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인간이 아니에요!

검사는 피고의 인간성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저것으로 인해 이백칠십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당했으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지금 피고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당장 해체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신체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고를 인간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체 보조기구 사용자 차별방지법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게다가 피고는 지금 군복무 시절 장착했던 군사용 부품들은 물론이고 탈영 후 불법으로 개조했던 부품들도 전부 의료용 표준 부품들로 교체하여, 더 이상은 보통 사람 평균 정도의 힘밖에는 쓰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날 수도 없고, 실탄을 발사할 수도 없으며, 방사능을 뿜어낼 수도 없는,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금속성이 번쩍거리는 두개골의 네 방향에 달린 눈-조리개를 보며 배심원들은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입 대신 스피커가 달려 있는 데다가 표정근은 물론 피부 조차 없는 얼굴인지라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저 금속 해골이 왠지 웃고 있는 것만 같아 꺼림칙해졌다. 도색조차 싸구려인 실리콘 재질의 전신 보조기구 위에 덩그라니 얹혀있는 이 금속성 머리통을 아무 것도 모른 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왠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의 범행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 기묘한 모습이 어째서인지 더욱 큰 공포심을 자아낼 뿐이었다.

“피고에게 달려있던 살상 무기들은 국가가 필요에 의해 달아줬던 것입니다. 이제 와서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같은 장비를 달고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현직 군인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변호인은 흥분하여 외쳤다. 그러나 검사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저것은 탈영 후 불법으로 장착한 방사능 무기 사용을 위해 자신의 두뇌까지도 컴퓨터 칩으로 교체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검사는 피고로 앉아있는 전직 군인-살인마-피고의 두뇌 회로 사진을 펼쳐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새로운 몸을 달기 직전 작동을 정지한 상태에서 금속 두개골을 열고 찍은 증거사진이었다.

“자신의 기억과 성격을 칩에 이식했을 때,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법원이 내릴 판결은 걸어다니는 살상 무기의 분해이지 인간의 사형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공방 끝에 판결문이 나왔다.

“… 이상 두뇌까지 무기물로 교체한 피고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바, 피고는 더 이상 피고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저 물건에 대하여 재조립이 불가능한 분해를 명하는 바입니다. 특히 두뇌 칩은 따로 꺼내어 물리적인 방법으로 파기할 것을 명령합니다.”

“판결에 이의 있습니다! 무기물 두뇌는 아직 논란 중에 있습니다! 사형은 이미 전세계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UN이 정한 세계 헌법에 위배됩니다!”
변호인이 극도로 흥분하여 쇳소리를 내며 외쳐댔다. 판결문이 나온 지금에 와서 이의 제기는 소용이 없다는 걸 머리 속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매달릴 것은 이제 이것-법원 속기 기록-밖에 남지 않았다. 판사는 엄중한 태도로 판결문의 요지를 반복하여 말했다.

“최초에 피고였던 저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바, 이것은 UN이 금한 사형이 아니라 분해일 뿐입니다. 이의는 기각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자동 폭파 장치 가동. 남은 시간 120초. 119초. 118초. 117초. 116초. 115초…”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달린 스피커로부터 기계음이 들려왔다. 뉴스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방청객들과 배심원들이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면서 출구 쪽으로 달려나갔다. 이 사상 최악의 흉악범, 아니 이 사상 최악의 흉물이 검사과정에서도 탐지되지 않는 자폭 장치를 머리 어딘가에 숨겨둔 모양이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니 개뿔 같은 소리!

“100초. 99초. 98초. 97초. 96초.”

기계음과 함께 네 개의 조리개가 1초에 한번씩 깜빡였다. 법정 건물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42초. 41초. 40초…”

이제 건물 전체가 비었다. 영문 모를 혼란을 틈타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불을 붙이고 있던 사기 용의자 한 명과, 막 뛰쳐나가고 있는 두 명의 경비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대피했다.

3분, 5분, 10분이 흘렀다. 기계음이 말했던 시간이 훨씬 지났다. 아무런 폭발음도 들리지 않았다. 자폭 카운트다운은 탈옥을 위한 흉물의 속임수였을까? 하지만 그가 새로 장착한 실리콘 몸으로 볼썽 사납게 뛰어나오는 장면은 목격되지 않았다. 불발된 것일까? 폭발의 규모가 작았던 걸까? 대피한 사람들은 저마다 온갖 가설들을 내세우며 웅성거렸다.

그리고, 30분 후 마침내 폭발물 제거반이 들어갔을 때, 그 흉물의 머리 뚜껑은 열려 있었고, 두뇌칩은 싸구려 실리콘 주먹 아래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에요!”에 대한 6개의 생각

  1. 변호사의 넋두리로,
    ‘칩을 꺼낸 후 내려치기까지, 무엇이 그것을 동작시켰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직 없다. 의지나 신념 따위, 기계의 것일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도로 끝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intherye님 성향(?)으로 봐서 ‘후집니다’ 이러실 것 같지만, 속으로만 그러세요 ㄷㄷㄷ.

  2. 네, 뭐;; 일가견 같은 건 아니고;;;

    ‘얘들아, “사람이 아니니까” 논증이 씨알이라도 먹히려면, 최소한 이 정도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니?’ 하는 심정으로 휘갈겼습니다;;;

    재미있어 해주시니 감사감사.
    모든 농담은 웃음을 먹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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