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 골드버그 기요틴 -1-

오늘 그렇게 또 한 명의 사형수가 죽었다.

오늘 죽은 사형수가 먹고 죽은 음식은 그가 지난 삼 년 동안 먹은 음식과 똑같았다. 여기서 똑같다는 것은 음식의 종류나 질, 양만 같은 것이 아니라, 아예 같은 원자라는 뜻이다. 달 형무소의 고효율 재활용 시설 덕분에 모든 하수도가 곧 상수도이고, 배설물은 다시 음식이 된다. 지상에서 이 정도의 고효율을 추구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달 왕복선보다 트럭이나 배가 싸게 먹히기 때문.

사형수가 지난 삼 년 동안 먹은 음식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도 오늘에야 죽은 것은, 그저 그가 그 음식을 먹고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을 법학자들은 통계적 사형이라고 부른다. 일정량 섭취시 죽을 가능성이 일정 수치 이상인 음식만을 제공하다 보면, 언젠가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는데, 하여튼 그렇게 죽을 확률을 약간-약간이라고는 해도 비율로 따지면 정상 수치의 수백에서 수십만 배에 이른다- 높이는 것을 일종의 사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실제로 음식을 통한 통계적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들 중에는 비교적 높은 사망률의 음식만을 배식 받도록 선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꽤 장수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이를 통계적 사형의 약점으로 지목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통계형을 현대의 법제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이유이다. 구시대의 법은 구체적이고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일상의 삶과 확연한 단절을 일으켰으나, 통계형은 법적 개입을 일상적 인과의 연속체 안으로 완전히 편입시켜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덕분에 이 곳 수감자들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과 거의 같으나, 달이라는 지리적 위치만이 확실하게 다를 뿐이다.

세상에는 자신과 별 상관도 없으면서 극악무도한 사형수들조차 통계형으로도 죽이지 말자고 외쳐대는 한 줌도 안 되는 멍청이들이 있고, 두어 줄 짜리 범죄 가십 뉴스를 읽고 발끈했을 뿐 역시 자신과 별 상관도 없는 사형수가 당장의 구시대적 개입을 통해서라도 죽어버리기를 원하는 상당수의 미치광이들이 있으며, 역시 자신과 별 상관이 없기에 사형수 따위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관심조차 없는 압도적 다수의 현명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사형수들의 생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비슷한 상태의 식육용 가축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룬다.

사실, 형무소의 수감자가 줄어들 때면 사형수의 시체는 신선한 냉장육의 형태로 가공되어 지상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재활용 촉진법에 따라 결과물에 차이가 없다면, 원료와는 상관없이 표기되는 제품명은 그저 “동물성 단백질 및 지방 혼합물”일 뿐이다. 하기야 이 고기의 원료를 사형수라고 적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 사형수의 원료는 그냥 평범한 음식물이었고, 그 음식물의 원료는 또 사실 배설물이었으니까. 유물론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루브 골드버그 기요틴 -1-”에 대한 4개의 생각

  1. 갑작스럽지만, 혹시 H.H Munro라는 작가 아셈? 필명은 Saki라고 하는데 풍자라는 기술을 9성까지 익힌 1900년대의 고수 였다고 하더군요. 최근 기회가 닿아서 몇 편 읽어봤더니 과연 명불허전. 아니 사실은 인더라이님이 발전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들어서 이야기 꺼내봅니다. 안 읽어보셨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http://haytom.us/showarticle.php?id=57 에 소설들이 다 있긴 한데…-_-;

  2. c/ Saki란 이름은 quotes of the day에서 본 적 있는 듯한데, 작가인 줄은 몰랐어용. 제가 워낙 견문이 짧아서;

    링크해주신 걸로 처음 읽어봤는데 재밌네요. @_@ 감사감사. 아마 오래돼서 저작권이 풀린 건지도 모르겠네용.

  3. 핑백: 서핑 블로고스피어 | su’s blog: hello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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