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 골드버그 기요틴 -5-

모든 사형은 이렇게 시작된다.

초등학교 체육시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신성한 시민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평생 지속될 시민의식을 고취시켜주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교육 정책이다. 아직 투표권도 없는 이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것을 통해서 나름대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채 깨닫고 있지 못하다는 것 정도인데, 그 쯤이야 나중에 커서 알려주면 될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해본 일에는 쉽게 익숙해질 수 있으니까.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기 두 아이가 시소를 탄다. 쿵덕쿵. 쿵덕쿵. 시소에 내장된 정밀한 저울이 양쪽 아이 각각의 몸무게를 측정한다. 소수점 둘째자리부터 네째자리까지 숫자 세 개는 적절한 단위-아마도 ppm-가 붙어서 조개 수프에 들어갈 중금속 함량으로 사용될 것이다. 굳이 이렇게 의미없는 숫자를 쓰는 것은, 아이들의 몸무게라는 것이 대충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한 여자 아이는 혼자서 흔들흔들 그네를 탄다. 그네 줄 끝에서는 그네가 움직이는 속도를 계산한다. 의미없는 미세한 단위의 숫자는 적절하게 가공되어 빵 속에 농약 성분을 얼마나 집어넣을지 결정짓는 데 쓰인다.

다른 아이는 목이 마른지 수돗가에서 콸콸콸 쏟아져나오는 물을 마시고 있다. 수도 꼭지에 달린 계량기는 매초 쏟아져나오는 물의 부피를 잰다. 비슷하게 가공된 숫자는 고기의 초과 조리 시간을 결정한다.

이러한 정책이 알려지자 처음에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우선 아이들이 직접 사형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간접적으로 미미한 영향만 미칠 뿐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아이들의 몇 가지 행동만 그때그때 표본으로 이용될 뿐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센서들이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는 점 등등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법원을 설득시킬 수 있었고, 따라서 학부모들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어떤 학부모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테니 봉사활동 점수에 반영해달라며 조르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아이들을 이렇게 난수 발생 함수 대용품으로 이용해먹어도 되는가-하는 칸트스러운 난제만 남았다. 물론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는 논술 공부하는 입시생들 말고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한편 교실 구석에 홀로 남아 휴대용 게임기 조작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자기 자식을 사람 죽이는 과정에 참여시키고 싶지 않다는 사형 폐지론자들의 왕따 자식들을 위한 대체 수업의 일환으로 제공되는 단순한 게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죽어가는 사형수의 바이탈 사인은 추상화를 거쳐 달과 지구 사이를 너머 접시 돌리기 게임 온라인 서버로 전송되어 마침내 게임 화면의 흔들거리는 접시로 실시간 구현된다. 휘청거리던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면 점수를 잃는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떨어지기 직전의 접시들을 다시 빙글빙글 돌리는 것 뿐이다. 확실히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살려두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둘씩 떨어지는 접시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자식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어하는 학부모의 뜻을 받들어, 접시들은 의인화되어 눈코입이 달려 있다. 접시는 깨질 때 단말마의 비명을 꽥하고 지르고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게. X-b

그렇게 달 형무소 토요일 특식의 성분 배합 비율이 결정되었다.

루브 골드버그 기요틴 -5-”에 대한 4개의 생각

  1. 안녕하세요. 구경만 하다가 리플 남깁니다.
    마지막 부분 ‘살려두는 과정에 참여’ 이 부분이 엄청 인상깊네요.

  2. 핑백: 서핑 블로고스피어 | su’s blog: hello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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