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해방

(…)동물과 유사한 정신 수준에 놓여 있는 인간의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못지 않게 동물의 목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그렇게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이 책에서 옹호하는 결론들은 오직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리로부터 도출된다. 고통 없이 동물을 죽이는 것 또한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이 책의 일부 결론들의 정당성을 부가적으로 지지해 준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져 볼 때, 고통 없이 죽이는 것이 잘못이라는 논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논변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흔히 대중들은 어떤 죽임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 기초하여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을 도출하는 데에도 필수적이진 않다는 점이다.

이 장에서 내가 취한 입장에 대해서 독자들은 이미 약간의 반박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물들이 서로 죽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가?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만약 그들이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굶어야 하는가? 주요 논의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나는 이러한 질문들과 다른 반박을 검토하기 위한 별개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자신들의 반박에 대한 답변을 빨리 듣고자 하는 자들은 먼저 6장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피터 싱어. 『동물 해방』. 64-65쪽.

모기불 통신을 구독하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혼자 자습 중입니다. ㅋ

네, 그렇습니다. 인간 능력의 능선과, 장애의 골짜기, 나이의 등고선 등을 타고 오르내리다 보면, 비슷한 고도에 펼쳐져 있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마주하게 되죠. 정자 난자 레벨까지 내려간다면, 뭐 웬만한 생물은 다 아우른다고 봐야… 

속도와 정도의 문제일 뿐, 생물을 향한 윤리의 외연 확대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기도 하고.

저 같은 공상가는 이러한 인간-동물 비유 논리에 덧붙여서-

영영 못 볼 것도 같지만 당장 내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는 외계 생물과,

이미 조금씩 우리 주변에 생겨나고 있는 듯한 전자 생물, 기계 생물?

까지도 우리 윤리의 대상에 미리 포함시켜 두고 싶습니다.

그들보다 우리들과 훨씬 더 가까운 주변 친척 생물들을 외면하고서 어찌 ET나 월E와 친한 척을 할 수 있겠습니까? ^^;

동물 해방”에 대한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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