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얼레리꼴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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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원의 행복

심심해서 영화나 한 편 보러 극장 구경을 나섰다. 값 비싼 표를 사는 대신 무가지를 집어들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 바깥 면에는 복권과 경마 광고가 있었는데, 안에 들어오니 사채 광고가 있다. 흠, 나름 논리적이다. 즐겨 보는 만화 몇 개와 해외 토픽 몇 가지를 읽고 나니 벌써 극장 앞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머리 둘 달린 거북이가 태어났다는데 사진을 보니 합성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극장 인근 식당에서 할인 받을 수 있는 쿠폰 겸 영화표를 다운로드 받았다. 다국적 식품 업체의 상표명들을 알아맞히는 십자말풀이가 인쇄된 컵에 담긴 공짜 탄산음료를 뽑아 마시다가, 중소기업에 배당되는 허접한 싸구려 시작 광고들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 상영 시간에 거의 맞추어 입장하는 것도 요령이다. 늦게 들어가도 억울하지만 일찍 들어가도 한심스러우니까. 내가 가발 광고를 유심히 보는 대머리도 아니고 말이지. 영화는 그저 그런 헐리우드 액션 영화였다. 두번째 중간광고가 시작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나갔다. 첫번째 중간광고는 언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게 시작되어 화장실에 갈 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주연배우를 광고 모델로 쓰고 영화 세트도 빌려쓰다니 돈 깨나 썼겠다 싶었다. 그래도 오줌 마려운 관객이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교묘하게 만든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쏴- 뻗어나가는 물줄기로 변기 중간의 과녁을 정확하게 맞추었다 싶었는데도 총점은 87점밖에 안 된다. 오줌발이 좀만 더 셌다면 90점을 넘겨 포인트를 적립받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대신 80점을 넘겨야 받을 수 있는 복분자주 할인 쿠폰을 받았다. 복분자주는 이제 질려서 이 쿠폰을 쓸 일이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몇 초 후에 양이 많았다고 보너스로 생수 무료 쿠폰도 수신됐다. 상영관에 돌아와보니 벌써 중간광고는 다 끝났는지 광대들 서넛이 쇼를 하며 비타민제를 팔고 있었다. 키다리 목발로 성큼성큼 돌아다니는 광대가 공짜로 나눠준 새콤한 알약을 쪽쪽 빨아먹고 나니 영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주인공이 아까 그 탄산음료를 빨아마시는 장면이 나오길래 설마 아직도 광고중인가 싶었는데, 주연급 악당도 등장하는 데다가 5분이 넘도록 상표나 로고송 없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영화가 다시 시작된 것이 맞는 듯하다. 악당들이 거의 다 죽어버리고 벌써 보스만 남았다. 표 고를 때부터 할리우드 편집판이 아니라 감독판을 선택했으니, 아마도 보스를 해치우는 싸구려 해피엔딩이 아니라 둘 다 죽어버린다거나, 알고 보니 보스와 주인공이 배다른 형제였다거나 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터이다. 취향이 싸구려인 바보들이나 편집판을 선택한다. 아니 솔직히 전에 보니까 편집판도 영화 자체는 괜찮은 편이긴 했다. 그런데 비타민제가 아니라 화장품을 파는 아가씨들이 반짝이 옷을 입고 화장솜을 나누어주는 걸 보고 나서 다시는 안 가보고 있다. 오늘은 액션영화니까 어쩌면 보험을 팔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이 낫지.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이 되었는데, 역시 악당과 주인공은 형제였다. 그것도 배다른 형제가 아니라 친형제였다는 반전에 약간 놀라고 말았다. 어렸을 때 헤어진 친형제라니,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을 걸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이어지는 회상 장면을 보니 어릴 땐 형제가 아니라 무려 남매였다는 반전이 또 숨어있었다. 걸작이 확실하다. 두 남매가 눈물을 흘리며 화해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고 배우들과 스탭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조연 여배우 이름이 궁금했는데, 실눈을 뜨고 봐도 확실하게 잘 안 보였다. 아마 저기 저 콜라병 뚜껑 모양 쯤에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을 테니 조연 여배우 이름은 병목쯤에 써있을 거다. 이따가 집에 가거든 확인해봐야겠다. 아직 이름이 다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자리를 뜨는 놈들이 있었다. 쯧쯧 뭐가 그리 급하다고. 아마 두번째 중간광고 시간에도 화장실에 가지 못한 머저리들이 틀림없다. 영화를 끝까지 봐야 각종 할인혜택이 커진다는 건 누구든지 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오는데 보름 안에 또 극장에 오면 각종 사은품을 증정한다는 쿠폰을 나눠줬다. 보름 안에 극장에 다시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까 주머니에 넣어뒀다. 근처 햄버거 가게에 가서 새우버거세트를 주문했다. 아까 비타민제를 사지는 않았지만, 그 전에 극장에 왔을 때 두 통 사두었던 덕분에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컵에 십자말 풀이 대신 콜라병이 그려진 걸 보니 반가웠다. 병목보다 조금 아래쯤에 깨알같이 써있는 조연 여배우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을 메모장에 입력하니 그녀가 찍은 모바일 화보집의 맛배기판이 자동으로 수신되었다. 한 장씩 보면서 새우버거를 한 입씩 먹었다. 사실은 여자였던 근육질의 주인공이 맛있게 마시던 음료수를 쭉 빨아먹다가 뭔가 전과 달라진 게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싶었는데 아뿔싸 음료수 빨대에도 뭔가가 써 있다. 음료 빨대에까지 광고를 찍어놓을 썩을놈들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사채업자다. 그 가느다란 빨대 측면을 따라 ‘신체 검사후 즉시 무담보 대출!’ 따위의 뻔뻔한 문구를 빽빽하게 써놓는 놈들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 중에 모바일 복권 긁는 재미에 빠져서 사채를 끌어다 쓴 놈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구상 어디로 끌려가서 광대 노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꽤 성실한 친구였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놈 이름이 뭐였더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아까 봤던 무가지를 들고 지하철에 타려니까 개찰구가 삑삑 거리면서 막힌다. 하는 수없이 되돌아 나가서 다른 걸로 다시 집어왔다. 만화 몇 개와 해외토픽을 좀 보고 나니 금방 집 앞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머리 둘 달린 거북이가 태어났다는데 사진을 보니 왠지 합성 같기도 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알고 보니 합성이었다는 기사가 또 실릴지도 모르겠다.

간밤에 (공짜) 새우버거와 (아마도 합성인) 머리 둘 달린 거북이가 (남매였던) 형제로 등장해서 (맛배기) 모바일 화보를 찍고 있었다. 나는 (이름 모를) 친구와 함께 (키다리) 광대 분장을 하고 (할인 받은) 복분자주를 원샷한 뒤, (반짝이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나눠주는) 화장솜 더미 위에 시원하게 오줌을 싸갈겼다. (새콤한) 비타민제를 먹었을 때처럼 오줌 색깔이 샛노랗다. 이번에야말로 100점이다! 100점이다! 그런데 쭉쭉 뻗어나가는 오줌 줄기를 따라 사채업자의 광고 문구가 빼곡히 써 있는 걸 보고 그만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고 말았다.

예술작품의 보존

0. 역사 선생은 올해 첫수업부터 지론인 사료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요즘은 니들 그냥 손가락 하나만 요래요래 까딱까딱-하면 원본에 아무런 손상 없이 웬만한 자료는 눈깜짝할 새에 복제가 가능한 시대야. 그쟈? 근데 이게 원래는 안 그랬어요.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소리와 영상을 복제하기는커녕 저장하는 기술조차 없었거든. 그나마 글과 그림 정도만 원시적인 방법으로 보존이 가능했어. 더군다나 그림은 잉크 발라 찍어내는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도 손수 베껴그리는 것 정도밖에 방법이 없어서 몇 단계만 복제해도 원화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지. 가장 정확한 편이었던 글조차 번역이나 표준 문법 어휘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인해 몇 세대만 거쳐도 오류 투성이 누더기가 되어버렸으니 말 다 했지 뭐. 중세에는 그나마 라틴어라는 기록 전문 언어를 사용하고, 관리가 잘 되는 교회의 수도사들만 이런 지식 전달 사업에 참여한 덕분에 이런 오류는 덜한 편이었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오류의 급격한 증가는 막을 수 없는 일이었어.”

고리타분한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언제나처럼 몇몇 아이들이 쓰러져 자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런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량으로 복제하는 거였걸랑. 이게 뭐냐믄 일단 막 복제하는 거야. 베끼고 또 베끼고, 막 베끼는 거야. 베낀 거 또 베끼고, 베낀 거 또 베끼고. 그렇게 베껴서 이 수도원 저 수도원에 복제본을 마구 일단 퍼뜨려놓고 나면, 나중에 서로서로 비교해보고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히 다수결의 원칙만 따라도 어느 정도 원본을 파악할 수 있게 되거든. 정리만 잘 하면 대체 누가 언제 몇번째 사본을 보고 베낀 건지 대충 추적도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고. 대표적인 텍스트가 바로 성경인데. 각각 조금씩 오류를 가졌지만 무수히 많은 사본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다른 서적에 비해 어느 정도 원본에 가깝게 복원해내기가 쉬웠던 거야.”

하기야, 지금이야 당시 대형 수도원 장서보다 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개목걸이에 달고 다니는 시대다. 중세까지 인류가 축적해왔던 모든 지식보다 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개개인이 매일매일 생성해내는 시대다. 애들한테 이런 얘기가 와닿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대량 복제는 말이 쉽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야. 요즘에야 거저 줘도 안 쓰지만, 그 옛날엔 우선 종이도 펜도 잉크값까지 매우 비쌌거든. 종이도 만들 줄 몰라서 양가죽 같은 데다 썼지. 그런데 이 중 무엇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싸구려를 쓰면 보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하루이틀 볼 거면 상관 없는데, 당시로선 십년 백년 천년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야. 내용을 이해하여 가능한 정확하게 필사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에 드는 비용도 컸어. 요즘으로 치면 우주비행사 하나 키우는 거랑 맞먹는다고 보면 돼. 왜 체력도 좋아야 하고 머리도 좋아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하잖아. 딱 그거야. 당시로선 최첨단의 인재들이었지. 그런데 이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면 복제의 정확성이 현저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었어. 디지탈 시대의 기술 복제는 단순히 복제를 기술적으로 쉽게 만들어 정확성을 증가시킨 것만이 아니라, 이 모든 비용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트려 바야흐로 대량 복제를 가능케 해준거야.”

역사 선생의 고리타분한 강의는 교실의 학생들이 또 전멸한 오늘도 꿋꿋하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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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시장에 기반한 경제체제는 이미 해체된 지 오래에요. 사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 없던 시절에나 주창하던 허울 좋은 슬로건이죠.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계획경제만한 것이 없어요. 문제는 초기의 계획 경제라는 것이 발상은 좋았는데, 처리해야 할 경제 규모에 비해 그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도구라고는 연필과 종이밖에 쓸 수 없던 시절이었던 지라, 그저 주먹구구식 돌려막기에 불과했다는 거에요. 사실 역사 시대를 통틀어 관료제 정부가 존재했던 나라 치고 어느 정도는 계획 경제 체제가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기도 하구요. 근현대에 이르러 국가 경제규모의 확장이 처리능력의 향상을 크게 앞질러 버렸던 것 뿐이죠. 생각해 보세요. 한 세기 전에 이미 증기기관과 내연기관 등으로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이 나라 저 나라와 온통 연계되어 일국의 경제규모는 커질대로 커졌어요. 이런 경제를 계획하는 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봤자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케인즈쯤 되는 천재들이 각 나라마다 수십 명씩 있었다면 모를까. 웬만한 대가리 아무리 모아봤자 별 거 안 되거든요. 여기를 건드리면 저기가 터져나오고, 저기를 건드리면 여기가 터져나오고. 터지면 메꾸고, 메꾸면 또 터지고. 그 꼴을 겪고 나니, 자유시장이 역시 최고라는 인식이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널리 퍼지게 된 거죠. 그런데 사실은 아니라는 거죠.”

이게 뭔 개소린가.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