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분 축하해

오늘 아침 등교길에는 내 친구 민정이가 죽었다. 계단을 한 칸씩 조심조심 내려오지 않고 두 칸씩 성큼성큼 뛰어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그렇게 되었다. 그러게 내가 뛰어다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내일부터는 또 혼자 학교에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속상하다. 좀 전에는 금식이가 죽었다. 생물 선생님께 따귀 두 방을 맞고는 그만 픽 죽어버렸다. 그저께 죽은 갸날픈 영아도 세 대는 맞고 나서 죽었는데, 금식이 녀석 허우대는 멀쩡하더니 보기보다 약골이었나 보다. 선생님께서는 시체를 대충 한켠에 수습해두고 수업을 계속하셨다. 입이 없는 선생은 조용히 기다란 산란관을 좌우로 열심히 흔들어대며 판서를 했다.

“니들은 아직 입이 달렸지? 좋을 때다. 어릴 때 먹어둔 밥심으로 죽을 때까지 사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민정이나 금식이 몫까지 미리 많이많이 먹어두렴.”

필기할 필요도 없는 뻔한 사설이다. 어른들은 우리 친구들이 죽을 때마다 뭐가 찔리기라도 하는지 저런 소리를 해댄다. 다 그렇게 크는거란다. 우리 어릴 때는 더 심했단다. 미리 많이 먹어 두렴. 미리 많이 먹어 두렴… 나도 커서 입이 없어지면 저런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들은 우리처럼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죽어 없어질 어른 주제에 진도나 나갈 것이지 한심하게 쓸데없는 말들이 많다. 이어지는 판서를 보는둥 마는둥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녀석이 나에게 조용히 쪽지를 전해준다.

“생분 축하해.”

그러고 보니 오늘도 벌써 내 생분이 돌아왔다. 그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이 돌아가는 주기에 끼워맞춘 임의적인 시간일 뿐인데, 무슨 큰 의미가 있다고 축하씩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표면이 태양과 이루는 각도가 비슷해지는 시간일 뿐인데… 어제 그 자리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어제 그 시간이 돌아온 것도 아닌데…

문득 민정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를 못 살게 굴던 금식이도 보고 싶다. 영아도 보고 싶고, 먼저 죽은 모든 친구들이 다 보고 싶다. 그 친구들 하나하나에게 온종일 생분을 축하한다고, 니 생분도 축하하고, 니 생분도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내일부터는 나도 계단을 두 개씩 뛰어넘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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