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 골드버그 기요틴 -7-

유물론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트에서 주부에게 팔려나가기 전에 제품의 제조 과정에서는 물론 표의 대량 도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형을 촉구하는 푸딩을 사든 사형에 반대하는 푸딩을 사든, 그 푸딩들이 담겨있는 플라스틱 용기는 똑같다. 푸딩 제조업자는 플라스틱 제조용기 업자에게 용기를 대량으로 구매하는데, 물론 이 때에도 푸딩 제조업자는 당당한 소비자로서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이 때 이를 테면 가장 싼 값에 푸딩 용기를 제공하는 제조업자가 우연히도 사형을 촉구하는 용기를 판매하고 있다면, 애석하게도 사형에 반대하는 푸딩을 구매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맹이는 반대하지만 껍데기는 촉구하는 우스운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 더욱 얄궂은 일은, 이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자 역시 소비자로서 석유에서 추출한 원재료를 구매해야 하는데, 이 때 사태는 또 한번 꼬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원자재 판매자는 석유를 사오는데……

 
상품의 종류에 따라 이러한 단계가 매우 여러 차례 겹치기도 하며, 이를 파생 투표라 부른다. 과거 이러한 파생투표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한 단계가 늘어날 때마다 실질적인 영향력은 지수적으로 감소하여 어쨌거나 최종 거래 가격 근처에서 수렴하는 결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생 투표에는 커다란 헛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간 제품 유통 시점과 최종 상품 구매 시점과의 시간차다. 간단하게 말해서- 푸딩은 금세 썩지만, 용기는 오래 동안 썩지 않는다. 푸딩을 담아 팔기 오래 전부터 플라스틱 용기를 대량으로 구매해서 쌓아둘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어떤 푸딩 제조회사는 실제로 약 150년치 플라스틱 용기를 지하 창고에 쌓아두고, 새 지하 창고를 파고 있다고 한다. 그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회사에 원재료 제공하는 어떤 큰 화학회사는 석유회사로부터 유전 수십 개 분량의 석유를 미리 사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석유 회사는 항성간 여행이 언젠가 발명될 것에 대비하여 가까운 항성계의 부동산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물은,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미리 예약 당선되어 있는 민주 정부다. 원래 민의란 이런 식으로 반영되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결제/투표 시스템에는 자동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는데, 이것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인 정치적 표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제품을 사는 경우, 그 사람이 그 동안 살아오면서 보여온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이번에 내는 돈은 과연 어느 쪽에 투표해야할 지 즉석에서 자동으로 대신 결정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사오는 제품을 대상으로 공항 검색대에서 실시되었던 제도인데, 그 정확한 예상 능력이 호평을 받고 현재 그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
 
현대 사회에 각각의 시민들이 마땅히 참여해야 하는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사항들은 셀 수 없이 많고 또 계속 많아지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모든 판단을 일일이 해가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음 주에 달에 사는 누군가를 죽일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사소한 문제들이 수천 수만 가지를 넘기 시작하면- 매번 책임감 있는 판단을 기대하기란 어려워진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동 프로그램에 의한 대리 투표다. 그래서 아무런 딱지도 붙어있지 않은 푸딩이 푸딩 중에 가장 많이 팔리고 있으며, 동네 소매점에서는 이런 푸딩만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푸딩을 사는 수 많은 사람들의 구매 패턴 분석 결과는 물론 대부분이 사형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 또는 소극적인 찬성쪽을 가리키고 있다. 이 편한 세상.
 
직접적인 구매 행위에만 표값이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각종 매체에 싣는 광고에도 당연히 가격이 매겨진다. 광고주가 지불하는 돈이 어느 쪽에 투표될 지에 대한 판단의 권리는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달렸다. 예를 들어 브라우저를 통해 어떤 사이트에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그리고 어떤 검색어를 입력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보는지- 이런 모든 자료는 중앙 서버로 전송되어 분석되고, 허용할 수 있는 오차 내에서 대리 판단하여 투표까지 대신해준다.
 
투표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는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를 얼마나 세세히 기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전부 다 기록한다.
 
얼마나 많이 기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데, 이것이 약간 복잡한 문제를 낳는다. 과거의 웹사이트 방문 내역 따위를 과연 어디까지 소급해서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록이 남아있는 데까지 모든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오래 전의 초기 기록까지 어디선가 튀어나오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들어지는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있으며, 친족이나 친구들의 기록까지 분석에 반영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에 비추어 볼 때, 당시의 기록도 반영해야만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지하 깊은 곳에서 발견된 자기 테이프에서는, 까마득히 먼 과거 어떤 개인이 블로그-일종의 원시적인 실시간 뇌파 기록 장치-에 끄적거린 사형에 대한 말도 안 되는 픽션이 발견되었다. 그 픽션을 쓴 사람이나, 그 픽션을 읽은 방문자들의 반응 같은 것도 현재의 자동 투표 프로그램을 위한 자료로 반영해야 할까? 반영하는지 하지 않는지 소비자들이 알게 되면 그 자체가 결과를 뒤바꿀 수도 있는데,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또 다시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끝없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반영하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당시에 이미 오늘날과 같은 자동 구매/투표 체계가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기도 하는데, 구체적인 세부 메커니즘은 다를 지 몰라도 기본적인 발상과 결과는 똑같았다는 것이다. 당시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명백한 증거랍시고 내세우면서. 그 중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이것이 민주 정부 뿐만 아니라 한두 세대 이상 지속된 모든 성공적인 정부들의- 왕정이나 공화정은 물론 원시 부족 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인간 사회의 구성 원리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무렴.
요즘엔 그런 음모론도 떠돌고 있다.

라이타 돌리던 아가씨의 아쉬움

오늘도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전에 초저녁부터 일찍 나서 퇴근 중인 아저씨들에게 알사탕 + 라이타 + 명함을 돌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퇴근하는 직장인들 틈바구니에서불쑥 나타났다.

그렇게 좋아했던 오빠였건만 벌써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째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손은 부지런히 알사탕 + 라이타 + 명함을 나눠주고 있었지만, 머리 속으로는 김씨부터 황씨까지 아는 남자 이름들을 재빠르게 훑어 넘기고 있었다. 왠지 흘끔흘끔 이 쪽을 쳐다보는 폼이 국민학교 때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웃집 오빠도 내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약 이십 년 전보다 키도 많이 컸을 뿐만 아니라 솔직히 코도 약간 높였고 눈도 살짝 쨌고 영업용 화장도 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몇 년 씩이나 이웃집에 살았던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오빠인데 어쩌면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걱정만 되는 것이 아니라 왠지 기대도 되었다. 이 쪽으로 자꾸만 다가오는 것이 아무래도 내 얼굴을 알아본 것이 맞는 것도 같고, 못 알아본 것 같기도 한데, 사실을 말하자면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가 맞긴 맞는 건지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순간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저 사람에게 지금 명함을 줬다가는 오빠가 나를 알아보고 가게로 찾아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못 알아봤더라도, 오늘 밤 잠자리에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오늘 명함을 줬던 그 여자가 혹시 자기가 중학교 때 아무도 모르게 좋아했던 이웃집 예쁜 여자애가 아니었던가 하는 깨달음을 얻고 가게로 찾아올 지도 모른다는 사춘기 소녀 같은 생각마저 들면서 왠지 가슴은 두근거렸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국민학교 때 아무도 모르게 나를 좋아했을 지도 모르는 이웃집 오빠가 가게로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짙은 화장 아래에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나는 비장의 기술을 발동시켰다. 왠지 진상처럼 생긴 아저씨나 빈티 나는 아저씨들에게 주로 쓰는 기술인데 초짜 시절엔 이 기술을 쓸 줄 몰라서 노숙자 같은 새끼한테 머리채를 붙들린 적도 있었다. 머리채가 다 뽑힌 모습을 보고 언니들이 가르쳐줬던 건데 쉽게 말해서 앞 사람에게 명함을 돌린 후 교묘한 시간차 공격으로 절대로 일부러 건너뛰는 것 같아 보이지 않게 진상이나 빈티를 제끼고 그 뒷 사람부터 다시 명함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내가 봐도 참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다. 김연아 점프 뛰듯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이 깔끔하게 넘어갔다.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아저씨는 아무런 낌새도 못 알아차리고 지나간 것 같았다.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금방 서운한 마음도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세월 때문일까 키 때문일까 코 때문일까 눈 때문일까 화장 때문일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화장 때문인 것 같다. 20대 초반 같은 피부를 자랑하는 내 쌩얼을 봤더라면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도 분명 나를 알아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역시 코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살짝만 세워달랬는데 너무 세워놓아서 안 그래도 속이 상했는데 기어코 오늘 같은 일이 생기고 나니 더 속이 상한다. 살짝만 도로 낮추는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해야 할 것 같다.

재수술을 위해 추가로 대출 받을 생각을 하며 계속 알사탕+ 라이타 + 명함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가 다시 나타났다. 실리콘 팩 두 짝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역시 나를 기억해내고 다시 돌아오는 건가 싶은 마음에 고맙기도 했고, 역시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가 맞나 보나 싶어서 콩닥거리기도 했고, 말을 걸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나 걱정도 들었지만, 갈팡질팡 소녀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내 손은 가게 명함만 열심히 돌려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양새가 역시 알아본 게 맞구나 싶었다. 이제는 퇴근하는 직장인들도 상당히 줄어서 아까 같은 스킬을 다시 쓸 수도 없었다. 콩닥콩닥콩닥콩닥. 콩닥 소리가 네 번 귓가를 울릴 때마다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가 거의 확실한 아저씨는 내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왔다. 3미터, 2미터. 1미터…

내 앞을 그냥 지나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날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가 역시 아니었나 싶은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빈티도 좀 나는 것 같았다. 바람결에 생양파 냄새도 살짝 나는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저렇게 빈티 나는 아저씨가 내가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이웃집 오빠일리 없지. 이런 생각을 하자 왠지 그 빈티 나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참 찌질해 보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역시 명함을 안 주길/못 주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코 수술도 안 해도 될 것 같다. 돈 굳었다. 오늘치 명함 챙겨온 게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얼른 마저 돌리고 출근이나 해야겠다. 그 아저씨가 그래도 오빠를 닮긴 닮았었는데. 명함을 다 돌릴 때쯤에는 가물가물하던 오빠의 이름도 떠올랐는데.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