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저는 아주 진짜입니다.

원문 링크 : Letters of Note: I am very real

1973년 10월, 브루스 세버리Bruce Severy라는 노스다코타주 드레이크 고등학교의 26세 영어교사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도살장을, 수업시간에 교육 보조자료로 쓰기로 결정했다. 다음 달인 11월 7일, 교육 위원회 위원장인 찰스 맥카시Charles McCarthy는 “외설적 언어”를 이유로 서른두 권 전부를 학교 화로에 태우라고 지시했다. 다른 책들도 곧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11월 16일, 커트 보네거트는 맥카시에게 다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1973년 11월 16일
맥카시씨 귀하

저는 드레이크 학교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의 당신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요즘 유명해진 당신 학교 화로에서 저서가 파괴된 미국 작가 중 하나입니다.

당신 지역사회 일원 중 일부가 제 작품을 두고 사악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로서는 엄청나게 모욕적인 일입니다. 드레이크로부터의 그 소식으로 미루어 볼 때 거기 분들께서는 책이나 작가를 아주 가짜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진짜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또한 여러분들이, 저의 출판사와 제가 드레이크로부터의 그 기분나쁜 소식을 아무데도 써먹지 않았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그 소식 덕분에 팔리게 될 책에 대하여 서로 축하하고 있지 않습니다. TV 출연을 사양했고, 사설란에 격노의 기고를 하지도 않았으며, 장황한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저희는 화나고 역겹고 슬플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사본을 다른 누구에게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이 지금 쥐고 있는 이것이 유일한 원본입니다. 드레이크의 여러분들께서 제 명성에, 그리고 자기 자식들의 눈과, 나아가 세상의 눈에 크나큰 상처를 주었기에, 이 편지는 제가 드레이크 분들에게 드리는 아주 사적인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사람들에게 보일 용기와 체면이 있으실런지요, 아니면 이 편지 또한, 여러분들의 화로 불에 던져질런지요?

신문에서 읽고 TV에서 본 걸로 미루어, 당신은 나와 다른 작가들이 무슨 젊은이들의 정신에 독을 타는 것으로 돈 버는 것을 즐기는 독사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건장한 51세의 사람으로서, 어릴 때 농장 일도 많이 한 바 있으며 연장들도 잘 다룹니다. 여섯 아이를 길렀는데, 셋은 제 자식이고 셋은 입양했습니다. 모두 잘 자랐으며 그 중 둘은 농부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투보병 참전용사이며, 부상으로 훈장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모두 열심히 일해서 번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체포되거나 고발당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신뢰 받는 사람이며, 아이오와 대학교, 하버드, 뉴욕 시립대에서 가르친 젊은이들로부터도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대학과 고등학교 졸업식 연사 초청을 매년 한 다스씩 받습니다. 제 책들은 아마 생존하는 다른 어떤 미국 소설가의 책보다도 여러 학교에서 널리 쓰이고 있을 것입니다.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하겠듯이, 여러분들께서도 혹시 제 책들을 읽어보셨더라면, 제 책들이 성적이지도 않으며, 어떠한 난폭한 것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저의 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소보다 더 친절하고, 더 책임감 있기를 요구합니다. 등장인물 중 일부가 거칠게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거칠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군인들과 근면한 남자들이 거칠게 말하는데, 이는 가장 보호받으며 자라는 아이들도 아는 바입니다. 또한 그러한 말들이 아이들에게 그리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우리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다치게 한 것은 사악한 행동과 거짓말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으니, 결국 당신은 여전히 이렇게 대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역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물론 그러합니다. 하지만, 무지하고 가혹하며 비미국적인 방식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신다면, 사람들이 당신들을 나쁜 시민이자 멍청이라고 부를 자격이 생긴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당신들의 자식들 또한 당신들을 그렇게 부를 자격이 있습니다.

신문에서 읽은 바로는, 여러분들이 한 일에 대한 전국에 걸친 격렬한 반응 때문에 여러분들의 공동체가 어리둥절해 있다고 합니다. 드레이크가 미국 문명사회의 일부이며, 그렇게 비문명적으로 행동하신 것에 대해 동료 미국인들이 견딜 수 없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신 셈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께서는, 책이란 아주 타당한 이유에서 인류를 자유롭게 해주는 신성한 것이며, 책을 혐오하고 불태운 나라들에 맞서 많은 전쟁을 치러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실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미국인이라면, 여러분의 공동체 안에 자신의 것만이 아닌 모든 사상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위원회가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데에 있어서 사실은 지혜와 성숙함을 갖추고 있음을 보이고자 하신다면, 읽지도 않은 책들을 비난하고 불태운 것이 자유 사회의 젊은이들에 대한 아주 형편없는 교육이었다는 것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자식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생존하는 데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으려면, 모든 종류의 견해와 정보에 노출시키도록 결심하셔야 합니다.

한번 더: 당신은 저를 모욕하였고, 저는 훌륭한 시민이며, 저는 아주 진짜입니다.

커트 보네거트

얘야, 약 먹을 시간이다

우리 아들은 똑똑해서 공부도 참 잘합니다. 이번 주 전국 학력 평가에서도 역시 반에서 일등입니다. 얼굴도 날 닮아서 참 잘생겼습니다.

그런데 속상해 죽겠습니다. 이번에 우리 애는 전교에서는 구등인데, 옆집 철이는 전교에서 이등을 했답니다. 우리 아파트에 공부 잘하는 애들 둔 아줌마들끼리 하루이틀 걸러 한번 꼴로 모여서 차 마시는 모임이 있는데, 요즘 철이 엄마 콧대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눈꼴이 시려 죽겠습니다. 어제는 글쎄 이번 주 성적표까지 가지고 왔더라고요. 반 등수는 똑같이 일등인데 전교 석차만 봐도 배가 아파 죽겠습니다. 지난 번에는 철이가 칠등, 우리 애는 팔등이었기에 이번엔 따라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째 더 벌어져버렸거든요. 안 보는 척 곁눈질로 슬쩍 학군 석차나 전국 석차까지 보니까 제가 다 억장이 터져서 앓아 누울 지경입니다. 흥, 그래도 우리 애는 잘생겼지! 철이 녀석 살은 뒤룩뒤룩 쪄가지고 요즘에는 글쎄 망측하게 가슴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철이보다 더 속상한 건 옆 단지 사는 미영이 때문입니다. 여자애가 얼마나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지 말도 못합니다. 아파트 시세는 우리집보다 사천오백이나 낮은 주제에 솔직히 딸년 하나는 잘 뒀습니다. 어떻게 된게 새 학기 들어 매주 전교 일이등 자리를 놓치지를 않습니다. 매달 종합 평가에서도 언제나 일등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금 기복이 심했는데, 글쎄, 에미라는 사람이 올해부터 딸에게 피임약을 먹이고나서부터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같습니다. 단지내 상가 약국 하는 미숙이네 엄마가 알려줬지요. 세상 참 말세입니다.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딸애에게 피임약을 먹일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까짓 전교 1등 가끔 좀 못하면 어떻다고. 저라면 소문 날까 무서워라도 피임약 먹일 생각은 못할 것 같습니다. 망측하기도 해라.

철이하고 등수가 벌어진 건 아무래도 이번에 새로 나온 에스트로 뭐시기 하는 약을 안 먹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숙이네 엄마가 처음 권했을 때 반신반의하고 먹이지 않았었는데, 등수가 팍팍 오른 철이를 보니 효과가 있긴 있나 봅니다. 철이 엄마는 여편네가 얼마나 깍쟁이인지 옆집 사는 저한테도 애한테 무슨 약을 먹이는지 말을 안 해줍니다. 하지만 내가 미숙이네 엄마를 꽉 잡아둔 덕에 철이네가 무엇무엇을 먹이는지는 훤히 다 꿰고 있습니다. 여우 같은 여편네야 이건 몰랐을 거다. 히히.

우리 애한텐 그 동안 무슨 삼이랑 뿔을 달였다는 한약만 먹이고 있었는데, 신문을 보니까 요즘엔 양한방 복합처방이 인기라고 하더라구요. 그나저나 그 에스트로 뭐시긴가 하는 약을 먹으면 여드름 난 애들 피부도 고와진다고 합니다. 미숙이네 말이 원래는 무슨 부작용 같은 거라던데, 부작용이라니까 지레 걱정은 좀 되지만 뭐 나쁜 것도 아니라니 한번 먹여봐야겠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애 여드름 흉 때문에 잘 생긴 얼굴 망가질까봐 속상했는데,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시험 잘 보는 약이라고 권해서 먹였더니만, 괜히 밤에 잠만 안 온다 그러더니 시험 끝나고 나서 며칠 동안이나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몽사몽 헤매더라구요. 이번 약도 그런 부작용이 있으면 안될텐데 겨우 여드름 안 나는 부작용이라니 뭐 괜찮겠지요.

게다가 이게 또 은근히 여자애들한테 쓸데없는 관심을 줄여주는 데 특효가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왜 남자애들 징그러워지기 시작하면 온종일 여자 생각만 한다잖아요. 안 그래도 옛날엔 천사 같기만 하던 우리 애도 몇 달 전부터 여드름이 송송 돋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방문도 자꾸만 잠그려고만 들고 그럽니다. 어쩌다 잠기지 않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후다닥 놀라는 꼴이 심상치 않았는데, 그럼 그렇지 같은 반 기집애한테 홀려가지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나 보더라구요. 예전엔 정말 착한 애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공부도 지지리도 못하는 년일텐데, 아들놈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니까 얼굴도 못났더만요. 맨날 지금 네가 여자애한테 한눈 팔 때가 아니라고, 대학 가면 실컷 만날 수 있다고 말은 해줍니다만 어디 그 나이 사내놈들이 어른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런 소리 할 때마다 오히려 또 핸드폰 훔쳐본거냐면서 신경질만 부리면서 방문을 잠그더라구요. 나쁜놈 에미 마음도 모르고.. 이럴 땐 정말 딸 키우는 엄마들이 부럽습니다.

그 놈의 기집애 때문에 자꾸만 전교 등수도 떨어지는 거였나 봅니다. 우리 아들 꼬드기지 말라고 걔네 엄마한테 전화도 해봤는데, 무식한 여편네가 사람 말귀를 통 못알아먹더라구요. 이러다 우리 아들 십등 밖으로 밀려나면 동네 챙피해서 어떻게 밖에 돌아다닐지 상상도 안 됩니다. 쪽팔리게 철이네 엄마는 또 어떻게 보구요. 가끔 그렇게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는 엄마들이 있는데, 내가 그 짝이 될 수는 없지요, 아무렴!

전에 이런 여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이 되어서 철이네는 그런 일 없냐고 물었었는데, 자기네 애는 걱정 없다고 은근히 약을 올리던 게 기억이 났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 약 얘기였나 봅니다. 관심을 줄여준다고는 그러던데, 이미 생긴 관심도 끊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속는 셈치고 우리 애도 내일 당장 약국에 들러서 사다가 먹이렵니다.

우리 아들 화이팅! 다음 달엔 꼭 전교에서 일등 하거라~

사형 존치/폐지의 논리와 감정들

0.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거의 전세계적으로- 식인풍습이 없어졌습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일 겁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신분 차별이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아동에게 노동을 착취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종교/사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시대에 뒤쳐진 바보 멍청이라고 욕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이제야 인정할까말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최고로 큰 기업에서 노조를 못 만들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사형을 거의 폐지하다시피 했으면서도 되살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보 멍청이입니다.

1. 사형 폐지의 논리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

제가 파악하는 바, 사형 폐지론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쥐고 있을 수 있는 진리는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까지입니다. 굳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수를 죽여버리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공동체가 이루고자 하는 바-즉, 위험인물 격리, 범죄 감소, 살기 좋은 세상-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것까지가 사형 폐지의 핵심 논리입니다. 여기에 ‘위험인물 척살’ 같은 것을 은근슬쩍 끼워넣는 미꾸라지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말살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상쇄됩니다.
제게 사형수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경우를 들라면, 사형수가 감방 안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교도소 바깥으로 뇌파를 삐리삐리 마구 쏴대서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거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2. 사형 존치의 논리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사형제도의 창시, 존속 또는 부활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밝혀야만 할 것은, 사형을 폐지할만한 전적으로 논리적인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사형을 국가의 제도로서 유지시켜야 할 논리까지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135개국과, 그 중에서 지난 10년간 한 건의 사형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았던 우리 대한민국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명백한 거짓으로 밝혀진 주장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형 존치론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대한 논리적인 주장은, 사형 폐지론자들과 비슷한 형태의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정도입니다.

3. 사형 폐지의 감정 -지식, 지성, 도덕, 공감능력

그리하야 사실 전적으로 논리만 가지고는 사형의 무조건적 폐지라는 일견 극단적인 결론까지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절대로 죽이지 말자”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현대 인류 문명의 쾌거인 인권의 개념을 온몸으로 촉촉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 이전에 각자의 심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1)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권 개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거나, 2) 들어봤지만 머리가 나빠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거나, 3) 그 따위꺼 흥하고 콧방귀를 뀔 정도로 심성이 고약한 사람이라거나, 4) 인권 따위 자기와 상관 없는 문제라고 치부하는 독불장군이라면 “꼭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죽여버렸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얼마든지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사형의 폐지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그러니까 막판에는 1) 지식과 2) 지성과 3) 도덕과 4)공감능력의 문제이지,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적 근거에 수긍하더라도. 막판에 인권지식과 이해능력과 도덕감정과 공감의 능력을 통해 폐지라는 결론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나름의 엉뚱한 결론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분들이 바로 ‘논리적인 사형 존치론자’들의 실체입니다. 하긴 네 가지 중에 적어도 한두 가지 이상은 갖춰야만 하는 문제인지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기가 좀 미안하기는 합니다. 아직도 여성 참정권을 인정 못하고, 흑인이 인간임을 인정 못하는 심성을 가진 분들이 있듯이, 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이죠.

4. 사형 존치의 감정 -보복 감정, 정의감, 핑계, 공포감 그리고 타성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면 그냥 죽여버리자”는 주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통 보복 감정이나 불타는 정의감, 나름의 논리, 공포감 같은 것이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것도 없이 완전히 논리적으로 막바로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을 요즘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우선 보복 감정. 나쁜놈을 찢어죽이고 쳐죽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폐지론자인 저도 이해하는 바입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우리 개개인이 자비와 용서의 감정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국가도 그 감정을 그대로 반영해야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분들은 정말로 능지처참해야 할 놈들까지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훌륭한 국가라면, 우리 중 다수의 마음보다는 우리 중 훌륭한 분의 마음을 반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제 마음이 훌륭하지는 못해도, 훌륭한 분들의 마음과 행동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며, 그 본받음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제도를 통해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메소포타미아인이 아니고, 우리의 법은 더 이상 비석에 새겨두는 열 줄 짜리 메모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서 그 년/놈을 용서해주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년/놈의 죄를 봐주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 그 년/놈의 죽음만큼은 면해줄 정도로 우리가 훌륭해지는 겁니다.

정의감은 폐지론자라고 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존치론자들만의 미덕이 아닙니다. 폐지론자들도 범죄자들을 잡아서 심판해야 한다는 정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치론자들 중에는 세상에 자기들만 정의로운 줄 알고 폐지론자들을 무슨 범죄 옹호론자쯤으로로 몰아세우는 분들도 계신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정의감은 양측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존치론이냐 폐지론이냐는 이러한 정의감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타는 정의감은 존치론의 이유가 못됩니다.

가끔씩 보복 감정과 불타는 정의감 외에, “밥값 아깝다”는 이유를 경제 논리랍시고 들고 나오는 분들이 계신데, 굳이 논리라고 부르자면 논리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을 밥값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처럼 개화한 문명사회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받은 현대인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그럴듯한 핑계를 원하는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비슷한 핑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엔 심지어 “그 놈들은 사람이 아니니까”처럼 막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걸 논리랍시고 대는 사람들은 논리가 아니라 놀리는 거라고 봅니다.

제가 뭐라고 타박하기 가장 찜찜한 것이 공포감입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발 뻗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막연한 감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입니다. 그 조건에, 어떤 사람의 생사여부가 들어가게 될 경우 이 근원적인 공포는 적극적인 사형존치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분들께는 사형제도 폐지하자고 말하기가 정말로 미안합니다. 거미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거미는 익충이에요 하는 기분이고,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관람차 재미있어요 하는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막연하고 불합리한 공포를 국가처럼 큰 사회의 제도에까지 반영시킬 필연성이 없으며, 어떤 경우엔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해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사형을 폐지한 나라들에서 이런 분들이 집단 공황증세라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구요.

그러나 제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타성입니다. 이건 뭐 논리도 아니여 핑계도 아니여 그렇다고 무슨 감정의 표현도 아니여. 그냥 “아 몰라 하던대로 하지 귀찮게 뭘 바꿔.”, “그냥 대충 놔둬. 죽든 말든 뭔 상관이야.”, “뭐 나쁜 놈이라고? 그럼 죽으라 그래.”, “인권? 그게 뭥미. 몰라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아 귀찮아. 꺼져.”, “아 법 있는데 왜 집행을 안한대, 그냥 해, 왜 안 해.”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용량이 부족한 건지, 속도가 딸리는 건지. 도통 답이 없어요.

5. 가야 할 길

우리 모두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연쇄살인마도 있지만, 우리 중에 예수와 부처도 있다면, 우리가 어느 쪽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들의 공동체를 이끄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보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답을 찾아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형폐지론은 무슨 시대를 앞서나가는 새로운 주장이라거나,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변적이고 이상적인 몽상 따위가 아닙니다. 이미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나라에서,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10년 동안 입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발자국을 찍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앞서 갔고, 우리 앞에는 꽤 훌륭한 길이 나 있습니다. 그냥 터벅터벅 따라가기만 해도 됩니다. 편하지 않습니까? 그런 길들 중에는, 아직 먼저 간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좀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직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 폐지라는 잘 닦인 길을 향해 우리는 이미 몇 걸음 뗐습니다. 거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