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 골드버그 기요틴 -2-

그렇게 음식이 다 만들어졌다.

음식 관련 설비 중 가장 나중에 도입된 자동 배식 장치가 규격화된 식판을 날라왔다. 예전에는 일일이 간수가 손수레를 밀고 다니면서 나눠주곤 했다. 당시엔 통계적 사형을 위해 치사율이 사전 조정된 음식과, 딱 정상수준으로만 위험한 일반 음식이 끼니마다 일정 비율에 따라 임의적으로 번갈아 나왔었다. 이는 과거 총살형을 할 때 사형수를 향해 총을 들고 사열한 병사들에게 일정 비율로 공포탄이 든 총을 지급하던 것과 비슷한 취지의 실무자 인권 보호 수단이었는데, 아무래도 밥은 총알과는 달리 한 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하루 세 끼씩 꼬박꼬박 먹는 것이다 보니, 간수가 자신에게는 멀쩡한 음식(총살이라면 공포탄에 해당하는)이 할당되었으리라고 아무런 근거없이 믿으며 위안을 얻고 편안한 밤잠을 이룰 가능성이 며칠만 지나도 급격하게 떨어져버렸기에, 곧 배식도 기계 장치가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사형수들을 제외한 달의 무인화, 완전 자동화라는 보다 큰 목표도 배식 장치 도입에 한 몫을 했다. 오늘날 사형수가 아니면서도 달에 상주하는 사람은 소장 뿐이다.

오늘의 메뉴는 토요일 저녁의 특식이었다. 신선한 스테이크, 아직도 따끈따끈한 빵, 걸쭉한 조개 스프. 스테이크는 원재료야 무엇이었든, 송아지 안심맛이었는데, 한 입 물자 베어나오는 육즙이 아주 훌륭했다. 이처럼 맛은 훌륭했지만 사실 겉이 살짝 탄 스테이크에는 기준치 이상의 발암물질이 들어있었고, 마찬가지로 빵에는 농약이, 조개 스프에는 중금속이 들어있었다. 모든 것이 사형수의 사망 가능성을 판결문에 명시된 수치만큼 정확하게 높이도록 세밀하게 조제된 음식이었다.

전에 돈까스에 된장국이 나왔을 적에 무심코 된장국을 들이켰다가 된통 당했던 기억이 있는 이 사형수는 음식을 먹기 전에 한 입씩 시식을 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배설물-음식물 순환 설비에 사소한 고장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료에 처리가 덜 되어 말 그대로 똥국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하긴 공기 필터 예산도 빠듯한데, 겨우 배설물 필터가 제때 교체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상식을 깨고 요즘 들어 배설물 필터의 예산만큼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로 무심코 똥국을 들이켰던 소장의 열의 덕분이었다. 공기 필터는 개인용 산소마스크라는 저렴한 대안이 있었지만, 음식은 그런 대안도 딱히 없었다.

달 형무소가 지구상의 여느 시설과 다른 점은, 인간을 단지 살려만 두기 위해서도 온갖 보조 장치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공기 여과기의 필터 교체시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모든 수감자가 순식간에 몰살당할 수 있다. 사실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예산상의 문제 때문에 예비 여과 설비 확충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어차피 이제나 저제나 곧 죽을 사람들을 보다 확실하게 살려두기 위한 설비를 만들 돈을 내놓으라고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스테이크와 빵과 조개 스프의 미각과 생명 양쪽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협을 오늘도 무사히 넘긴 사형수는 디저트로 제공된 푸딩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건더기가 푸짐한 푸딩은 타르 함량이 높은 담배와 함께 형벌의 효과적인 보조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푸딩 속에 들어있는 건더기들은 매우 높은 치사율을 가지도록 세밀하게 조정된 크기와 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귤처럼 생긴 건더기가 가장 위험했다. 방심하고 후루룩후루룩 달콤한 푸딩을 마시다시피 하던 사형수는, 먹으면서 동시에 코로 숨을 쉬던 미묘한 리듬이 오늘따라 잠시 살짝 어긋나는 바람에, 귤처럼 생긴 건더기가 그만 기도를 꽉 틀어막아버렸는데, 콜록콜록 고통스러운 기침을 한참 동안 해대다가, 그만 영영 고꾸라지고 말았다.

오늘 그렇게 또 한 명의 사형수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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