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를 두번 죽이는 사람들

디워를 두번 죽이는 사람들

  • 대개 디워를 옹호하시는 분들 중에는, 디워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고 하시는 분들이 주를 이룬다.

핵심이 되는 큰 스토리(=착한 이무기 승, 나쁜 이무기 패)가 뻔한 영화에 스토리 그까이꺼 다 아는 거지. 뭐 이빨 좀 빠진 정도 가지고 그러냐..는 분들. 원래 마음의 눈으로 보면 빠진 이빨도 다 보입니다.
관람 태도가 매우 능동적이라서 감독이 빠트린 부분은 알아서 끼워맞춰주는 착한 관람자들입니다. (이 사람들 무시하면 안 돼요. 이런 분들이 바로 밤하늘에 박혀있는 수많은 쩜-_-들을 보고 별자리들과 딸린 스토리들까지 만드신 분들입니다.) 자기네들끼리 빠진 부분의 해석에 관해 서로 막 토론도 하고, 그 중에 그럴싸한 해석은 권위를 인정받아 널리 퍼지기도 합니다. 좋게 보자면 열성팬인 거고, 나쁘게 보자면 마음에 병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분하는 방법은? 자기네들끼리 오덕오덕 재미있게 잘 놀면 열성팬인 거고, 충무로의 사주를 받았냐는둥 뻘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하면 피해망상과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병리학적 증상인 것이 확실합니다.

야껨 보고 야껨이라 그러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이건 미소녀 cg가 예술 수준이라능!! 스토리는 문학 수준이라능!”하고 우겨봤자 야껨은 야껨입니다.

  •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디워 같은 괴수/블락버스터/SF/CG 영화에는 개연성 같은 거 필요없으니까 괜찮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만든답시고 만들었는데 엉망인 것에다 대고, 어차피 그런 거 필요도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별로 위로가 되지도 못합니다.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자랑하는 유치원생에게, “너는 커서 피카소가 되겠구나”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나. 칭찬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거이거 놀리는 거죠. 유치원생이여, 분개하라!

  • 그나마 디워=아동용이라 괜찮다는 변론은 이치에 닿습니다. 차라리 이걸 계속 밀어부치세요. 화이팅.

실제로 아동들이란 수십 분 동안 20초씩 끊어지는 광고를 열중해서 볼 수 있는 대단한 족속들이긴 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아동심리 발달과정을 전부 거친 성인들은 보통 이런 아동물을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텔레토비 같은 거 보면 열불이 터지죠. 텔레토비 좋아하시는 성인 분들이 있긴 하지만, 대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요소를 좋아하고 계신 겁니다. 이런 상황에 다 자란 성인이 재미도 없는 아동물이나 보러 다닐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디워=아동용 변론의 모범 답안은 “솔직히 나는 재미 없었는데, 우리 애들은 좋아하더라.”입니다. 아 애들이 좋아한다는데 어쩌겠어요. 전부 닥치고 버로우밖에 더 하겠어요.

  • 걔중에는 포르노에 비유하시는 분들도 계십디다. 이거 꽤 창의적이던데..

디워같은 대중영화에서 그런 인과가 머가 필요하죠?? 디워에 가슴두근거리고 열광하는 남자들이 원하는건 이무기가 도시를 파괴하는거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감히 생각할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 예를 다른거로 들어서 포르노영화에 열광하는것도 그걸 원하는 남자들은 섹시한 여자의 야릇한 장면과 신음소리뿐입니다..

(완소 아리스토텔레스 무시한 건 넘어가고…) 위와 같이 디워를 포르노에 비유하며 옹호하시는 분이 실제로 계셨습니다. 처음엔 비꼬는 건 줄 알고 껄껄 웃을 준비를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듯해서 민망했습니다. 간단히 이무기 하악하악이라는 말씀인데.. 물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포르노 시장이 부재하고 인터넷 야동 공유 프로그램만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듯이, ‘핵심장면만 이어붙인 동영상==포르노’라면 그나마 맞는 얘기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극장에 걸리는 풀버전 포르노-,.-라면 인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집니다. 하다 못해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만 있었다…” 식의 인과라도 필요합니다. 무슨 분유 선전에서 아기 집중력은 8초라 그랬는데, 진짜 8초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아기가 아닌 이상, 메멘토 주인공이 아닌 이상, 끊임없이 인과관계를 따져대는 서비스가 백그라운드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성인들이라면 90분 안팎의 시간 동안 펼쳐지는 개연성 없는 장면의 나열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 심지어 이렇게 막나가는 분도 계십디다.

영화란 장르는 공연예술과는 다릅니다. 영화란 장르에는 서사 스토리 플롯 따위 없어도 됩니다. 영화란 ‘빛을 이용한 연출 놀음’ 입니다. 스토리 BGM 배우 모두 빛을 사용한 연출의 구성일 뿐입니다.

이건 뭐 답이 없음. 음악에는 음정에 박자 따위 없어도 됩니다. 음악이란 ‘소리를 이용한 연주 놀음’입니다. ㄳ.
아 눼,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없어도 됩니다. 세상에는 존 케이지 같은 음악가도 있습니다.
근데 심형래가 존 케이지냐고. 디워가 무슨 4분 33초냐고.
그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2mm쯤 넓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토리 옹호하시는 분 보고 심형래가 무슨 브레히트냐 연출 엉성한 게 무슨 소격효과냐 그러는 분도 계셨는데. 이거 오늘 피카소에 케이지까지 나왔네 하하하.

디워를 두번 죽이는 사람들”에 대한 16개의 생각

  1. 저만 그런 생각을 가진게 아니라는데 상당한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못봤는데.. 예고편과 들리는 이야기만 들어도 이건 완전히 700억 들여 만든 우뢰매인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사람들 보고..
    내가 이상한건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2. 거/ 세상엔 도저히 속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참 많이도 있습니다. 이거 하나만 확실히 기억해두면, 마음에 참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하하.

  3. “심형래가 브레히트냐”는 제가 쓰려고 했는데 선수 빼았겼군요…orz 아까비.
    진중권씨가 아리스토텔레스 운운했다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운운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사람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갖다놓으면 피타고라스의 권위에 호소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나올 사람들이지 싶습니다.

  4. 통렬하고 재미있는 글이군요 -_-)b
    하지만…그래봐야 예로 드신 저정도 주장하시는 분들에겐,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내거나 우기실 분들이라 효과는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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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니 이게 뭔 일인가 했더니 모기불 이펙트..

    구/ 롯꼬가 뭔가요? 몰라.. 무서워..

    하/ 저는 그런 걸 “논술 첨삭 알바의 오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는 오류 이름을 일단 갖다붙이고 보자는 강박의 소산..

    Dr/ 열성팬 분들은 괜시리 건드릴 필요가 없고, 저런 분들은 원체 말이 안 먹히죠. 그래서 이렇게 대화는 포기하고 혼자 웃기만 합니다.

    Da/ 앗, 참으면 병 돼요.

  7. n/ 그 질문은 곧 “디워가 이제 미국에서 개봉하면 흥행할까?”와 통하는데, 콩깍지 단단히 씌운 사람들이 많더군요.
    에, 그리고.. 히딩크가 축구 감독 때려치고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8. R/ 전 야겜을 해본 적이 없어서.. *^^* 별처럼 많은 야겜 중엔 진짜로 스토리가 문학 수준으로 반짝이는 야겜도 분명 있겠죠. 뭐.

    영화에 대한 호오는 치고받고 싸울 주제가 아닌데, 왜들 싸우려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평론가 블로그 다구리에 꼭지라도 돌았다면 모를까..

  9.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혹시, 마지막 부분이 제 글 보고 쓰신 건가요? 문맥으로 봐서는 전혀 아닌 것 같고, 얼핏 보면 그런 것 같고, 알쏭달쏭입니다. 검색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네요. 혹시 다른 데서 그런 글을 보셨다면 제게도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네요.

  10. “디워의 서사는 전래동화의 서사” 변론 추가:

    하늘에서 동앗줄이 내려오는 전래동화 보고는 뭐라고 안 그러면서 디워 가지고는 왜 그러냐고 그러는 분이 있습니다. 솔직히 전래동화는 누가 마음 먹고 썼다기엔 어이없는 스토리가 많죠. 어쩌면 누가 써놓고도 자기 이름 달기 민망해서 익명으로 공개했던 것이 전래동화의 기원이 아닐까 함. (믿으면 골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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