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한국 블로거 연맹(가칭. 현재 회원 1명.) 위원장 intherye입니다.

몇 년 전에 사놓고 왠지 지루할 것 같아서 안 읽고 내팽겨쳐뒀던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이제야 읽었습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더군요.

읽다가 재미있어서 표시해뒀던 부분들을 분당 600타의 광속으로 퍼오겠습니다.

  1. 43쪽. 최근 10년 동안 영어사용권 국가들에서 소련에 관해서 쓰여진, 그리고 소련에서 영어사용권 국가들에 관해서 쓰여진 글들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조차 상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쓸모없게 되었고, 그 결과 상대편의 말과 행동은 항상 악의에 차있고 분별 없고 위선적인 것처럼 보이게끔 되어버렸다. 만일 역사가가 자신의 서술대상인 사람들의 마음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수 없다면 역사는 쓰여질 수 없을 것이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도 과거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음. 그 결과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조차 안 쓰게 되었음. ㅊㅋㅊㅋ.
  2. 50쪽.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끊임없는이라기보다는 끝없는 이라고 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 치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참고서 따위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구호를 원저자의 목소리로 다시 듣게 되니, 그것도 자세하고 박식하고 논리적인 서술 끝의 요약으로서 다시 읽게 되니 참 감회가 새롭다. 각급 학교에서는 무식하게 세계사 연표를 달달달 외우게 하고는, 통합교과형이랍시고 특정 연대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같은 퀴즈쇼 같은 문제를 수능에 출제하는 대신, 차라리 한 학기 동안 이 책을 읽혀라. 역사가 무슨 하늘천따지도 아니고..
  3. 72쪽.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고대 그리스 얘기…) 특히 이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그 역사이론을, 말하자면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배웠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거기에 무언가 유치한, 아니면 어쨌든 어린애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 이론은 사회가 보다 단순했던 그리고 공적인 일들을 소수의 유명한 개인들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럴듯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더욱 복잡한 사회에 대해서는 분명히 들어맞지 않는다; 따라서 19세기에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것은 이 증대하는 복잡성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다’라는 말은 여전히 존중받는 금언이었다.: 한국에선 21세기 초에도 그런 유치한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대통령 선거에 올인할 수밖에.. 대통령 선거라고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솔직하게 왕 선거, 오야붕 선거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4. 84쪽. 자기가 살고 있던 시대나 자신이 살고 있던 국가의 사회에 대해서 니체보다 더 격렬하고 더 철저하게 반항했던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니체는 유럽 사회의, 보다 특수하게는 독일사회의 직접적인 산물–중국이나 페루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 개인으로 표현되었던 유럽의 사회적 힘, 특히 독일의 사회적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는 그의 동시대인들보다는 그가 죽은 지 한 세대 후의 사람들에게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니체는 그 자신의 세대보다도 후세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광인들을 위하여
  5. 89-90쪽. 그리고 자연계의 연구에 적용되었던 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의 문제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되었다. 이 시대의 전반부에는 뉴턴적 전통이 우세했다. 사회는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는 1851년에 출간된 허버트 스펜서의 책의 제목이 「사회정학(靜學)(Social Statics)」이라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버트란드 러셀도 이 전통 속에서 성장했는데, 후일 그는 ‘기계수학만큼이나 정확한 인간행동의 수학’이 조만간 나타나리라고 기대했던 시절을 회상한 적이 있다. 그 시절에 다윈은 또 하나의 과학혁명을 이룩했다; 그리하여 생물학에서 단서를 얻고 있던 사회과학자들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윈의 혁명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다윈이 이미 라이엘에 의해 지질학에서 시작된 것을 완성시키는 가운데 역사를 과학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과학은 더 이상 정적이고 초시간적인 어떤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다루는 것이 되었다.: 저는 사실 지금도 인간과 사회가 기계적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우매우 복잡한 기계죠. ㅋㅋㅋ 그러고 보니, 그 전까지의 과학은 시간 개념과는 담을 쌓고 있었겠군요. 천체나 원소 따위야 전부 원래 있었던 것,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했을 듯. 작물/가축의 품종개량이 인간의 한 세대 내에서도 일어날 정도로 빠르고 쉽지 않았다면 그런 식의 변화가 훨씬 늦어졌을까나?
  6. 101쪽. 일반화가 역사와는 관계 없다고 하는 것은 몰상식한 말이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 번성하는 것이다. 엘턴이 「케임브리지 근대사(Cambridge Modern History)」 신판의 어느 한 권에서 산뜻하게 지적하듯이,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주는 것은 일반화’이다; 그는 자연과학자를 박물학자나 표본수집가와 구별해주는 것도 바로 그 일반화라고 덧붙였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화가 특수한 사건들이 반드시 끼워맞추어지는 어떤 거대한 체계를 세울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역사적 사실 수집가=자연과학자:박물학자나 표본수집가. 양쪽 모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주는 강력한 비유의 힘.
  7. 114쪽. 마지막으로, 그렇다고 해서 가장 소홀하지는 않게 논의해야만 하는 것은 역사는 종교와 도덕의 문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 일반과는 구별되며 심지어는 다른 사회과학과도 구별될지도 모른다는 견해이다. 역사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데 필요한 만큼만 조금 이야기하겠다. 진지한 천문학자가 된다는 것과 우주를 창조하고 정돈한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멋대로 행성의 경로를 변경시키려고, 일식이나 월식을 지연시키려고, 우주의 운동규칙을 바꾸려고 끼어드는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진지한 역사가라면 역사 전체의 경로를 지시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어떤 신은 믿을 수 있지만, 구약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아말레크 사람을 학살하는 데 개입하거나 여호수아의 군대를 위해서 낮시간을 늘임으로써 날짜를 속이는 그런 종류의 신을 믿을 수는 없으며, 혹은 개개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불러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쫌 불만족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상당히 적절한 타협. 하지만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의 작업은, 우주를 창조하고 정돈한 어떤 신을 믿는 것과도 양립시키기 어렵겠지. 대충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접근하자..
  8. 123쪽. 이를테면 1780년 무렵과 1870년 무렵 사이의 영국의 공업화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실제로 역사가라면 누구나 산업혁명을 아마도 이론의 여지없이 위대하고 진보적인 하나의 업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역사가는 또한 도시로부터의 농민의 추방, 더러운 공장과 불결한 거주지로의 노동자들의 집결, 아동노동의 착취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짐작컨대 그는 그 제도의 운용에서 폐해가 발생했다고, 또한 어떤 고용주들은 다른 고용주들보다 더 잔인했다고 말할 것이며, 일단 그 제도가 확립된 이후에는 인도주의적인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점차 성장했음을 자못 감동적으로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짐작컨대 말로 나타내지는 않겠지만, 강제와 착취의 수단들이 적어도 그 최초의 단계에서는 공업화의 대가의 불가피한 일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나는 그 대가라는 점에서 볼 때 진보의 손을 붙들어매어 공업화하지 않은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한 역사가가 있다는 소리를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역사가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체스터턴과 벨록의 학파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고, 따라서 진정한 역사가들은–아주 지당하게도–그들을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의 근대화에 대한,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써있던 장하준의 견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음.. 감정적 반발 말고 딱히 뭐라 할 말이 없긴 하다. 쩝..
  9. 126쪽. 개인적으로 나는,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었던 것은 통제되지 않고 조직되지 않은 자유방임경제였으며, 계획이란 경제과정에 ‘경제적 합리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라는 그 반대편의 주장에 더 공갑하고 있다.: 말짱 도루묵 신자유주의 만세. 만세.
  10. 142-143쪽. 그러면 먼저 결정론부터 살펴보겠는데, 나는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 중에서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신념–이에 관해서는 논쟁이 없기를 바라면서–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결정론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행위의 문제이다.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다라서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란, 우리가 지난번 강연에서 논의한 바 있듯이, 사회의 밖에 존재하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추상이다.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포퍼 교수의 주장은 의미가 없거나 거짓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으며 믿을 수도 없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자명한 명제는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의 한 조건이다.: 데닛의 분류에 따르면 지향적 자세에 해당하는 것이 역사적 인과의 기준이 될라나? 그의 구분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아주 유용하다!
  11. 153-154쪽. 다라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역사의 기록 속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찾아내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이 우연의 침투에 맞서 역사의 법칙을 수호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은 분명히 몽테스키외였다. 그는 로마인들의 위대함과 몰락에 관해서 쓴 저작에서 ‘만일 어떤 전투의 우연한 결과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원인이 한 국가를 멸망시켰다면, 단 한번의 전투로 이 국가를 몰락시킨 어떤 일반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연한 결과에 대한 합리적 태도를 고집하는 건전하고 아름다운 자세.. 굴드랑 싸웠던 도킨스가 떠오른다.
  12. 156-159쪽. 클레오파트라의 코의 생김새, 바야지드가 관절통에 걸린 것, 원숭이가 알렉산드로스 국왕을 물어 죽인 것, 레닌의 사망–이런 사건들은 역사의 경로를 바꾸게 한 우연들이었다. 이것들을 감쪽같이 감추려고 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고 꾸며대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다른 한편, 그 사건들이 우연적인 것인 한, 그것들은 역사의 어떤 합리적인 해석이나 중요한 원인에 대한 역사가의 등급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포퍼 교수와 벌린 교수–내가 다시 한번 그들을 인용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유명하고 가장 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그들 학파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이다–는 역사과정에서 중요성을 찾아내고 그것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역사가의 시도는 ‘경험 전체’를 하나의 균형잡힌 질서로 격하시키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며, 역사에서의 우연의 존재 때문에 그런 식의 모든 시도는 애당초 실패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정신을 가진 역사가라면 감히 ‘경험 전체’를 망라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역사분야 또는 역사적 측면에서조차 겨우 사실들의 근소한 부분만을 망라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자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역사가의 세계도 사진을 찍어놓은 것과 같은 현실세계의 복사판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가가 효과적으로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작업 모델이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에서, 즉 그가 입수할 수 있을 만큼의 과거의 경험에서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을 가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들을 추려내어, 그것으로부터 연구의 지침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중간 생략. 이 뒤에 담배 사러 가다 차에 치어 죽은 로빈슨의 예가 나오는데…) 우리가 이런 실제적인 문제들(음주운전? 브레이크? 도로 조명?)을 논의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의 유명인사–나는 그들의 신원을 밝히진 않겠다–가 방으로 불쑥 들어와서는 우리에게, 만일 그날밤 담배갑에 담배만 있었던들 로빈슨은 그 길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빈슨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이 원인을 무시하는 모든 조사는 시간낭비가 될 것이며, 그런 조사에서 이끌어낸 어떠한 결론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다라고 대단히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기 시작한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재빨리 그 거침없는 웅변을 가로막고 두 방문객을 공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문 쪽으로 밀어내고는, 절대로 그들을 다시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고 수위에게 지시한 다음 조사를 계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훼방꾼들에게 어떤 다을 줄 수 있을까? 물론 로빈슨은 애연가였기 때문에 죽었다. 역사에서의 우연과 우발성을 신봉하는 자들이 말하는 모든 것은 완전히 사실이며 완전히 논리적이다.: 아놔 비유 웃겨.. 농담도 품위있게 할 줄 아는 재주가 있다. 다시 한번 데닛식의 구분이 필요해지는 시점. 지향적 자세 중에서도 특별히 내 맘대로 역사가적 자세라고 부르자. 하하.
  13. 179쪽.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인간의 완전성이나 미래의 지상천국을 믿지 않는다. 이 정도까지라면 나도 역사에서는 완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에게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그것을 향해 전진해야만 밝혀질 수 있고, 획득하는 과정 속에서만 그 타당성이 입증될 수 있는 목표들을 향해서 나아가는 무한한 진보–바꿔 말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상상할 필요가 있는 어떠한 한계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진보–의 가능성에 찬성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이라도 그러한 진보의 개념이 없이 어떻게 사회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이러한 진보 개념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으로서의 진화 개념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듯..
  14. 207쪽. 프로이트가 한 일은 의식과 합리적인 탐구에 대해서 인간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폭로함으로써 우리의 지식과 이해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이성의 영역의 확장이었고, 인간 자신을 따라서 인간의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의 증대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업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미 확장도 대충 다 했고, 증대도 대충 다 했고, 그러니까 프로이트로 할 수 있는 혁명과 진보는 대충 다 이룬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프로이트 운운하는 사람들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음..
  15. 214쪽.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의 확장을 촉진시키고 따라서 개별화를 증대시키는 필수적이고도 강력한 하나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이익집단의 손아귀 안에서는 사회적인 획일성을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이 떠오르는 대목. 국정교과서처럼 좀 세련되게 하지를 못하고. 너무 티나게 들이대니까 사단이 나는 게지.
  16. 217쪽. 치료 방법은 비합리주의를 숭배하거나 근대사회에서의 이성의 확대된 역할을 부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점점 더 철두철미하게 의식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옳소.
  17. 221쪽. 완전한 의미에서 역사 속에 들어와 이제는 식민지 통치자나 인류학자가 아닌 역사가의 관심대상이 된 인민, 그 인민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전체 세계를 처음으로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오늘날의 일이다. (…) 액턴은 896년의 보고서에서 세계사란 ‘모든 나라의 역사를 합쳐놓은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세계사는 ‘모든 나라의 역사를 합쳐놓은 것’ 그 자체였다. -_-
  18. 223쪽. 일류 대학교라는 데에서 영어 이외의 다른 근대언어에 관한 적절한 지식이 없는 학위시험 응시자에게 역사학 전공의 우등학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저 유서 깊은 일류 학과인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과에서 그 전공자들이 평이한 일상적인 언어로도 매우 흡족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벌어졌던 일을 교훈으로 삼도록 하자.: 대체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을까. 영어 쓰는 사람이 저런 소리를 하니까, 그나마 영어만이라도 잘하려고 용을 쓰는 사람으로서 참 착잡하다. -_-;
  19. 230쪽, 책의 마지막 부분. 나 자신으로 말하면, 나는 여전히 낙관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이스 네이미어 경이 나에게 강령이나 이상을 피하라고 훈계할 때, 오크셔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는 특별히 어떤 곳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배를 흔들지 못하게 살펴보는 일만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포퍼 교수가 하찮은 점진적 공학이라는 엔진의 힘으로 애지중지하는 T자형 고물차를 길 위로 계속 끌고 다니기를 원할 때, 트레버-로퍼 교수가 소리쳐대는 급진주의자들의 콧잔등을 후려갈길 때, 모리슨 교수가 역사는 건전한 보수적인 정신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그래도–그것은 움직인다.’: 저도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스빈다.
Advertisements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7개의 생각

  1. c1/ 하이라이트라서 가장 길게 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헛소리에는 대꾸할 것도 없이 수위 아저씨가 특효..

    c2/ 축하드립니다. 지금 가입하시는 회원 여러분은 다이아몬드 회원으로서 매월 1억3000만원 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합니다, 새 회원을 가입시킬 때마다 3만원씩 받은 다음 그 중 만원씩만 저에게 송금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새 회원들에게 받는 만원마다 삼천원씩만 저에게..

  2. 본문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러니까 책을 읽지 않았다는 부끄러운 말을 살짝 숨기고)

    한국 블로거 연맹(가칭. 현재 회원 1명.) 위원장 intherye입니다
    라는 부분과
    지금 가입하시는 회원 여러분은 다이아몬드 회원으로서 매월 1억3000만원 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합니다
    부분이 솔깃합니다.

    가입해도 될까요. (싱긋)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