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들아 군대 가지 마오

전에 무슨 군대를 가야 하는 이유 어쩌고 쓴 걸 보고 울컥하는 마음에 쓰다가 말아서 임시저장되어있던 건데… 그냥 대충 정리해서 공개합니다.

1. 훈련소에서 총검술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총 끝에다 도검을 매달고, 그것을 쓰는 여러가지 동작을 익히는 건데요.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동작으로 “찔러총”이라고 있습니다. 양손으로 단단히 잡은 소총을 앞으로 힘차게 뻗었다가 다시 당기는 간단한 동작이에요.

찔러총 신나게 배웠으면 써먹어야죠.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라는 다소 유치한 구령을 외치면서 뭐 이런저런 장애물을 통과(십오 년 쯤 전에 일요일 아침마다 하던 장애물 통과 쇼를 연상하시면 돼요.)합니다. 꼭대기에는 사람 키만한 막대기들이 서있는데요. 막대기에 묶여있는 타이어를 찔러총 동작으로 찌르고 돌아오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우리 훈련병 꼬꼬마들에게 타이어는 그냥 타이어일 뿐이죠. 그냥 픽 찌르고 오면 잠시 퍼져서 쉴 수 있는 마지막 장애물 코스일 뿐. 하지만 저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_-* 꼬꼬마의 눈 앞에는 피 튀기는 전장의 그림이 펼쳐져요. 이때 배경은 우거진 한국형 야산이 좋겠소. 때는 꽤 어둡지만 그렇다고 아주 깜깜하지는 않은 초저녁 무렵이 적당하겠소. 어스름한 새벽이어도 좋소. 적은 무시무시한 북한군이 나옵니다. 못 먹어서 키 작고 말랐지만 다부지고 악에 바친, 나름 전형적인 저의 상상 속 북한군의 모습으로 출연하곤 해요. 포격도 아니고, 총알 빵야빵야도 아니고, 총검을 맞대는 상황까지 왔으니, 둘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겠습니다. 제 눈 앞에 있는 북한군은 저의 FM 총검술에 심장을 꿰뚫립니다. 찔러총 마지막의 비틀어 빼는 동작은 상처를 보다 크게 하여, “적”을 보다 확실히 죽이기 위한 것이겠죠. 그렇게 제 총검에 심장이 쥐어뜯긴 북한군 꼬꼬마는 죽어갑니다. 무더운 여름 날, 나무에 묶인 수 많은 타이어들 중 몇몇 타이어는 그렇게 피를 왈칵왈칵 쏟으면서 고꾸라집니다.

2. 총도 사실 신나게 쏩니다.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빵야빵야를 드디어 직접 해볼 수 있다니, 소년의 가슴은 설레입니다. 허구헌날 닦아댄 덕분에 총기 분해조립 정도야 포레스트 검프처럼 잘할 수 있습니다. PPT로 조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호흡을 언제 멈춰야 하는지, 방아쇠를 어떻게 반쯤 당겼다가 마저 당겨야 하는지 이론부터 배웁니다. (카메라 반셔터랑 비슷해요!) 처음 실제 총알을 쏘러 간 날, 귀가 멍멍했습니다. 총소리가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산이 쩌렁쩌렁 울립니다. 뭐 잘못하면 눈탱이가 밤탱이 될 거라고들 겁 줬던 반동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영점을 맞추느라 종이에다 대고 세 방을 빵야빵야 쏘는데, 이게 처음엔 무지 신기합니다. 멀리서 육안으로는 이게 제대로 쐈는지 아예 보이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가서 보면? 콩알만한 구멍 세 개가 뽁뽁뽁 뚫려 있어요. 하하하. 그리하여 저는 expert shooter가 되었습니다. 군복 입혀놓은 꼬꼬마가 한 대의 어엿한 킬링머신으로 거듭나는 자랑스러운 순간입니다. 레인보우 식스보다 훨씬 재밌어요!

종이 과녁에 있는 검은색 표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근데 저처럼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꼬꼬마의 눈에는 이게 언뜻언뜻 진짜 사람처럼 보여요. 아 250m밖의 사람은 저렇게 작아 보이겠구나. 아 50m안의 사람은 저렇게 커 보이겠구나. 마찬가지로, 50m밖의 적에게 나는 헤드샷감이겠구나. 이제 사격장은 다시 초저녁, 혹은 새벽녘의 전장이 됩니다. 또 다시 아까 죽었던 북한군들이 출연합니다. 빠꼼 머리를 내민 50m 앞의 적의 머리에 두 방을 쏩니다. 빵야빵야. 100m 앞의 적은 좀 작네요. 머리를 노리느니 배때지를 노립니다. 빵빵. 250m나 멀리 떨어진 적은 사실 맞출 자신이 별로 없습니다만, 근처에라도 쏴야 쫄기라도 하겠죠. 또 빵빵. 다 쐈으면 다시 50m부터 빵빵.

그렇게 종이 타겟에 빼곡한 시꺼먼 형체들에 뚫린 구멍들에서 새빨간 피가 스며 나옵니다

3.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군대란, 추상적인 차원에서 보자면야 조국을 지키는 곳이겠지만-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동원되는 개개인에게는, 효과적으로 체계적으로 사람 죽이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에요.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을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요.. 개개인을 소총 조작 에이전트로 만들 뿐만 아니라, 분대, 소대, 중대, 대대라는 이름의 킬링 머신 속에서 기능하는 교체 가능한 부속으로 제조하는 곳입니다. 다른 킬링 머신과 맞붙어 싸우게 하기 위해서죠. 그런 곳에 갔다 와야만 하는-즉, 그런 것이 되었다가 아닌 것이 되어야 하는 한국 남자들 생각을 하면 눈물이 다 나려고 그래요. 그 소속감, 아니 그 부속감을 떨쳐내고 다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초질하고 다니는 대한민국 꼬꼬마 예비역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4. 여러분, 군대 안 갈 수 있으면 제발 가지 마세요.
가야만 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는 게 최고에요. 머리를 비워요. 휴가 나가서 만날 친구들만, 함께 먹을 맛있는 음식들만 생각하세요. 저처럼 잡생각이 들기 시작하거든- 빵야빵야 방아쇠를 신나게 당겨요. 귀가 멍멍해지고 화약 냄새가 코에 익숙해질 때 쯤이면- 그 눈물도 그칠 겁니다. 죽는 건 사람이 아니라 킬링 머신의 부속일 뿐이니까요.

님들아 군대 가지 마오”에 대한 6개의 생각

  1. 1. 말로라도 살인이라고 하면 그 무게감이 다른데, 죽이는 방법을 합법적으로 배운다는 사실은, 웃기면서도 씁쓸하죠. 그것도 조국이니 나리니 하는 “만들어진 것”을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리라고 강요받으면서 말입니다. 말도 안되는 생각인데, 차라리 인간이 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좀 해요. 그럼 국가니 군대니 하는 허상도 없었겠죠. 어차피 머리를 깨끗하게 비우지 못할거라면, 골이 부서지도록 그 안에서 끊임없이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두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 없다는 건 큰 문제.

    2. 저는 특등사수는 커녕 영점도 제대로 못잡고 이틀연속 입에서 댄내나도록 PRI 뛴 인간이라서, 250m 앞에있는 시커먼 형체에서 피가나는 환상은 꿈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인가요. o<-< (육군 안 간게 천만다행이지요)

    3. 저는 군대를 “강제로 제가 지지도 않은 채무를 지불하라고 쫓아다니는 스토커”에게, 채무인지 뭔지 일단 줄테니까 대신 지금 이후로 나에에 최소한의 보호를 베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지불하는 비용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꽤나 리즈너블하다고 생각해요.

    4. 뜬금없지만, 저는 참 군대 잘 골라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CPR하다가 갈비뼈 부러뜨려먹은 할아버지 할머니만 족히 세 분은 될겁니다. 나중에 죽어서 지옥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2. 1. 그래도 방어전을 위해서라도 전사 양성은 불가피하니까- 문명화될수록 그들을 소중히 하고 또 미안해 하는 방향, 즉 돈과 명예로 대접해 주는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로 중요한 건 역시 신중한 참전 여부 결정이겠죠.. 양병거 등 징병에 파생되는 문제에 신중하는 것도 중요하겠고요. 한국은 돈을 제대로 못 주니까 꼴랑 명예만 가지고들 왜 제대로 대접 안 해주냐고 치고받고 싸우기 십상인 것처럼 보여요..

    2. 저도 처음에는 20발 중 절반 좀 넘게 맞혔습니다. 나중에 M16으로나 38/40.. 저는 생생한 악몽을 꾸다 깼었어요.

    3. 저는 병역이 현재까지도 공동체에 대한 채무는 채무라고 생각해요.. 병사가 그리 많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세금으로만 떼울 수도 있겠고, 한국에서는 몸으로도 떼우는 거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지가 안 맞긴 하지만, 알몸으로 들어가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음, 이건 아닌데..

    4. 저도 카투사로, “자기만의 방”이 있는 곳에서 2년간 지낼 수 있었던 게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냥 친구들이 너도나도 지원하길래 뭔지도 모르고 따라갔던 거였는데…

  3. 1. 실제전투에서 킬링머신이 되는걸 강요하는게 군대라는 조직이 맞지만 오로지 그 것뿐이라면 대학살을 피할 수가 없죠.. 제네바 협정이라든가 군인윤리라는게 허울좋은 것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기가 죽이는게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으면 막장일 겁니다.. 침략군이든 방어군이든 말이죠.

    2. 징병제라는게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안녕을 위해 싸운다는 면이 있거든요. 과거 혁명가들은 용병제나 모병제보다 징병제를 좋아한 걸로 압니다. 돈으로 직접 고용대상이 되는 병사들이 민중을 탄압하는 걸 우라지게 봐왔던 사람들이니 그렇겠습니다.

  4. 지/ 목록에서 이름만 보고 드디어 악플인가! 싶어서 살짝 긴장했어요. 재미있는 이름을 쓰고 계시네요. ^^;

    1. 맞는 말씀이십니다. 마지막 문장에는- 전투란 집단 착란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전쟁시의 윤리란 승자의 폭주 제어용일 뿐이라는 제 개인적 편견이 작용했습니다.

    2. 저도 이를 테면, 사회의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돈으로 사다 쓰는 모병제보다는, 대체복무제도가 잘 갖추어진 징병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군대의 선진화는 모병제 전환이 아니라 여성까지 입대시킴으로써 극적으로 빨리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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