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어째서 중요한가

Why Darwin matters -Richard Dawkins

다윈이 어째서 중요한가

찰스 다윈에게는 큰 아이디어가 있었다. 분명 사상 최강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모든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그러하듯이, 그것 역시 매우 단순하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로 초보적이고, 눈부시도록 확실해서, 그 이전의 사람들도 그 근처까지 가보았으나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볼 생각조차 못했을 정도이다.

다윈에게는 다른 훌륭한 아이디어들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산호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그의 독창적이면서도 대체로 옳았던 이론이 그러했다. 하지만 생물학의 나머지 부분이 말이 되도록 해주는 지배 법칙이자 인도 원리를 제공한 것은, 『종의 기원』에 실린 자연선택이라는 그의 큰 아이디어였다. 그 차갑고 아름다운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자연선택의 설명력은 이 행성 위의 생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 중에, 원리상으로조차, 모든 행성 위의 생명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것이다. 우주 다른 곳에 생명이 존재한다면(나는 아마 그럴 거라고 보는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어떤 변형이 그 생명 존재의 기반으로 밝혀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윈의 이론은 외계 생명이 아무리 이상하고 낯설고 기묘할지라도 (그리고 나는 아마도 그것이 상상 이상으로 기묘할 것이라고 보는데) 똑같이 잘 적용된다.

설명 비율

헌데 무엇이 자연선택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가? 강력한 아이디어란 적게 추정하고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추정이나 가정 같은 것을 적게 소모하면서도 설명적인 “기중기” 역할을 한다. 그것은 설명의 본전을 뽑고도 남게 해준다. 그것의 설명 비율(설명할 수 있는 것을, 그 설명을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가정으로 나눈 값)은 크다.

독자 중에 다윈의 것보다 더 큰 설명 비율을 가진 아이디어를 알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시라. 다윈의 큰 아이디어는 생명의 모든 것과 그것의 귀결을 설명해주는데, 그것은 결국 최소한의 복잡성 이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 설명 비율의 분자이며, 어마어마하게 크다.

게다가 그 설명 방정식의 분모는 굉장히 작고도 단순하다. (다윈의 용어 대신 신 다윈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자연선택, 유전자 풀 속 유전자들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 바로 그것이다.

다윈의 큰 아이디어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즉,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윈식이 아니라 현대식인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때때로 잘못 복제하는) 유전적 실체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은 복잡성, 다양성, 아름다움, 그리고 의도적인 지적 설계로부터 구분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그럴 듯한 설계 착각을 낳을 것이다.” 나는 괄호 속에 “때때로 잘못 복제하는”이라는 말을 넣었는데, 실수는 어떠한 복제 과정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가정 속에 돌연변이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돌연변이라는 “bucks??”는 공짜로 제공된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역시 지질 시간의 끔찍스런 거대함을 헤아리기 힘들어 하는 인간의 정신만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정신

다윈의 큰 아이디어가 어떤 종류의 정신에게는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은 주로 설계의 착각을 일으키는 그것의 힘 때문이다. 바로 그 힘이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힘든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토록 단순한 것이 그토록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한다. 불가사의한 생명의 복잡성을 관찰하는 순진한 사람에게, 그것은 지적으로 설계되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ID)는 강력한 이론의 반대쪽 극단에 있으며, 그것의 설명 비율은 딱할 정도이다. 그 분자는 다윈의 것과 같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모든 것과 그 엄청난 복잡성이다. 그러나 그 분모는, 다윈의 깔끔한 최소한의 단순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최소한 그 분자만큼이나 크다. 우리가 애시당초 설명하고자 했던 복잡성을 설계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설명되지 않은 어떤 지성인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아이디어들의 역사에 있어서 한가지 성가신 수수께끼의 답이 있을 것이다. 뉴턴의 찬란한 물리학 종합 이후, 다윈이 거기 도달하는 데에는 왜 거의 200년이나 걸렸던 것일까? 뉴턴의 업적은 아주 어려워 보인다! 그 답은 아마도 다윈이 생명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내놓은 최종 해결책이 너무도 명백히 쉽기 때문일 것이다.

패트릭 매튜Patrick Matthew는 그의 저작 On Naval Timber의 부록에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우선권 주장을 제기했다. 이는 다윈에 의해 『종의 기원』 나중 판본에 주의깊게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매튜가 자연선택의 원리를 이해했음에도, 그가 그것의 힘까지 이해했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을 떠올려서 다윈으로 하여금 그의 이론 출판을 서두르게 했던, 다윈이나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Alfred Russel Wallace와는 달리, 매튜는 선택을 생명의 추동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부정적인, 솎아내는 힘으로 본 듯하다. 사실, 그는 자연선택이 너무 명백해서 따로 발견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왜곡 버전들

다윈의 이론이 유기 생명의 진화 너머 멀리까지 적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편 다윈주의의 또 다른 면을 권장하고 싶지 않다. 즉 자연선택의 왜곡된 버전을, 적절하든 적절하지 않든, 인간 담론의 모든 가능한 영역까지 무비판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그것이다.

아마도 상업 시장에서는 “적자” 기업이 생존하고, 과학 시장에서는 적자 이론이 살아남을 테지만, 우리는 흥분에 앞서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히틀러주의의 상소리로 치달았던 사회 다윈주의도 있었다.

덜 불쾌하지만 여전히 지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는, 아마추어 생물학자들이 생명의 위계 상 부적절한 수준에 선택을 느슨하고 무비판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이다. “적자 종의 생존, 잘 적응하지 못한 종의 멸종”은 표면적으로는 자연선택처럼 들리지만, 그 뻔한 유사성이 절대적으로 오도하게 된다. 다윈이 애써 지적했듯이, 자연선택은 종내의 차별적 생존에 대한 것일 뿐, 종간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윈의 큰 아이디어가 남긴 보다 미묘한 유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다윈은 우리의 의식 수준을 과학의 굳센 능력까지 끌어올려서,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용어들로 설명해준다. 생물학에서, 우리는 멍청하게도 수 세기 동안 자연 속의 어마어마한 복잡성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여겨왔다. 다윈은 위풍당당하게 그 망상을 깨버렸다.
물리학과 우주론에는 아직도 깊은 의문이 남아 각자의 다윈을 기다리고 있다. 어째서 물리법칙은 그러한 것일까? 애초에 법칙들은 왜 있을까? 애초에 우주는 왜 있을까? 다시 한번, “설계”라는 미끼가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다윈의 교훈이 있다. 우리는 이미 그 모든 걸 거쳤다. 다윈은 우리에게, 어려울지언정, (그 설명이 가정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진짜 설명을 찾아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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