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골라스와 팅커벨의 차이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어디 판타지 문학이라는 것을 함 읽어보자- 마음을 먹고, 먹자골목에서 원조 식당 찾는 기분으로 ‘반지의 제왕’을 집어들었더랬다. 그때의 괴로웠던 독서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우선 삽화도 없고 해설도 제대로 없는 데다가, 저자가 명확하게 묘사해주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을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이를 테면, “메리아독”이라는 이름만 딸랑 가지고는 이게 도대체 여자 캐릭터인지 남자 캐릭터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중1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존과 메리의 대화에서 메리는 분명 여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메리아독은 메리랑 비슷한 건가? 하는 뻘추측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건 비단 반지의 제왕 뿐만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문화권의 이름들이 등장하는 소설 등을 읽을 때마다 다시 겪곤 하는 문제다. 성별을 암시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그, 그녀 같은 대명사가 나오기 전까지 그 등장인물은 머리 속에서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로 얼굴도 목소리 톤도 없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조연 호빗들의 경우 이런 간접적인 단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던 캐릭터였던 것 같다. 이래가지고서야 소설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될 리 없다.

거기다가 환타지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다 보니, 등장하는 종족들도 잘 와닿지가 않았다. “오크”는 워크래프트2를 통해 접해보았던 녹색 괴물을 떠올렸는데 대충 맞았던 것 같고, “난쟁이”는 처음에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 같은 걸 떠올렸는데, 작중에 나름 그들 종족에 대한 묘사를 슬쩍슬쩍 해줘서 조금씩 교정했던 것 같다.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요정”들이었는데, (지금이야 그게 아마 엘프와 님프의 차이라는 것인가 싶지만-) 그 때까지 내가 알던 요정이라고는 팅커벨 같은, 날아다니는 조그마한 요정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위풍당당한 숲속 마차 행진 같은 장면에서도 톨킨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의 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나중에 함께 전투를 치를 때에 이르러서야 아무래도 팅커벨이 쌈을 이렇게 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물리적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하면- 독자와 저자가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계층에 속할 경우 삽화나 해설이 꼭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헐리우드 만세.

레골라스와 팅커벨의 차이”에 대한 4개의 생각

  1. 크기에 대한 감이 없는 체로 본다면, 사실 레골라스와 팅커벨보다 아웬과 팅커벨이 더 당항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아라곤과 사귀는 팅커벨이라…

    헐리우드 만세, 리브 테일러 만세.

  2. b/ 그러고 보니 아라곤 먼 조상이던가 인간-요정 혼혈이던가요. 에- 그렇다면, 크기 차이에 대한 논의는 더더욱 19금의 영역으로…

    헐리우드는 헐리우드만 할 수 있는 일(=사상 최대의 돈지랄)을 나서서 해줄 때 가장 고마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3. 저도 고등학교때쯤 판타지의 시작이 되는 책이네 어쩌네 해서…
    두꺼운 책을 펼쳤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나 삽화도 없고… 지루하기만 했던 기억이 나네요~ ;;

    영화판 보고 그 지루한 책을 그정도로 만들 수 있다는 데에 깜짝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

  4. 미/ 전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고, 빌보의 모험을 다룬 “호빗”까지 찾아 읽게 되었답니다. 저는 좀 더 아동 눈높이에 맞춘 듯한, 전래동화를 연상케하던 “호빗”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더군요. “반지의 제왕”은 좀 무리해서 폼을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

    누가 제게 묻는다면, “반지의 제왕”은 이제 그냥 영화로나 보면 되지, 굳이 소설까지 애써 읽을 필요는 작품으로 추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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