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저들끼리 쑥덕거리더니 갑자기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면서 주위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쟤들이 왜 저런대요? 우리가 뭘 잘못했나? 음식이 입맛에 안 맞나? 초청 행사 중간에 갑자기 이게 웬 일이래요.”

통역이 우는 아이 중 한 명을 붙들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더니 점점 더 침울해지다 못해 자기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반대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좀 자세히 말해봐요.”

“이 아이들은 오히려 이 곳이 너무 좋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울고 있습니다.”

“그럼 왜 사람들을 물어 뜯는 건데요? 좋아서 우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자신을 물어뜯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내치고 걷어차며 물었다. 박박 씻겨는 놓았지만 왠지 손톱 밑의 때와 침 속에는 더러운 균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 저택이 너무 훌륭하고, 음식은 너무 맛있지만, 좋아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통역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마침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이 참.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봐요. 그럼 왜 우는 건데요.”

“이 아이들은 그 동안 마을 TV로 헐리웃 영화 같은 걸 보면서 이런 곳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게 다 세트장이나 놀이 공원 같은 곳인 줄 알았나 보더군요. 이 집에 와서 음식들을 맛보고 나서야 자기네들의 현실과 너무도 다른 이 곳이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통역도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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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존치/폐지의 논리와 감정들

0.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거의 전세계적으로- 식인풍습이 없어졌습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일 겁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신분 차별이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아동에게 노동을 착취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종교/사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시대에 뒤쳐진 바보 멍청이라고 욕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이제야 인정할까말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최고로 큰 기업에서 노조를 못 만들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사형을 거의 폐지하다시피 했으면서도 되살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보 멍청이입니다.

1. 사형 폐지의 논리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

제가 파악하는 바, 사형 폐지론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쥐고 있을 수 있는 진리는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까지입니다. 굳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수를 죽여버리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공동체가 이루고자 하는 바-즉, 위험인물 격리, 범죄 감소, 살기 좋은 세상-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것까지가 사형 폐지의 핵심 논리입니다. 여기에 ‘위험인물 척살’ 같은 것을 은근슬쩍 끼워넣는 미꾸라지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말살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상쇄됩니다.
제게 사형수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경우를 들라면, 사형수가 감방 안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교도소 바깥으로 뇌파를 삐리삐리 마구 쏴대서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거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2. 사형 존치의 논리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사형제도의 창시, 존속 또는 부활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밝혀야만 할 것은, 사형을 폐지할만한 전적으로 논리적인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사형을 국가의 제도로서 유지시켜야 할 논리까지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135개국과, 그 중에서 지난 10년간 한 건의 사형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았던 우리 대한민국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명백한 거짓으로 밝혀진 주장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형 존치론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대한 논리적인 주장은, 사형 폐지론자들과 비슷한 형태의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정도입니다.

3. 사형 폐지의 감정 -지식, 지성, 도덕, 공감능력

그리하야 사실 전적으로 논리만 가지고는 사형의 무조건적 폐지라는 일견 극단적인 결론까지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절대로 죽이지 말자”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현대 인류 문명의 쾌거인 인권의 개념을 온몸으로 촉촉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 이전에 각자의 심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1)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권 개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거나, 2) 들어봤지만 머리가 나빠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거나, 3) 그 따위꺼 흥하고 콧방귀를 뀔 정도로 심성이 고약한 사람이라거나, 4) 인권 따위 자기와 상관 없는 문제라고 치부하는 독불장군이라면 “꼭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죽여버렸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얼마든지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사형의 폐지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그러니까 막판에는 1) 지식과 2) 지성과 3) 도덕과 4)공감능력의 문제이지,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적 근거에 수긍하더라도. 막판에 인권지식과 이해능력과 도덕감정과 공감의 능력을 통해 폐지라는 결론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나름의 엉뚱한 결론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분들이 바로 ‘논리적인 사형 존치론자’들의 실체입니다. 하긴 네 가지 중에 적어도 한두 가지 이상은 갖춰야만 하는 문제인지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기가 좀 미안하기는 합니다. 아직도 여성 참정권을 인정 못하고, 흑인이 인간임을 인정 못하는 심성을 가진 분들이 있듯이, 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이죠.

4. 사형 존치의 감정 -보복 감정, 정의감, 핑계, 공포감 그리고 타성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면 그냥 죽여버리자”는 주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통 보복 감정이나 불타는 정의감, 나름의 논리, 공포감 같은 것이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것도 없이 완전히 논리적으로 막바로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을 요즘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우선 보복 감정. 나쁜놈을 찢어죽이고 쳐죽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폐지론자인 저도 이해하는 바입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우리 개개인이 자비와 용서의 감정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국가도 그 감정을 그대로 반영해야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분들은 정말로 능지처참해야 할 놈들까지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훌륭한 국가라면, 우리 중 다수의 마음보다는 우리 중 훌륭한 분의 마음을 반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제 마음이 훌륭하지는 못해도, 훌륭한 분들의 마음과 행동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며, 그 본받음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제도를 통해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메소포타미아인이 아니고, 우리의 법은 더 이상 비석에 새겨두는 열 줄 짜리 메모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서 그 년/놈을 용서해주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년/놈의 죄를 봐주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 그 년/놈의 죽음만큼은 면해줄 정도로 우리가 훌륭해지는 겁니다.

정의감은 폐지론자라고 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존치론자들만의 미덕이 아닙니다. 폐지론자들도 범죄자들을 잡아서 심판해야 한다는 정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치론자들 중에는 세상에 자기들만 정의로운 줄 알고 폐지론자들을 무슨 범죄 옹호론자쯤으로로 몰아세우는 분들도 계신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정의감은 양측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존치론이냐 폐지론이냐는 이러한 정의감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타는 정의감은 존치론의 이유가 못됩니다.

가끔씩 보복 감정과 불타는 정의감 외에, “밥값 아깝다”는 이유를 경제 논리랍시고 들고 나오는 분들이 계신데, 굳이 논리라고 부르자면 논리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을 밥값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처럼 개화한 문명사회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받은 현대인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그럴듯한 핑계를 원하는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비슷한 핑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엔 심지어 “그 놈들은 사람이 아니니까”처럼 막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걸 논리랍시고 대는 사람들은 논리가 아니라 놀리는 거라고 봅니다.

제가 뭐라고 타박하기 가장 찜찜한 것이 공포감입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발 뻗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막연한 감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입니다. 그 조건에, 어떤 사람의 생사여부가 들어가게 될 경우 이 근원적인 공포는 적극적인 사형존치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분들께는 사형제도 폐지하자고 말하기가 정말로 미안합니다. 거미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거미는 익충이에요 하는 기분이고,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관람차 재미있어요 하는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막연하고 불합리한 공포를 국가처럼 큰 사회의 제도에까지 반영시킬 필연성이 없으며, 어떤 경우엔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해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사형을 폐지한 나라들에서 이런 분들이 집단 공황증세라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구요.

그러나 제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타성입니다. 이건 뭐 논리도 아니여 핑계도 아니여 그렇다고 무슨 감정의 표현도 아니여. 그냥 “아 몰라 하던대로 하지 귀찮게 뭘 바꿔.”, “그냥 대충 놔둬. 죽든 말든 뭔 상관이야.”, “뭐 나쁜 놈이라고? 그럼 죽으라 그래.”, “인권? 그게 뭥미. 몰라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아 귀찮아. 꺼져.”, “아 법 있는데 왜 집행을 안한대, 그냥 해, 왜 안 해.”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용량이 부족한 건지, 속도가 딸리는 건지. 도통 답이 없어요.

5. 가야 할 길

우리 모두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연쇄살인마도 있지만, 우리 중에 예수와 부처도 있다면, 우리가 어느 쪽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들의 공동체를 이끄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보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답을 찾아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형폐지론은 무슨 시대를 앞서나가는 새로운 주장이라거나,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변적이고 이상적인 몽상 따위가 아닙니다. 이미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나라에서,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10년 동안 입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발자국을 찍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앞서 갔고, 우리 앞에는 꽤 훌륭한 길이 나 있습니다. 그냥 터벅터벅 따라가기만 해도 됩니다. 편하지 않습니까? 그런 길들 중에는, 아직 먼저 간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좀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직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 폐지라는 잘 닦인 길을 향해 우리는 이미 몇 걸음 뗐습니다. 거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