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인간이 아니에요!

검사는 피고의 인간성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저것으로 인해 이백칠십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당했으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지금 피고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당장 해체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신체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고를 인간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체 보조기구 사용자 차별방지법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게다가 피고는 지금 군복무 시절 장착했던 군사용 부품들은 물론이고 탈영 후 불법으로 개조했던 부품들도 전부 의료용 표준 부품들로 교체하여, 더 이상은 보통 사람 평균 정도의 힘밖에는 쓰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날 수도 없고, 실탄을 발사할 수도 없으며, 방사능을 뿜어낼 수도 없는,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금속성이 번쩍거리는 두개골의 네 방향에 달린 눈-조리개를 보며 배심원들은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입 대신 스피커가 달려 있는 데다가 표정근은 물론 피부 조차 없는 얼굴인지라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저 금속 해골이 왠지 웃고 있는 것만 같아 꺼림칙해졌다. 도색조차 싸구려인 실리콘 재질의 전신 보조기구 위에 덩그라니 얹혀있는 이 금속성 머리통을 아무 것도 모른 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왠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의 범행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 기묘한 모습이 어째서인지 더욱 큰 공포심을 자아낼 뿐이었다.

“피고에게 달려있던 살상 무기들은 국가가 필요에 의해 달아줬던 것입니다. 이제 와서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같은 장비를 달고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현직 군인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변호인은 흥분하여 외쳤다. 그러나 검사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저것은 탈영 후 불법으로 장착한 방사능 무기 사용을 위해 자신의 두뇌까지도 컴퓨터 칩으로 교체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검사는 피고로 앉아있는 전직 군인-살인마-피고의 두뇌 회로 사진을 펼쳐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새로운 몸을 달기 직전 작동을 정지한 상태에서 금속 두개골을 열고 찍은 증거사진이었다.

“자신의 기억과 성격을 칩에 이식했을 때,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법원이 내릴 판결은 걸어다니는 살상 무기의 분해이지 인간의 사형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공방 끝에 판결문이 나왔다.

“… 이상 두뇌까지 무기물로 교체한 피고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바, 피고는 더 이상 피고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저 물건에 대하여 재조립이 불가능한 분해를 명하는 바입니다. 특히 두뇌 칩은 따로 꺼내어 물리적인 방법으로 파기할 것을 명령합니다.”

“판결에 이의 있습니다! 무기물 두뇌는 아직 논란 중에 있습니다! 사형은 이미 전세계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UN이 정한 세계 헌법에 위배됩니다!”
변호인이 극도로 흥분하여 쇳소리를 내며 외쳐댔다. 판결문이 나온 지금에 와서 이의 제기는 소용이 없다는 걸 머리 속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매달릴 것은 이제 이것-법원 속기 기록-밖에 남지 않았다. 판사는 엄중한 태도로 판결문의 요지를 반복하여 말했다.

“최초에 피고였던 저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바, 이것은 UN이 금한 사형이 아니라 분해일 뿐입니다. 이의는 기각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자동 폭파 장치 가동. 남은 시간 120초. 119초. 118초. 117초. 116초. 115초…”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달린 스피커로부터 기계음이 들려왔다. 뉴스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방청객들과 배심원들이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면서 출구 쪽으로 달려나갔다. 이 사상 최악의 흉악범, 아니 이 사상 최악의 흉물이 검사과정에서도 탐지되지 않는 자폭 장치를 머리 어딘가에 숨겨둔 모양이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니 개뿔 같은 소리!

“100초. 99초. 98초. 97초. 96초.”

기계음과 함께 네 개의 조리개가 1초에 한번씩 깜빡였다. 법정 건물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42초. 41초. 40초…”

이제 건물 전체가 비었다. 영문 모를 혼란을 틈타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불을 붙이고 있던 사기 용의자 한 명과, 막 뛰쳐나가고 있는 두 명의 경비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대피했다.

3분, 5분, 10분이 흘렀다. 기계음이 말했던 시간이 훨씬 지났다. 아무런 폭발음도 들리지 않았다. 자폭 카운트다운은 탈옥을 위한 흉물의 속임수였을까? 하지만 그가 새로 장착한 실리콘 몸으로 볼썽 사납게 뛰어나오는 장면은 목격되지 않았다. 불발된 것일까? 폭발의 규모가 작았던 걸까? 대피한 사람들은 저마다 온갖 가설들을 내세우며 웅성거렸다.

그리고, 30분 후 마침내 폭발물 제거반이 들어갔을 때, 그 흉물의 머리 뚜껑은 열려 있었고, 두뇌칩은 싸구려 실리콘 주먹 아래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사형 존치/폐지의 논리와 감정들

0.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거의 전세계적으로- 식인풍습이 없어졌습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일 겁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신분 차별이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아동에게 노동을 착취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종교/사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시대에 뒤쳐진 바보 멍청이라고 욕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이제야 인정할까말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최고로 큰 기업에서 노조를 못 만들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사형을 거의 폐지하다시피 했으면서도 되살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보 멍청이입니다.

1. 사형 폐지의 논리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

제가 파악하는 바, 사형 폐지론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쥐고 있을 수 있는 진리는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까지입니다. 굳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수를 죽여버리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공동체가 이루고자 하는 바-즉, 위험인물 격리, 범죄 감소, 살기 좋은 세상-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것까지가 사형 폐지의 핵심 논리입니다. 여기에 ‘위험인물 척살’ 같은 것을 은근슬쩍 끼워넣는 미꾸라지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말살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상쇄됩니다.
제게 사형수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경우를 들라면, 사형수가 감방 안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교도소 바깥으로 뇌파를 삐리삐리 마구 쏴대서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거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2. 사형 존치의 논리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사형제도의 창시, 존속 또는 부활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밝혀야만 할 것은, 사형을 폐지할만한 전적으로 논리적인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사형을 국가의 제도로서 유지시켜야 할 논리까지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135개국과, 그 중에서 지난 10년간 한 건의 사형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았던 우리 대한민국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명백한 거짓으로 밝혀진 주장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형 존치론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대한 논리적인 주장은, 사형 폐지론자들과 비슷한 형태의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정도입니다.

3. 사형 폐지의 감정 -지식, 지성, 도덕, 공감능력

그리하야 사실 전적으로 논리만 가지고는 사형의 무조건적 폐지라는 일견 극단적인 결론까지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절대로 죽이지 말자”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현대 인류 문명의 쾌거인 인권의 개념을 온몸으로 촉촉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 이전에 각자의 심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1)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권 개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거나, 2) 들어봤지만 머리가 나빠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거나, 3) 그 따위꺼 흥하고 콧방귀를 뀔 정도로 심성이 고약한 사람이라거나, 4) 인권 따위 자기와 상관 없는 문제라고 치부하는 독불장군이라면 “꼭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죽여버렸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얼마든지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사형의 폐지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그러니까 막판에는 1) 지식과 2) 지성과 3) 도덕과 4)공감능력의 문제이지,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적 근거에 수긍하더라도. 막판에 인권지식과 이해능력과 도덕감정과 공감의 능력을 통해 폐지라는 결론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나름의 엉뚱한 결론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분들이 바로 ‘논리적인 사형 존치론자’들의 실체입니다. 하긴 네 가지 중에 적어도 한두 가지 이상은 갖춰야만 하는 문제인지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기가 좀 미안하기는 합니다. 아직도 여성 참정권을 인정 못하고, 흑인이 인간임을 인정 못하는 심성을 가진 분들이 있듯이, 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이죠.

4. 사형 존치의 감정 -보복 감정, 정의감, 핑계, 공포감 그리고 타성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면 그냥 죽여버리자”는 주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통 보복 감정이나 불타는 정의감, 나름의 논리, 공포감 같은 것이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것도 없이 완전히 논리적으로 막바로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을 요즘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우선 보복 감정. 나쁜놈을 찢어죽이고 쳐죽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폐지론자인 저도 이해하는 바입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우리 개개인이 자비와 용서의 감정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국가도 그 감정을 그대로 반영해야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분들은 정말로 능지처참해야 할 놈들까지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훌륭한 국가라면, 우리 중 다수의 마음보다는 우리 중 훌륭한 분의 마음을 반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제 마음이 훌륭하지는 못해도, 훌륭한 분들의 마음과 행동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며, 그 본받음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제도를 통해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메소포타미아인이 아니고, 우리의 법은 더 이상 비석에 새겨두는 열 줄 짜리 메모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서 그 년/놈을 용서해주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년/놈의 죄를 봐주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 그 년/놈의 죽음만큼은 면해줄 정도로 우리가 훌륭해지는 겁니다.

정의감은 폐지론자라고 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존치론자들만의 미덕이 아닙니다. 폐지론자들도 범죄자들을 잡아서 심판해야 한다는 정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치론자들 중에는 세상에 자기들만 정의로운 줄 알고 폐지론자들을 무슨 범죄 옹호론자쯤으로로 몰아세우는 분들도 계신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정의감은 양측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존치론이냐 폐지론이냐는 이러한 정의감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타는 정의감은 존치론의 이유가 못됩니다.

가끔씩 보복 감정과 불타는 정의감 외에, “밥값 아깝다”는 이유를 경제 논리랍시고 들고 나오는 분들이 계신데, 굳이 논리라고 부르자면 논리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을 밥값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처럼 개화한 문명사회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받은 현대인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그럴듯한 핑계를 원하는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비슷한 핑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엔 심지어 “그 놈들은 사람이 아니니까”처럼 막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걸 논리랍시고 대는 사람들은 논리가 아니라 놀리는 거라고 봅니다.

제가 뭐라고 타박하기 가장 찜찜한 것이 공포감입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발 뻗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막연한 감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입니다. 그 조건에, 어떤 사람의 생사여부가 들어가게 될 경우 이 근원적인 공포는 적극적인 사형존치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분들께는 사형제도 폐지하자고 말하기가 정말로 미안합니다. 거미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거미는 익충이에요 하는 기분이고,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관람차 재미있어요 하는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막연하고 불합리한 공포를 국가처럼 큰 사회의 제도에까지 반영시킬 필연성이 없으며, 어떤 경우엔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해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사형을 폐지한 나라들에서 이런 분들이 집단 공황증세라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구요.

그러나 제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타성입니다. 이건 뭐 논리도 아니여 핑계도 아니여 그렇다고 무슨 감정의 표현도 아니여. 그냥 “아 몰라 하던대로 하지 귀찮게 뭘 바꿔.”, “그냥 대충 놔둬. 죽든 말든 뭔 상관이야.”, “뭐 나쁜 놈이라고? 그럼 죽으라 그래.”, “인권? 그게 뭥미. 몰라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아 귀찮아. 꺼져.”, “아 법 있는데 왜 집행을 안한대, 그냥 해, 왜 안 해.”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용량이 부족한 건지, 속도가 딸리는 건지. 도통 답이 없어요.

5. 가야 할 길

우리 모두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연쇄살인마도 있지만, 우리 중에 예수와 부처도 있다면, 우리가 어느 쪽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들의 공동체를 이끄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보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답을 찾아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형폐지론은 무슨 시대를 앞서나가는 새로운 주장이라거나,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변적이고 이상적인 몽상 따위가 아닙니다. 이미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나라에서,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10년 동안 입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발자국을 찍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앞서 갔고, 우리 앞에는 꽤 훌륭한 길이 나 있습니다. 그냥 터벅터벅 따라가기만 해도 됩니다. 편하지 않습니까? 그런 길들 중에는, 아직 먼저 간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좀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직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 폐지라는 잘 닦인 길을 향해 우리는 이미 몇 걸음 뗐습니다. 거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국제 앰네스티 사형 QnA

사형

질문과 답변들

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사형에 반대하나요?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은 범죄의 속성, 범죄자의 성향, 아니면 수감자를 죽이기 위해 국가에 의해 사용되는 방법에 상관없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사형에 반대합니다. 사형은 인권에 대한 궁극적인 부정입니다. 그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행해지는, 계획적이고 냉혈한 인간 살해입니다. 그것은 세계인권선언에서 주장된 생명권을 위반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며 굴욕적인 형벌입니다.

고문이나 잔인하게 다루는 것에는 어떠한 정당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고문과 마찬가지로, 사형은 개인에 대한 극단적인 신체적 정신적 공격으로 구성됩니다. 인간을 살해하는 행위로 인해 유발되는 신체적 고통은 정량화될 수 없으며, 국가의 손에 의한 죽음을 미리 아는 것으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형은 차별적이며 때로는 가난한 자들, 소수자들, 그리고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공동체에 대하여 불균등하게 사용됩니다. 그것은 자의적으로 부과되고 집행됩니다.

매년 발생하는 수천 건의 살인으로부터 “최악 중의 최악”인 범죄들과 공격자들을 골라내려는 국가의 시도들은 불가피하게 비일관성과 오류로 이어지는데, 이는 차별, 검찰 실수, 부적절한 법 해석으로 인해 악화되는 빠져나올 수 없는 결함들입니다. 인간 판사가 오류를 피할 수 없는 만큼, 무고한 자를 처형하게 될 위험 역시 절대로 제거되지 못합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무조건적인 전세계적 사형 폐지를 계속적으로 요구합니다.

사형을 끝낸다는 것은, 그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치들과 일관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공공정책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취소될 수 없는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공공의 손실이 큽니다. 사형이 특별한 억지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 보여진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갱생과 화해의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그것은 복잡한 인간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전략을 알려줄 수도 있었을 설명을 추구하기보다는, 단순한 반응을 촉진합니다. 그것은 살인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연장시키며, 그 고통을 비난받는 수감자의 친지들에게로 확장시킵니다. 폭력범죄에 맞서는 데나, 폭력 범죄에 영향받은 사람들을 돕는 데에 쓰일 수도 있을 자원과 에너지를 딴 데로 돌립니다. 그것은 폭력 문화의 증상이지, 해결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것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사형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 앰네스트 인터내셔널은 폭력 범죄 희생자와 그 친지들에게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닌지요?

사형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결코 사형을 선고받은 범죄들을 과소평과한다거나 용서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다수의 나라들이 현재 폭력범죄의 옹호자들이 되는 셈일 텐데, 이는 분명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욕보인 인권 희생자들과 깊이 관련된 하나의 기구로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살인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업신여기고자 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커다란 동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 고유의 최종성과 잔인성은 오늘날 문명화된 행동 규범과 양립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은 폭력범죄에 대한 적절치 못하고 용납될 수 없는 반응입니다.

정부에 의한 사형은 반대 목소리를 금지하기 위한 것인가요?

사형은 정적들을 영원히 침묵하게 하거나,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개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치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어왔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형을 억압의 도구로서 그토록 유혹적이게 만드는 것은 그것의 돌이킬 수 없다는 속성입니다. 수천 명이 정부에 의해 사형 당하고는, 권력을 쥔 새 정부에 의해 무죄로 인식됩니다. 사형이 처벌의 적법한 형태로 수용되는 한, 정치적 오용의 가능성은 남을 것입니다. 폐지만이 그러한 사형의 정치적 남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장해줄 수 있습니다.

국제법은 사형의 사용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이차 세계대전 동안 목격된 국가의 잔혹성과 공포의 어이 없는 확산에 응답하여 1948년 UN 총회에 의해 받아들여진) 세계 인권 선언에서는 각 사람의 생명권(3조항)을 승인하고, “아무도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혹은 모욕적인 취급이나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5조항)고 정언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형은 이러한 권리들을 침범합니다.

사형을 폐지하기 위한 국제적 지역적 조약들에 의해 또 다른 지지들로도 뒷받침됩니다.

  1. The Second Optional Protocol to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aiming at the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adopted by the UN General Assembly in 1989, provides for the total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but allows states parties to retain the death penalty in time of war if they make a reservation to that effect at the time of ratifying or acceding to the Protocol.

  2. Protocol No. 6 to the European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concerning the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adopted by the Council of Europe in 1982, provides for the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in peacetime; states parties may retain the death penalty for crimes “in time of war or of imminent threat of war”.

  3. The Protocol to the Americ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to Abolish the Death Penalty, adopted by the General Assembly of the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in 1990, provides for the total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but allows states parties to retain the death penalty in wartime if they make a reservation to that effect at the time of ratifying or acceding to the Protocol.

  4. Protocol No. 13 to the European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adopted by the Council of Europe in 2002, provides for the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in all circumstances, including time of war or of imminent threat of war. Any state party to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can become a party to the Protocol.

[사형에 관한 상기 조약들을 승인한 국가들의 최신 목록은 앰네스티 인터네셔널 웹사이트www.amnesty.org의 사형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제 사법 재판소는 1998년에, 학살이나 전쟁법 위반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들처럼 극단적으로 중한 범죄들에 대한 사법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재판소가 부과할 수 있도록 용인된 처벌 형태로부터 사형을 제외시켰습니다.

비슷하게, 1993년과 1994년 전 유고슬라비아 국제 범죄 심판위원회와 르완다 국제 범죄 심판위원회를 만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러한 범죄들에 대한 처벌로서 사형을 제외시켰습니다. the Special Court of Sierra Leone, the Special Panels in Dili, East Timor 그리고 the legislation establishing the Extraordinary Chambers for Cambodia에서도 그런 범죄들에 대하여 역시 사형은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국가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때가 있지 않나요?

어떤 경우에는 국가 공무원에 의해 생명을 빼앗는 것이 자기 방어 논리로 정당화될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전쟁중이라거나, 경찰 공무원이 자신이나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행동해야만 할 때 등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치명적인 무력의 사용은 남용을 막기 위해 국제적으로 수용되는 법적 보호책들로 둘러싸입니다. 이러한 무력 사용은 남에 의해 사용된 힘으로부터 야기되는 즉각적인 피해에 맞서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형은 즉각적인 생명 위협에 대한 자기 방어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덜 가혹한 수단들을 통해서도 다뤄질 수 있는 수감자에 대한 계획적인 살해입니다.

사형이 국가가 범죄와 싸우기 위해서 중요한 도구라는 논증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건가요?

너무도 많은 정부들이 급박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몇 명 또는 수백 명의 수감자들을 처형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형은 사회에 더한 안전이 아니라 더한 잔혹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너무도 많은 나라들의 너무도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과학적 연구들은 사형이 다른 처벌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범죄를 방지한다는 확증을 찾는 데에 지속적으로 실패했습니다. 1988년에 UN을 위해 수행되어 1996년과 2002년에 갱신된, 사형과 살인율간의 관계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 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조사는 처형이 종신형보다 큰 억제 효과를 가진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한 증거는 앞으로도 나올 것 같지 않다. 전반적인 증거들이 억제 가설에 긍정적 지지를 보태주지 않고 있다.”

폐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범죄 수치는 폐지가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보이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는, 인구 10만당 살인율이 살인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 해인 1975년 3.09라는 꼭지점에서 떨어져서, 1980년에는 2.41이 되었고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폐지 후 27년째인 2003년에는, 인구 10만당 살인율은 1975년보다 44퍼센트 낮아진 1.73이며 지난 삼십년 중 최저치입니다. 2005년에는 이 수치가 다시 2.0으로 증가했지만, 이 수치는 사형제가 폐지되었을 때보다 여전히 3분의 1 이상 낮습니다.

살인 같은 중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이성적인 결과 계산 후에 그런다고 가정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살인은 종종 감정이 이성을 누를 때나 약물과 알콜의 영향 하에 이루어집니다. 폭력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사람들은 매우 불안정하거나 정신적으로 병이 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1997년 이래로 사형을 언도 받은 미국의 수감자들 중 적어도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그들의 사형선고, 그 이유와 함축하는 바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중 어떤 경우도 사형에 대한 공포가 억제력을 가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계획적인 연쇄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잡히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계속하기로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억제의 열쇠는 발견과 체포 그리고 유죄 판결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사형이 고유의 억제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형에 대한 공공정책의 기반으로서 억제가설에 의존하는 것이 무익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형은 가혹한 처벌이지만, 범죄에 대하여 가혹한 것이 아닙니다.

재범을 막기 위해서 어떤 수감자들을 처형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나요?

수감자들이 다시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서 사형은 잔인한 수단입니다. 그 본질상, 사형은 이미 수감되어 사회로부터 제거된 죄수에게만 집행될 수 있습니다. 그 수감자가 사회에 대한 폭력행위를 더 이상 저지를 수가 없기 때문에, 사형은 보호 방법으로서 필요하지 않습니다.

수감과 달리, 사형은 절대로 교정될 수 없는 사법 오류를 수반합니다. 무고한 수감자가 처형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형은 애초에 저지르지도 않았던 범죄를 반복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사형당한 자들이 선고받은 범죄를 다시 저질렀을 지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사형이란, 많은 경우 일어나지도 않았을 가설적인 미래의 범죄를 막기 위해 수감자들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범죄자의 교화 원칙을 부정합니다.

가두는 것만으로는 풀려났을 때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관점에서 가석방 절차를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사형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그에 대한 답이 확실히 아닙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확실히 죽어 마땅하지 않나요?

살인을 책망하기 위해 사형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에 의한 그러한 행위는, 피해자에게 신체적 폭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범죄자의 바램의 거울상입니다. 부가적으로, 모든 범죄 사법 체계는 차별과 오류에 취약합니다. 어떠한 시스템도 공정하고 일관적이며 오류 없이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야 하는지 결정할 능력이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편의적이고 임의적인 결정과 우세한 공중 의견이 최초 체포로부터 최후의 결정까지 소송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인권의 핵심은 그것이 양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권은 각자의 지위, 민족, 종교나 출신지에 상관없이 개개인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집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누구로부터도 빼앗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권은 우리 중 최고의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인권이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인권은 우리를 우리로부터 구해줍니다.

덧붙여서, 언제 사형이 사용되더라도, 비슷하거나 더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는 살해될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이 보여줍니다. 처형된 수감자들은 필연적으로 가장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가난해서 자신들을 변호해줄 노련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는 이들이거나, 비교적 잔혹한 검사와 판사를 만나게 된 사람들기도 합니다.

테러리즘이나 정치 폭력 행위를 막기 위해 사형이 필요하지는 않나요?

테터리즘과 정치 범죄에 싸울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사형 집행이 그러한 행위를 멈추기보다는 늘리는 경향이 있다고 반복적으로 지적해왔습니다. 처형은 그에 대한 기억이 자기 집단의 전환점이 되는 순교자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믿는 바를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남녀에게-자살 폭탄 테러의 예에서처럼- 사형 집행의 가망은 범죄를 억제하기는커녕 동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국가의 사형 이용은 무장 적대 그룹에 의해서도 복수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되어 왔으며, 폭력의 순환을 지속시킵니다.

수감자를 오랜 기간 혹은 평생 가둬두는 것이 그 개인을 처형하는 것보다 오히려 잔인하지 않나요?

수감자가 살아있는 한, 그 또는 그녀는 사회복귀의 희망이나 나중에 무죄가 입증되어 면죄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형 집행은 사법 오류의 배상 또는 범죄자의 갱생 가능성을 제거합니다.

사형은 수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건들을 함축하는 독특한 형태의 처벌입니다. 즉, 처형 자체의 잔인함, 그리고 (때로는 몇 년 동안) 예정된 집행을 응시하며 죽음의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잔인함이 그것입니다.

극형에 대한 전세계적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것이 실제로는 서양이 “우리들에게 문화적 가치를 부과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실 건가요?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 기반한 인권 담론의 다양성을 환영하며 다양한 비전들이 우리의 인권 이해에 기여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앰네스티는 인권이란 보편적이며 불가분하며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인권이 종종 서양의 맥락에서 발달했더라도, 그것들은 내용상 서양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전통으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을, UN의 모든 회원국들이 따르기로 동의한 기준으로서 주지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 극형의 사용을 포기한 많은 국가들이 나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형의 폐지는 세계 사회의 한 구역에서만 옹호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형에 반대함으로써,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은연중에 그것을 허용하는 주류 세계 종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요?

주류 세계 종교들은 그 가르침에 있어서 자비, 동정, 용서를 강조합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모든 처형의 중지를 외치는 것은 이러한 가르침과 일관됩니다.

모든 종교의 교파들이 사형의 사용을 계속하는 세계 각지의 국가들에서 발견됩니다.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세계 각지의 국가들에서도 종교 경계선을 넘나들며 발견됩니다. 사형은 어떤 특정 종교에도 배타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사형의 폐지를 어떤 특정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의 캠페인을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은 국제 인권에 관한 일에 기반을 두는, 민족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비정치적인 기구입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전세계 회원들은 전지구에 걸쳐 온갖 종교로부터 나옵니다.

공중의견의 다수가 사형을 선호한다면 어떻게 국가가 그것을 폐지할 수 있나요?

대중이 사형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복잡하고 사실적 기반이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형의 현실과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대중들이 완전한 정보를 제공받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폐지를 수용하길 더 바라게 될 것입니다.

종종 사형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여론조사 결과는, 대중의 의견의 복잡성과,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국가 내 범죄 상황, 그 원인과 대처 수단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형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매우 자주, 그것이 범죄에 맞서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압도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실 범죄를 줄이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정치가들이 범죄에 맞서는 수단으로 사형제를 옹호하면, 대중은 그것이 문제에 대처하게 되리라 믿고 요청할 것입니다. 사형을 통한 인권 남용에 호소하지 않고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입니다.

정보를 제공받은 대중의 의견은 교육과 도덕적 리더쉽에 의해 형성됩니다. 정부들은 대중의 의견을 인권과 범죄정책에 관한 것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사형을 폐지하자는 결정이 정부와 입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러한 결정은 사실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대중이 사형을 선호하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이 폐지되더라도 보통 대중으로부터 큰 항의는 없으며 거의 항상 폐지된 채로 남게 됩니다.

대중의 다수가 요구한다고 해서 악명높은 수감자를 고문하거나 인기없는 소수민족을 박해하는 것으로부터 정부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노예제는 한때 합법적이었고 널리 수용되었습니다. 노예제의 폐지는 도덕적 기반 위에서 그것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다년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형제 폐지를 위한 싸움이 이기고 있다는 어떤 기미가 있나요?

지난 세기의 전환기에는 오직 세 국가만이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었습니다. 오늘날, 21세기를 열어가면서, 세계 3분의 2의 국가들이 법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했습니다. 사실상 지난 십 년간 한 해 평균 세 나라가 법적으로 사형을 폐지했거나, 일반 범죄에 대하여 폐지하고 있다가 모든 범죄에 대하여 폐지했습니다. 게다가, 한번 폐지되고 나면, 사형은 거의 재도입되지 않습니다.

[폐지국과 존치국의 최신 목록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웹사이트 http://www.amnesty.org의 사형 페이지에서 제공됩니다.]

다른 기미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유럽이 사형 없는 지역으로 출현한 것과, 뒤이어 전세계적 폐지를 추진하는 역할을 발달시킨 것.

아프리카 대륙은 대체로 처형이 없으며, 오직 여섯 지역의 53개국만이 2006년에 국가 살인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짐.

미합중국은 천천히 극형으로부터 돌아서고 있음. 치사 주사 절차에 관련된 법적 난제들과 우려들 때문에 2006년에 많은 주에서 사형집행이 사실상 보류되었음.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사형에 대한 강력한 대중적 지원이 있어서, 거의 40에 달하는 지역 정부와 40,000 명 이상이 모라토리엄 청원서에 서명했음. 뉴욕 주에서는, 2004년 주의 고등법원이 주의 사형 법령에 위헌 판결을 내렸음. 2007년 초까지, 이 법은 번복되지 않았음. 뉴저지 주에서는 2006년, 입법부가 모라토리엄을 부과하고, 주 내의 사형에 관련된 모든 측면을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립했음. 2007년 1월의 최종 보고서에서, 그 위원회는 사형의 폐지를 추천했음.

사형에 반대하는 세 차례의 세계 회의 개최, 사형에 반대하는 세계 연합의 창설, 아시아의 반 사형 행동 네트워크(ADPAN) 같은 국제적 연합들의 형성 등으로써 보여지는 바와 같이, 폐지론 기구들 사이에 늘어나는 소통과 협동.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국가들에 의해, 구속력 있는 폐지 위원회들의 도입과 비준을 포함하는) 국제 표준의 급증, UN 조직들의 행동, 그리고 국제 법정과 조약 관리 주체들의 결정들과 추천들.

이러한 경향은 사형을 대체할 효율적이면서도, 정의의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행해지는 계획적이고 냉혈한 인간 살해와는 무관한 처벌들이 있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치사 주사lethal injection는 사람을 죽이는 가장 고통 없고 인도적인 방법인가요?

치사 주사의 사용에 있어서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과테말라에서 1998년 2월 10일 있었던 첫번째 치사 주사 처형 때, 마누엘 마르띠네즈 꼬로나도Manuel Martínez Coronado에게 치사 주사를 집행해야 했던 사람들이 (보고에 따르면 부분적으로 수감자의 아내와 아이들이 흐느끼는 괴로운 소리로 인해) 명백히 너무도 신경이 과민해져서, 독을 전달할 선을 붙이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후 형 집행 중 정전으로 인해 독의 흐름이 멈췄고 수감자가 죽는 데엔 18분이 걸렸습니다. 그 모든 시련이 국가 텔레비전에 생방송으로 방송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정맥 주사 마약 사용으로 인해 수감자의 핏줄 상태가 나빠져서 생기는 문제들 때문에, 많은 수의 치사 주사 처형이 망쳐졌습니다.

1979년에 저지른 살인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은 푸에르토 리코 원주민 앙겔 니에베스 디아즈Angel Nieves Diaz는, 2006년 12월 13일 치사 주사로 죽는 데 34분이 걸렸습니다. 신원을 감추기 위해 얼굴에 두건을 뒤집어쓴 의사가 앙겔 디아즈가 죽었다고 신호하기 전에 약을 일회분 더 주사해야 했습니다.

최후까지 무죄를 주장했던 앙겔 디아즈에게 불리한 법정 증언을 했던 주요 검찰측 증인이 증언을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은 계속되었습니다. 형이 집행되기 겨우 약 한 시간 쯤 전에, 플로리다 치사 주사 절차의 합헌 문제와 함께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던 앙겔 디아즈의 최후 진술을 대법원은 거절했습니다.

2006 년 12월 15일에,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Jeb Bush는, 집행을 중지하고 치사 주사에 의한 죽음이, 잔인하고 이례적인 처벌에 대한 플로리다의 금지령을 위반하는지 평가할 조사단을 임명했습니다. 조사단이 2007년 3월에 결과를 보고할 때까지 사형 집행 영장들은 더 이상 서명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미국의 주들도 비슷하게 자기들의 치사 주사 프로토콜을 검사함으로써, 이 표면적으로 “인도적인” 방법이 다른 방법들보다 덜 잔인하거나 고통을 덜 주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미합중국은 치사 주사에 의한 처형을 거의 30년 전에 도입하여, 1982년에 그것을 최초로 적용시켰습니다. 그 이후, 거의 900에 달하는 수감자들이 미국에서 이 방법으로 살해되었으며, 다른 대체 방법들-전기 의자, 교수형, 가스, 총살을 거의 교체해왔습니다. 미국 법에 도입된 이후 거의 20년 동안, 치사 주사는 중국, 과테말라, 필리핀(필리핀은 2006년 6월 사형을 폐지했지만.), 대만, 그리고 태국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치사 주사는 다른 형태의 처형이 야기하는 많은 불쾌한 결과들-단두시의 신체적 훼손과 출혈, 감전시의 살 타는 냄새, 가스로 죽이거나 교수형시의 보기 안 좋은 장면들/소리들, 불수의적인 배변과 배뇨-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사 주사는 국가를 위해 의료인을 관련시킴으로써, 의료 윤리의 오랜 원칙들을 훼손시켜야 한다는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어떤 형태의 처형이든 비인도적입니다. 알려진 모든 방법들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고유의 불쾌한 특성을 갖습니다. 더군다나 사형은 수감자가 감방에서 끌려나와 죽임을 당할 때까지의 잠깐 동안에 관한 것이 아니며, 그나 그녀가 선고 받은 순간부터 무의식과 죽음의 순간에 이를 데까지 수감자는 죽음의 형벌을 머리 속에 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인도적인” 방법을 찾으려는 탐색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해를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인도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정부에게,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살해를 집행해야 할 대중에게, 처형을 보다 입맛에 맞게 맞추려는 탐색입니다.

이것과 다른 주제들에 관한 우리들의 광범위한 자료들을 http://www.amnesty.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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