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저는 아주 진짜입니다.

원문 링크 : Letters of Note: I am very real

1973년 10월, 브루스 세버리Bruce Severy라는 노스다코타주 드레이크 고등학교의 26세 영어교사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도살장을, 수업시간에 교육 보조자료로 쓰기로 결정했다. 다음 달인 11월 7일, 교육 위원회 위원장인 찰스 맥카시Charles McCarthy는 “외설적 언어”를 이유로 서른두 권 전부를 학교 화로에 태우라고 지시했다. 다른 책들도 곧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11월 16일, 커트 보네거트는 맥카시에게 다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1973년 11월 16일
맥카시씨 귀하

저는 드레이크 학교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의 당신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요즘 유명해진 당신 학교 화로에서 저서가 파괴된 미국 작가 중 하나입니다.

당신 지역사회 일원 중 일부가 제 작품을 두고 사악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로서는 엄청나게 모욕적인 일입니다. 드레이크로부터의 그 소식으로 미루어 볼 때 거기 분들께서는 책이나 작가를 아주 가짜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진짜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또한 여러분들이, 저의 출판사와 제가 드레이크로부터의 그 기분나쁜 소식을 아무데도 써먹지 않았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그 소식 덕분에 팔리게 될 책에 대하여 서로 축하하고 있지 않습니다. TV 출연을 사양했고, 사설란에 격노의 기고를 하지도 않았으며, 장황한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저희는 화나고 역겹고 슬플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사본을 다른 누구에게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이 지금 쥐고 있는 이것이 유일한 원본입니다. 드레이크의 여러분들께서 제 명성에, 그리고 자기 자식들의 눈과, 나아가 세상의 눈에 크나큰 상처를 주었기에, 이 편지는 제가 드레이크 분들에게 드리는 아주 사적인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사람들에게 보일 용기와 체면이 있으실런지요, 아니면 이 편지 또한, 여러분들의 화로 불에 던져질런지요?

신문에서 읽고 TV에서 본 걸로 미루어, 당신은 나와 다른 작가들이 무슨 젊은이들의 정신에 독을 타는 것으로 돈 버는 것을 즐기는 독사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건장한 51세의 사람으로서, 어릴 때 농장 일도 많이 한 바 있으며 연장들도 잘 다룹니다. 여섯 아이를 길렀는데, 셋은 제 자식이고 셋은 입양했습니다. 모두 잘 자랐으며 그 중 둘은 농부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투보병 참전용사이며, 부상으로 훈장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모두 열심히 일해서 번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체포되거나 고발당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신뢰 받는 사람이며, 아이오와 대학교, 하버드, 뉴욕 시립대에서 가르친 젊은이들로부터도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대학과 고등학교 졸업식 연사 초청을 매년 한 다스씩 받습니다. 제 책들은 아마 생존하는 다른 어떤 미국 소설가의 책보다도 여러 학교에서 널리 쓰이고 있을 것입니다.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하겠듯이, 여러분들께서도 혹시 제 책들을 읽어보셨더라면, 제 책들이 성적이지도 않으며, 어떠한 난폭한 것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저의 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소보다 더 친절하고, 더 책임감 있기를 요구합니다. 등장인물 중 일부가 거칠게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거칠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군인들과 근면한 남자들이 거칠게 말하는데, 이는 가장 보호받으며 자라는 아이들도 아는 바입니다. 또한 그러한 말들이 아이들에게 그리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우리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다치게 한 것은 사악한 행동과 거짓말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으니, 결국 당신은 여전히 이렇게 대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역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물론 그러합니다. 하지만, 무지하고 가혹하며 비미국적인 방식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신다면, 사람들이 당신들을 나쁜 시민이자 멍청이라고 부를 자격이 생긴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당신들의 자식들 또한 당신들을 그렇게 부를 자격이 있습니다.

신문에서 읽은 바로는, 여러분들이 한 일에 대한 전국에 걸친 격렬한 반응 때문에 여러분들의 공동체가 어리둥절해 있다고 합니다. 드레이크가 미국 문명사회의 일부이며, 그렇게 비문명적으로 행동하신 것에 대해 동료 미국인들이 견딜 수 없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신 셈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께서는, 책이란 아주 타당한 이유에서 인류를 자유롭게 해주는 신성한 것이며, 책을 혐오하고 불태운 나라들에 맞서 많은 전쟁을 치러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실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미국인이라면, 여러분의 공동체 안에 자신의 것만이 아닌 모든 사상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위원회가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데에 있어서 사실은 지혜와 성숙함을 갖추고 있음을 보이고자 하신다면, 읽지도 않은 책들을 비난하고 불태운 것이 자유 사회의 젊은이들에 대한 아주 형편없는 교육이었다는 것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자식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생존하는 데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으려면, 모든 종류의 견해와 정보에 노출시키도록 결심하셔야 합니다.

한번 더: 당신은 저를 모욕하였고, 저는 훌륭한 시민이며, 저는 아주 진짜입니다.

커트 보네거트

[펌] 사회주의 주기도문

다시 공자와 예수 그리고 우리 의사 아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인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덜 고통스러운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내가 그들만큼이나 좋아하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 나의 고향인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 출신인 유진 데브스다.

간단히 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진 데브스는 내가 아직 네 살이 채 되지 않은 1926년에 생을 마감했다. 데브스는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다섯 번이나 출마했고, 1912년 선거에서는 총 투표수의 육 퍼센트에 육박하는 구십만 표를 획득했다(당시 직접 투표가 어땠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데브스는 선거 유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층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하층 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범죄형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존재하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혹시 사회주의적인 무언가가 여러분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는가? 훌륭한 공립학교나 전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처럼?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가재처럼 기어나올 때 당신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가? “하층 계급이란 것이 있는 한 나는 하층 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있는 한 나는 범죄형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있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예수가 설파한 산상수훈의 팔복도 그와 비슷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뭐 이런 식이다.

-커트 보네거트, 나라 없는 사람, 96-97쪽.

[펌] 쿨잇

이 책에서 펴는 주장은 간단하다.

  1. “지구 온난화는 현실이며 인간이 일으켰다.” 현세기 끝 무렵에는 결국 인간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2.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격렬하고, 불길하며, 코앞에 닥친 결과에 대한 주장은 심하게 과장된 경우가 많다.” 그런 과장으로부터 좋은 정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3. 비록 좋은 의도일지라도 터무니없이 노력하기보다는 “지구 온난화에 대해 더 단순하고 더 현명하며 더 효율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실행하는 대규모의 값비싼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은 먼 미래까지도 파급 효과가 적거나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4. “지구 온난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 균형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세계에는 기아, 가난, 질병 같은 심각한 문제가 무척 많다. 수조 달러를 퍼부어 과감한 기후 정책을 추진하느니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더 많은 사람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도울 수 있을뿐더러 성공할 가능성도 훨씬 높다.
비외른 롬보르, 쿨잇, 26-27쪽.

저자분께서 대단히 친절하시다!

세상만사 다 귀찮은 분들께서는 이거 네 줄만 읽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셔도 되겠다.

[펌]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한다

원문: http://www.theonion.com/content/opinion/people_like_food

오늘날 사람들이 뭔가에 의견을 함께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늘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항상 잘 차려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만화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이 나오는 것만을 보고 싶어한다. 중간 지대는 어디에 있는가? 없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음식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한다.

자 내 주장에 반대하기 전에, 잠깐만 생각을 해보시라. 나랑 얘기해봤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하더라. 우리 엄마도 음식을 좋아한다. 내 동생도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 양아버지는 우리 엄마보다도 음식을 더 좋아한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도 음식을 좋아할 것이다. 그와 식사를 함께 했던 적은 결코 없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밥상 앞에서 커다란 사발에 마카로니 앤 치즈를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노숙자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허구헌날 내게 돈을 구걸하더라. 내가 보기에 음식이란 상당히 인기가 있는 듯하다.

또, 잘 생각해 보면, 음식이란 것에는 좋아할 만한 점이 참 많기도 하다. 맛도 있고, 먹기도 좋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뿐이지만, 그 두 가지만으로도 나는 음식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방금 막 또 하나가 생각났다. 음식은 아마도 우리가 입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건강에도 가장 좋은 것일 듯하다. 못 믿겠으면 아무 의사한테나 물어봐도 좋다.
그리하여, 과연,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 람들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서 큰 게 하나 있는데, 내가 지금 그것을 논박해보겠다. “편식하는 사람들은요? 그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이 의견의 일부는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편식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당장 주어진 음식들을 전부 다 싫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식 하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모든 음식을 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 직도 내 말을 못 믿겠는가? 모든 반대자들을 조용하게 만들 예시를 들어보겠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에, 내 친구 데일은 아스파라거스를 먹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혹시 얘는 음식을 싫어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가 닭구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즉, 그는 닭을 좋아하는데, 닭은 음식이므로, 따라서 그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다. 거 봐라. 편식하는 사람들도 음식을 좋아한다.

이건 사람들이 음식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많은 예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밖 에 나가보면 모두를 위한 음식들이 있다. 햄버거가 좋은 예다. 하지만 햄버거를 싫어한다고 해도, 고려해야 할 다른 음식들이 많이 존재한다: 스파게티, 치킨 너겟, 치즈버거, 씨리얼, 베이컨, 팬케익, 팟파이, 유제품 등. 어떤 사람들은 스타버스트 사탕이나 치즈크래커처럼 조리할 필요도 없는 음식을 좋아한다. 또한 찬 음식이나, 유동식, 부드러운 음식, 딱딱한 음식, 젤리를 채운 음식 같은 것들도 있다. 충분히 열심히 살펴보기만 한다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하나쯤은 찾게 될 거라는 점이 분명하다고 본다.

당신도 피자는 좋아하겠지.

사 람들은 음식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음식을 먹는 사이사이에 또 시간을 내어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래서 간식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맛도 좋은 간단한 음식 말이다. 수퍼마켓의 간식 코너는 아주 크고, 선택의 폭도 넓다.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해서 돈 주고 살 것이라는 사실을 수퍼마켓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걸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으며, 당신도 잘 들어보기만 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내가 통계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한 98%쯤은 되는 사람들이 음식을 매일 먹을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이나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점심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비율은 정말 높을 수밖에 것이다. 그들이 그 시간에 달리 무얼 하겠는가? 아기들조차도 음식을 못 얻어먹으면 울어댄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우리가 실질적으로 음식을 먹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는 증거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음식을 그토록 좋아하는 걸 수도 있겠다.

음식은 주변에 늘 있어왔다는 것: 이것은 하나의 팩트다. 마르코 폴로가 아시아에서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에도 음식은 거기에 있었다. 첫 추수감사절 때에도 음식은 거기에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류가 언제나 해온 바로 그것이다. 음식이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음식이 없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인류라고 부를 수나 있었을까? 우리는 아마도 꽤나 허기가 져 있거나, 아니면 죽어있을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제 마음을 열고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 진짜다. 감사.

인문학적 만능론

결혼 직후 나는 마인 강변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독일령 비스바덴으로 전보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압수당해 산더미같이 쌓인 독일군 전문서류–미국 산업계가 사용함직한 발명품이나 제조법을 탐지한 서류들을 가려내는 민간인 기술진을 책임지게 되었다. 내가 수학도 화학도 물리학도 모른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내가 루스벨트 농림성에 취직했을 때 일찍이 농장 근처에 가본 일도 없었고 하다 못해 창틀 위에 아프리칸 바이올렛의 꽃분 하나 키워 본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문제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인문학자가 감독하지 못할 일이란–적어도 당시엔 그렇게 널리 믿어지고 있었다–아무것도 없었다.

커트 보네거트. 제일버드. 웅진. 65-67쪽.

인문학은 원래 만능이라능. 인문학의 과학 제어 능력은 그저 당연히 따라붙는 덤에 불과하다능.

러시모어산

(…) 카터의 인권정책은 그의 행정부가 광주의 유혈사태에 고작 한가한 항의밖에 하지 않았을 때 카터의 면전에서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한 창의적인 학생의 포스터에는 러시모어산(Rushmore Mount, 워싱턴,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로우즈벨트의 흉상이 조각되어 있는 싸우스다코다 주의 산–옮긴이) 꼭대기에 전두환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는 지미 카터가 M-16소총을 들고 성벽을 지키고 로널드 레이건은 낸시한테 오럴쎅스를 하고 있고 ‘3김’은 그 옆에서 이를 멍청하게 지켜보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각주. 『사회와 사상』(1989년 3월)에 수록되어 있음.
-브루스 커밍스. 한국현대사. 550-551쪽.

이 그림 실물을 무척 보고 싶은데,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 흑흑.
책은 무척 재밌음. 이제서야 수능 보고 밀린 빚을 갚은 느낌…

[펌] 침술 미신에 똥침 놓기

침술 미신에 똥침 놓기

의학박사 해리엇 홀(Harriet Hall, M.D.) 씀.

정의상, “대체” 의학이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주류 의학에 수용되지 않은 치료법을 일컫는다. 내가 계속 듣게 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럼 침술은요? 그건 효과가 있다고 증명되었고, 많은 훌륭한 연구들로 뒷받침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의사들이 쓰고 있고, 보험 회사들도 돈을 대주잖아요.” 침술 미신에 똥침을 놓을 때가 됐다. 침술용 침으로 놓는 것이 괜찮겠다. 당신이 침술에 대해 들어본 거의 모든 것은 틀렸다.

우선, 이 고대 중국의 치료법은 그리 고대의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의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초창기 문서들을 연구함으로써, 중국 학자 Paul Unschuld는 침술의 개념이 그리스인인 코스의 히포크라테스에게서 유래되어 훗날 중국으로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3천년이 되지는 않았다. 기력 이전 3세기의 초기 중국 의학 문건들은, 침술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바늘 꼽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건은 기력 이전 90년의 것인데, 그것도 대바늘이나 바소로 방혈을 하거나 종기를 째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문건들 중에 오늘날의 침술과 비슷한 어떤 것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당시 바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커다랗다. 침술용으로 쓰는 가느다란 강철 바늘을 제조하기 위한 기술력은 약 400년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중국 의학에 관한 것이 서양에 최초로 전해진 것은 13세기였는데, 침술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침술에 대해서 쓴 최초의 서양인, Wilhelm ten Rhijn은 1680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은 침술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는 혈이나 “기qi”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두개골이나 “자궁” 속 깊숙히 30 호흡 동안 꼽아두는 커다란 금침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침술은 그 후 유럽에서 쓰이다 말다 했다. 미국에서 처음 쓰인 것은 1826년 익사자를 소생시키기 위한 그럴싸한 방법 중의 하나로써였다. 그들은 효험을 보지 못했으며, “역겨워하며 포기했다”고 한다. 푹 젖은 시체에 바늘을 꼽아대는 모습을 생각하니 꽤나 역겨웠을 것 같긴 하다.

20세기 초까지, 침술에 대한 어떠한 서양의 문건도 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바늘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지점 근처에 찔러졌다. 기란 원래 음식에서 나오는 증기였고, 경락이란 수로나 배를 뜻했다. Georges Soulie de Morant라는 프랑스인이 1939년에야 처음으로 “경락meridian”이란 말을 썼고, 기를 에너지라는 뜻으로 썼다. 이(耳)침은 1957년 한 프랑스인에 의해 발명되었다.

중국 정부는 1822년(역주:1922의 오기?)과 2차세계대전 사이 중국 국가주의 정부 시절 침술을 몇번이나 금지하려고 했었다. 모택동이 1960년대 서민들에게 의료를 제공할 값싼 방법으로서 “맨발의 의사” 캠페인 때 침술을 되살려냈는데, 그 자신은 침술에 효과가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침술 치료를 받지 않았다. “전통 중국 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줄여서 TCM이라는 말을 만든 것은 모택동 정부였다.

1972년 James Reston은 닉슨과 중국에 동행했다가 돌아와서 그가 받은 맹장수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침술로 마취된 상태에서 그의 맹장이 제거되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실제로는, 침은 수술 다음 날 고통 완화를 위해 그저 덤으로 쓰였을 뿐이었으며, 그 고통 완화도 아마 정상적 장 운동이 예정대로 돌아온 것에 따른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침술로 마취되어 심장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라며 널리 퍼진 사진도 가짜로 드러났다. 오늘날 수술에 침술이 쓰인다면, 정통 마취법과 함께 또는, 수술전 투약과 함께 쓰이고 있으며, 침술을 믿고 있어서 플라시보 반응을 보일 것 같은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침술이 서양에서 인기리에 불어나는 동안, 동양에서는 쇠락해갔다. 1995년, 방문 미국 내과의들은 15-20%의 중국인들만이 TCM을 선택하며, 그마저도 보통은 서양식 교육을 받은 의사의 진단 후에 서양식 의술과 함께 쓰인다는 얘기를 들었다. 확실히 어떤 환자들은 돈이 없어서 TCM을 선택하곤 한다.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는 단일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는 360개의 경혈이 있었다고 한다. (대충 한 해의 날짜 수에 기반한 것이다. 해부학적 기반이 아니라.) 오늘날에는 2000개 이상의 경혈이 “발견”되어, 어떤 장난꾸러기는 이제 경혈이 아닌 피부가 남지도 않았다고 논평한 바 있다. 경락은 9, 10, 또는 11개(골라잡으시라.)가 있었다. 어떠한 연구도 경혈이나 경락이나 기의 존재에 대해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떤 숫자를 고르든, 다른 것보다 못할 것이 없다.

침이 효과가 있느냐고? 어떤 침을 얘기하는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효과”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쓰고 있는가? 다양한 중국식 침술뿐만 아니라, 일본식, 태국식, 한국식, 그리고 인도식 침술도 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발명되었다. 몸 전체에 놓거나 종아리, 손, 귀, 발 또는 볼과 턱에만 제한적으로 놓기도 하고, 깊이 놓거나 얕게 놓기도 하고, 전기가 통하는 바늘로 놓기도 하고, 피부에 전기 패드만 붙이되 살을 뚫지는 않으며 침을 놓기도 한다.

침술은 플라시보와 마찬가지로 효과가 있다. 침술은 통증, 메스꺼움, 그리고 다른 주관적 증상들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증명됐으나, 어떠한 질병이든 병의 경과를 달리 했다고 증명된 적은 결코 없다. 오늘날 침술은 주로 통증에 쓰이고 있는데, 초기의 중국 침술사들은 침술이 확실한 질병을 위한 것이 아니며, 침술이란 워낙 미묘해서 병의 아주 초기 단계에만 쓰여야 하고, 환자가 침술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을 때에만 효과가 볼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고대의 지혜라는 것이 조금 있기는 한가 보다!

연구들은 침술이 뇌 속에서 자연산 아편 같은 통증 완화제, 즉 엔돌핀을 나오게 한다는 것을 보여왔다. 수의사들은 말을 트레일러에 싣거나 개에게 막대기를 던지는 것도 엔돌핀을 나오게 한다는 사실을 지적해왔다. 아마 자기 엄지 손가락을 망치로 때리는 것도 엔돌핀이 나오게 할 것이고, 그러면 두통 걱정도 사라지긴 할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침술에 대한 명백한 반응을 설명할 수도 있는 여러가지를 줄줄 댈 수 있다. 원래의 증상으로부터 바늘이 꼽히는 감각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 기대감, 암시, 상호 교감과 순응 요구, 인과 오류, 고전적 조건화, 상호적 조건화, 조작적 조건화, 조작자 조건화, 강화, 그룹 동의, 경제적 감정적 투자, 사회적 정치적 불만, 믿음에 대한 사회적 보상, 질병의 다양한 경과, 평균으로의 회귀-인간의 심리가 우리로 하여금 효과 없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수단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플라시보가 똑같지 않다는 사실도 있다.- 드러눕고, 긴장을 풀고, 돌봐주는 권위자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수반하는 복잡한 체계는, 단순히 설탕 약을 먹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통증이나 메스꺼움 같은 주관적 증상들에 침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하지만 그 연구결과들에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점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결과들은 일관적이지 않아서, 어떤 연구는 효과를 찾아내는데, 어떤 연구는 찾지 못한다. 고품질의 연구들일수록 효과를 찾아내지 못하곤 한다. 대부분의 연구들이 침술 신봉자들에 의해 행해졌다.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쪽으로 편향되어있지 않다면 피험자들 상당수가 침술 실험에 자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 다른 동양 국가들에서 나오는 침술 연구들은 전부 긍정적인 결론을 내는데, 그러고 보면 중국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결론을 내기는 한다. 연구자들이 망신을 당하거나 실직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논문을 내는 것은 문화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침술 연구에 관한 가장 큰 문제점은 적절한 플라시보 통제를 찾는 것이다. 연구자는 사람들한테 침을 꼽고, 사람들은 그걸 알아차린다. 즉, 이중맹검이 불가능하다. 침을 안 쓰고도 썼다고 환자들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침을 꼽는 사람도 모르게 할 도리가 없다. 두 종류의 통제가 사용되어 왔다. 혈과 혈이 아닌 곳의 비교, 그리고 껍데기가 있는 교묘한 바늘을 써서 살을 안 뚫고도 뚫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George Ulett의 연구에서, 그는 손목의 피부에 전류(일종의 TENS경피전기신경자극 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를 흐르게 하면, 침을 꼽는 것만큼의 효과가 있으며, 손목 한 군데만으로 몸 어느 부위의 증상에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들어보시라. 어디에 침을 놓든 상관이 없다. 침을 아예 안 써도 상관이 없다. 최고로 통제된 연구에서는 오직 한 가지-즉, 환자가 침을 맞고 있다고 믿고 있는지 여부만이 상관 있었다. 만약 진짜로 침을 맞고 있다고 믿으면, 통증 완화가 더 잘 되었다. 실제로 침을 맞았든 안 맞았든 말이다! 만약 침을 맞았는데, 안 맞았다고 믿는다면, 효과도 없었다. 만약 침을 안 맞았는데, 맞았다고 믿는다면, 효과가 있었다.

침술사들은 실패한 연구들을 구원하려고 교묘한 합리화를 해왔다. 엉터리 침술을 통제로 사용한 최근 연구에서, 엉터리 침술과 진짜 침술이 똑같이 좋은 효과를 냈다. 즉, 둘 다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것보다 나았다. 명백한 결론은 침술이 플라시보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진짜 침술이 효과가 있었고, 플라시보 침술도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침술 연구자는 최근 자신의 연구에 플라시보 통제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떠한 피부 자극도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내게는 이것이 침술의 근본원리를 파괴해버리다시피 하는 것 같은데, 그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늘을 꼽아대고 가상의 기나 경락을 내세우는 대신에, 우리는 그저 우리 환자들을 어루만지거나 마사지해주면 될 것이다.

일관적이지 못한 연구 결과, 믿기 힘든 기와 경락, 그리고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의문점들을 고려해볼 때, 침술이란 그저 약간의 반대자극이 가미된, 공들인 플라시보 처방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합리적이다. 원한다면 인간 바늘방석 놀이를 할 수도 있겠고, 훌륭한 플라시보 반응을 얻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상을 얻으리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주: 이 글의 일부는 작고한 Robert Imrie 박사가 만든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에서 따왔음. 낙타침, 염소침, 그리고 닭침의 훌륭한 그림들을 볼 수 있는, 매우 가볼만한 곳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