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살립시다

이명박 “노동자, 태안 자원봉사자처럼 자세 바꿔야”

오늘도 싱싱한 떡밥이 왔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저 같은 물고기들이 떡밥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 헤드라인만 보면, 저처럼 이명박 당선자를 싫어하는 사람 귀에는 “쥐뿔도 없는 노동자들은 월급 같은 거 받을 생각 말고 대통령께서 CEO들이랑 전화 통화 하는 동안 알아서 차비 들이고 식비 들여가며 남이 싼 똥 치우는 성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자발적으로 열심히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미리 화내면서 퍼덕퍼덕 한번 클릭만 해보면 뭐 그런 문맥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1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왔다 갔다고 한다”면서 “그 모습을 보면서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 저렇게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그 기업이 10% 성장하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고 말했다.

우선 노동자 일반을 두고 한 소리가 아니라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라고 분명히 수식어를 붙여놓았습니다. 언어의 마술사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말씀은 문장에 생략된 주어가 있나 없나, 있다면 무슨 주어가 생략되었나 하는 일상적인 문제들까지도 두번세번 곱씹으며 들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들어도 판검사 출신 대변인쯤 되지 않고서는 보통 일상적 언어 생활자들로서는 그 분 말씀의 오묘한 이치를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무려 수식어씩이나 되는 걸 빼버리고 헤드라인을 뽑으면 곤란하죠. 안 그렇습니까? 프레시안도 좀 평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만을 두고 한 말이라면 분규의 주체인 노와 사에 적어도 공평하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맞겠습니다만, “나는 친기업적이다. 아니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분께 공평한 책임 전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죠. CEO는 언제든지 콜미콜미 수다 떠는 우리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관대하십 친기업적이십니다. 당선자께서 애초에 생략하신 건지 기사 작성자가 편집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은,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에서 사측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아마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사법고시 출신 대변인들께서 지적하시면 언제든지 삭제/수정하겠습니다.) CEO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그 기업이 10% 더 성장하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이제 분규의 책임 소재 부분을 대충 공평하게 짚고 넘어갔으니, 다시 한번 저 말을 되새겨 봅시다.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 저렇게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정말로 그냥 저절로 그렇게 들리는 것처럼 ‘월급도 받지 말고 자비 들여서 출퇴근하고 쌔빠지게 일만 하면서도 뿌듯해하라’는 뜻일까요? 저 발언을 두고 욕해대는 분들께서 정말로 그렇게 이해하고 계신 건지, 알고도 그렇게 알아들은 척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매체에 미담으로 곧잘 소개되는 태안 자원봉사라는 시사 이슈를 끌어들여 그저 비유적으로 말한 것 뿐입니다. 굳이 따져들자면, 자발적인 개개인이 따로따로 모였는데 그게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이를 테면 잠시 자신에게 손해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개개인에게도 보탬이 되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자는, 뭐 그런 선의의 해석이 가능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렌단의 카미나라도 했을 법한 덕담입니다. (카미나가 생또라이 파쇼의 화신이라는 것은 여기서 잠시 잊도록 합시다.)

기사 밑에 나오는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는 공무원은 안 되겠죠” 같은 발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지 안 없어지는지 그런 게 중요합니까? 그런 자리가 하나 없어지는 것은 그저 개인과 그 가족의 불행일 뿐이지만, 그런 자리가 수만개 수십만개 없어지면 그것은 곧 효율적인 정부 경영이고, 이는 곧 국세 낭비의 절감이며, 그것은 곧 우리 국민 공동의 이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세금으로 이익을 보는데, 그 이득보는 국민 중에는 물론 아까 잘린 공무원과 그 가족도 있는 겁니다. 이래도 오로지 그것만 생각할 거냐구요.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도 이걸 알아야 해요.

태안의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태안에 갔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한번 헤아려 봅시다. 그 사람들이 뭐 사람이 일으킨 사고로 인해 파괴된 자연을 조금이라도 덜 파괴되게 하겠답시고 갔겠습니까. 아니죠. 서해안은 소중한 자원입니다. 서해안 갯벌은 땅으로 덮어서 분수대도 만들고 멋진 해변가 산책로를 만들 수도 있는 곳입니다. 서해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이룬 생태계 역시 소중한 자원입니다. 서해안에서 채집한 수산물들도 시장에 내다팔면 그게 다 돈입니다. 외국에 팔면 외화도 벌 수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자원봉사 하러 가시는 분들이 그 동네에서 짜장면도 사먹고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고 하면, 침체된 지역경제 부양효과도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볼 때, 서해안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신 분들은 결국 국가 경제를 살리러 간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대통령 당선자의 말씀을 멋대로 곡해하니까 욕이 나오는 겁니다.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 기업을 10% 더 살리기 위해 분규 같은 거 안 하고 열심히 묵묵히 일만 한다면 이 기업이 더 벌어들인 10%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사업에 재투자하고 그 다음 해엔 또 10%를 아니 그 이상을 더 성장시키기 위한 원동력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이래도 분규하실래요? 이명박 당선자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비정규직 문제가 참 많지만, 법을 어떻게 만들더라도 기업에 수지가 안 맞으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쓰는 것”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분규 같은 거 계속하면 기업이 어디 수지가 맞겠습니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수지를 맞추는 것입니다. 수지를 맞추려면 분규 같은 거 안 할 비정규직으로 전환해버리지 않겠습니까? 당선자께서는 “경제가 좋아지면 정규직을 뽑아 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방심하고 착각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기업이 10%씩 성장을 한다고 해서 딱히 경제가 좋아졌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가 좋아지는 것과 10% 성장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60, 7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보세요. 10% 성장이 아니라 수백수천배는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경제가 좋아졌습니까? 그토록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죽어있으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대한민국 CEO로 국민들이 선택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10% 성장했으니까 이제 정규직으로 뽑아달라 뭐 이딴 소리 하시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경제가 좋아지면 정규직을 뽑아 쓴다”고 하셨지, ‘10% 성장하면 정규직을 뽑아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선자께서 최신 맞춤법은 좀 모르실지 몰라도, 무슨 소리를 해도 결국엔 뒤탈 없는 언어의 마술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 여러분, 월급 10% 인상이 아닌 기업 10% 성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십시오.
공무원 여러분, 자기 자리 따위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비정규직 여러분, 기대하세요. 경제가 좋아지면 정규직도 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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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살립시다”에 대한 19개의 생각

  1. 핑백: 모기불통신

  2. 핑백: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대운하로 문화관광스럽게 돈벌자

  3.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덧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그냥 가신 모든 분들께도 뭐 감사드리는 편입니다.

    그나저나 여기 필터가 이글루스로부터 오는 트랙백을 스팸으로 처리해버리는군요. 되살려 놓긴 했습니다만 아쉽네요. :-(

  4. 저런식으로 해석이 가능하군요.
    새로운 해석방식을 보면서 이 당선자의 사고방식에 또다시 한발짝 다가선것 같아 새로운 느낌을 받습니다.

    다가서도 다가서도 그 크기와 질감이 상상되지 않는 이 당선자의 사고방식은 범인은 가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는것 같습니다.

  5.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카리스마가 바로 대통령 당선의 원천기술입니다. 이토록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는 그처럼 어디로 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정말로 정답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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