸 보면 이거 유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_-

0. 걸음마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놀림을 받고 있다. 발뒷꿈치를 들고 걷는다고들 그러는데, 나는 내가 뭘 이상하게 걷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들 하니까 그러려니 할 뿐. 중학교 땐 날 더러 까치발이라고들 놀렸었고, 고등학교 땐 어릴 때 발레-_-를 배워서 그렇다는 유언비어가 퍼졌으며, 심지어 군복무 시절 어떤 미군은 Mr. Toe Man이라고 불렀었더랬지. 푸헐. 원인은 모르겠다.
신경계 이상일까? 신체 조응에 문제가? 전정기관에? 발목이나 고관절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단순히 걸음마 배울 때 그렇게 익혀서? 울 어머니께서도 구두를 신어서 티가 안 나지, 구두 신기 전에는 나처럼 걸었다는 설이 있는 걸로 보아 유전적 소인이 있을지도 모르겠음.

그래서.

이 책을 읽은 것이 내 어린 시절에 대해 꽤 위안이 된다.
그래도 써놓고 나니 목록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왠지 부끄럽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대한 4개의 생각

  1. 겉질, 마루엽… 저도 한글로 아니고 한자도 아닌 이 표현들이 어색한데, 요즘들 쓰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특히 신경과쪽에서.
    뭐 예전 용어들도 일본식 한자가 많아서 좋은 건 아니었지만, 저 표현도 왠지 어정쩡. 흔히들 자주 쓰는 한글에다 붙인 것도 아니고(산마루야 알지만, 마루 자체를 요즘 많이 쓰진 않잖아요. 하긴 호두마루가 있군요. ^^;) 순한글에 한자여서…

  2. 덧/ 그죠그죠. 이상해요. 새 단어는 처음 도입될 때 제대로 다뤄야지- 나중에 바꾸려들면 반드시 혼란을 초래하고, 비용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그 마루보다 “마루 좀 쓸어라” 할 때 그 마루가 더 친근하죠. 마루엽의 엽이 잎이던가요. 순한글로 하면 마룻잎이 될라나. 하긴 또 모르겠습니다. 이렇게들 쓰기 시작해서 세대가 바뀌어 제대로 자리잡고 나면 한문도 모르는데 음만 따온 한자어 따위보다 훨씬 직관적일지도..
    요즘 제가 좀 횡설수설합니다;; 왜 이러지;;; 코카콜라 제로를 너무 많이 마셨나.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