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쾅쾅

0. 그리 많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약한 지진도 아니었지만. 일본의 어떤 지방 노인들이라면 평생 살아가면서 몇 번이라도 겪었을만한, 그저그런 중간짜리 지진이었다고 한다.

1. 처음엔 피로가 쌓여서 잠깐 어찔한 건 줄 알았고, 그 다음엔 윗집에서 공사라도 하는 줄 알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지진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 후에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잠시 후 바깥에서 우르릉쾅쾅!하고 생전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폭격인가 싶었다. 좀 전의 지진은 혹시 땅굴 때문이었나 싶기도 했다. 베란다의 깨진 유리창 너머로 찻길 건너 아파트가 없어진 것이 보였다. 현금과 카드, 통장을 챙겨 바깥으로 뛰쳐나오니 우리집이 부러졌다. 우리집 위로 똑같이 생긴 집이 56채 더 있는 우리 아파트 건물이 뒤로 넘어갔다. 우르릉쾅쾅! 아하.

2. 다큐멘터리에서 건물 폭파 해체 작업을 보면서 와우 멋지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뉴스에서 백화점 건물이 무너진 모습을 본 적도 있었고, 다리가 끊긴 모습을 본 적도 있었고, 마천루에 비행기가 꽂히는 장면을 본 적도 있었지만, 아파트가 넘어지는 장면 같은 것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지진은 거의 멎은 것 같았는데 멀리서 가까이에서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 지진이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우르릉쾅쾅. 쾅쾅.

3. 평소 연습했던대로 용산으로 향했다. 조용히 죽어있는 자들과 울부짖는 산 자들을 애써 무시하고 무너지지 않은 고층건물과 전기줄, 가스관을 최대한 피해가며 걷고 또 걸어서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에도 거의 다 튀긴 팝콘마냥 소리는 가끔씩 들려왔다. 우르릉… 쾅… 쾅…

4. 거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듯한 갈색 지붕의 낮은 건물들을 보니 마치 천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의 별관은 고층건물들의 폐허로 갓 만들어진 지옥의 한가운데에 지어져 있었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탕탕. 탕탕탕.

5. 언젠가 터질 줄만 알았던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배식을 먹으며 뉴스를 보니 서울은 아마도 통일 한국, 아니 통일 조선의 할렘이 될 것 같다. 대단지가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지는 장면은 지금도 유튜브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wow. lol. cooooooooooool. 이제 그 지긋지긋한 소리는 전세계의 컴퓨터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우르릉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배경에 깔린 락음악이 썩 잘 어울린다.

6. 내일은 아이팟이라도 하나 사러 나가봐야겠다.

우르릉쾅쾅”에 대한 1개의 생각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