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신발 속 발가락 밑에서 뭔가 뾰족한 게 밟혔다. 떼어내기 귀찮아서 어찌어찌 요령껏 피해서 걸어보려고 했지만, 양말에 꼽혔는지 자꾸만 같은 발가락 밑에서 밟힌다. 신발을 신은 채로 흔들어도 보고 털어도 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기도 했지만 자꾸만 밟히는 바람에 짜증이 치솟았다.

나뭇가지 쪼가리 같은 것일까-싶은 생각이 들자 세상의 모든 식물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아니 뇌세포 하나 없는 미물들이 조용히 열매나 열리다 겨울되면 시들어 뒈질 것이지 꼴에 왜 딱딱하고 뾰족한 부분이 만들어져서 내 발가락을 찌르는 것이냐 말이야.

그러다 문득 어쩌면 금속성 쪼가리인가- 싶은 생각이 들자 철기 문명을 저주하게 되었다. 아니 수백만 년 동안 그래왔듯이 대충 돌도끼 들고 다니다가 맘에 안 드는 새끼 있으면 뒷다마나 찍고 다니면 되지, 갑자기 왜 금속 따위 제련해가지고 이것저것 자잘한 것까지 만들어서 내 발가락을 찌르는 것이냔 말이야.

어쩌면 이것이 플라스틱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현대 기술 문명을 저주하게 되었다. 고이 잠들어있는 양치식물 화석을 캐내어가지고 고분자화합물을 만들어낼 생각을 해내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지금 내 발가락을 찌르게 된 변태 따위 이 세상에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아드레날린 분비하며 신발을 벗어 들고 양말을 더듬었더니 손 끝에 뾰족한 것이 만져졌다.

옳다꾸나 식물이든 철기 문명이든 첨단 기술이든 걸리기만 해봐라 내 요절을 내야지 다짐하면서 그 뾰족한 것을 떼어내었다.

그런데 내가 어젯밤 대충 깎아제끼다가 튀었던 발톱 조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고, 뭐랄까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참 착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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