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채식주의
인간 식성의 디폴트는 잡식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고기를 즐겨 먹어왔고, 60억 현생 인류도 모두 잡식의 소화 기관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이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오래도록 먹어왔으며, 심지어는 대체로 고기를 아주 맛있어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라는 얘기이다. 적어도 완전한 채식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채식주의자는 그런 노력을 들일 당위성이 있다는 것을 설득해 내야 한다. 게다가 종자에 단백질을 저장하는 콩과 식물의 진화라는 대단한 우연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채식은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훨씬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채식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면 전환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안 먹어도 된다면 먹지 말자는 주장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텐데- 국가의 제도로서 존재하는 사형과는 다르게, 채식 자체는 사회 제도로서가 아니라 각자 따로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랫 동안 불교 승려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도구 아닌 목적으로서의 동물 권리 같은 것이 인정되지 않는 한, ‘안 먹어도 된다면 먹지 말자는 채식주의’는 그저 일정 지분을 차지해내는 것이 실질적/궁극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겠다.

내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육식에 반대하려면, 아예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동물을 식용 같은 도구적 목적으로 키우지조차 말자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 동물의 권리이다. 즉, 동물도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살아야 하는 귀한 생명이며, 식용이라던가 모피 같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공감이 그것이다.

종차별주의

피터 싱어는 이러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애완동물이나 고등동물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감하며 식용 동물을 예외로 삼는다던가 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와 마찬가지 의미에서, 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있다. (참고로 나는 고등동물 종차별주의자임;;; 구체적으로는 대충 야생 설치류를 확실히 제외시키고 중대형 포유류를 전부 포함시키는…)

흠, 짚고 넘어갈 것이, 동물의 권리는 대변되는 권리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물 권리의 수호를 위해서는 동물 권리에 관심을 가지는 인간 대변자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건 동물뿐만 아니라, 너무 어리거나 늙었거나 가난하거나 멍청하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사회적 약자인 인간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현대 문명의 필수 기능 중 하나가 아니던가. (동물을 포함하여) 약자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까, 관심 가진 인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할까? 기능적으로야 후자가 중요하겠지만, 당위성의 문제에서는 전자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대변자에 의해 대변될 수만 있는 권리라면, 그 선도 좀 확실히 그어둘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달팽이도 우리의 친구지예-” 하는 말이 재미있기는 해도, 과연 달팽이가 개와 똑같은 의미에서 친구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개와 달팽이가 스스로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개 쪽이 훨씬 더 할 말이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도 개의 권리를 더 강력하게 대변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나는 품게 된다. 그렇다면, 개의 권리를 더욱 강력하게 대변해주는 것이 달팽이에 대한 더러운 종차별주의일까?

그런데 여기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이 쾌고 감수 능력만을 도덕적 근거로 삼는 공리주의이다. 고통은 나쁜 것, 모든 고통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식이다. 거기에 동의하더라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선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 도마뱀은 신체 절단 영화를 보면서 일상의 단조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모든 동물의 고통을 차별없이 동일하게 보는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는 공리주의라기보다는 차라리 부처의 불살생 자비심에 가깝지 않나 싶다.

고기되기 vs 고자되기
개체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 과연 쾌락과 고통뿐일까? 가장 먼저 “번식” 문제가 떠오르는데- 사육 동물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씨암탉과 종마 등등, 번식의 기회가 인위적으로 극소수의 개체에게만 집중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또한 소위 “중성화”된 애완동물은 움직이는 완구하고 뭐가 다른가. 동물들의 고통만큼이나 번식 사정을 고려해주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동물권을 인정한다면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도 자유로운 교미를 가능케 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동물이라면 (자체 검열 생략…)
수단과 목적

피터 싱어의 책, 『동물 해방』은 다이어트용이라고 광고했으면 잘 팔렸을 듯… 읽고 나면 (특히 고기에 대한) 식욕이 뚝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 내용이 좀 낡기는 했어도- 포인트는 훌륭하게 잘 잡고 있고, 조금 오바하는 감은 있어도-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이기도 하므로, 추천 도서.

내 생각에 이 책의 포인트는 이거다. “우리가 정말로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동물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냥 추상적인 표현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닭장 안에 좀 더 많은 닭을 쑤셔넣음으로써, 닭들이 낑겨죽어나가는 비율이 크게 늘어나더라도, 살아남은 닭의 전체 숫자가 늘어남으로써, 총 판매 수익이 최적이 되는 밀도를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먹여봤자 소화관만 꽉 채워줄 뿐 판매할 고기의 양을 늘리지 못하는 낭비를 피하기 위해 도살되기 전의 동물을 쫄쫄 굶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각종 마루타 실험을 인간 대신 쥐, 개, 침팬지에게 마음껏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 새뮤엘 버틀러는 “암탉은 계란이 또 다른 계란을 만드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A hen is only an egg’s way of making another egg)”라고 쓴 바 있다. 물론 버틀러는 자신이 우스갯소리를 하였다고 생각했다. 그 후 프래드 C. 할리(그는 225,000마리의 산란닭을 관리하는 조지아 가금 공장의 공장장이었다.)가 암탉을 “계란 생산 기계”라고 묘사하였는데, 이 때부터 그의 말은 더욱 심각한 내용을 함축하게 된다. 할리는 사무적인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 그 말에 덧붙여 “계란 생산의 목적은 돈벌이다. 이 목적을 잊는다면 계란 생산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잊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영국 영농 잡지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늘날의 산란닭은 결국 매우 능률적인 전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즉 암탉은 낮은 유지 조건으로 원료(사료)를 최종 생산물(계란)로 바꾸는 기계에 불과하다.
-피터싱어. 동물해방. 191쪽.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읽었던 커트 보네거트의 “챔피언의 아침 식사(breakfast of champions)”라는 소설에서 읽었던 비슷한 대목이 기억나서 검색해봤다.

“Your parents were fighting machines and self-pitying machines. Your mother was programmed to bawl out your father for being a defective money-making machine, and your father was programmed to bawl her out for being a defective housekeeping machine. They were programmed to bawl each other out for being defective loving machines.
“Then your father was programmed to stomp out of the house and slam the door. This automatically turned your mother into a weeping machine. And your father would go down to a tavern where he would get drunk with some other drinking machines. Then all the drinking machines would go to a whorehouse and rent fucking machines. And then your father would drag himself home to become an apologizing machine. And your mother would become a very slow forgiving machine.”

누군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는 대충 이런 것이다.

극히 최근에서야 우리는 인간을 수단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이상을 사회 제도 속에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구현해냈다. 이제 동물들도 생각해줘야 할 때가 아닐까?
사람답게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줘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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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의 기억

내용은 흥미로웠다. 초파리 얘기만 많이 들어봤지, 실제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ebs 교양 프로 한 편 본 느낌. 중간중간 삽화나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

지난번, 핀치의 부리 에서, 인용들이 어째 나중에 끼워넣은 것처럼 따로노는 듯 싶다 그랬는데, 이 책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글을 쓰다가 관련있는 듯한 내용이 마구마구 떠오르고, 그걸 또 그때그때 전부 써버리는 것이 조너선 와이너라는 작가의 스타일인 듯. 읽는 사람이 익숙해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다. 나는 별로였지만.

읽다가 마음에 걸린 부분들을 (오탈자는 빼고) 대충 기록해봤음. 대부분이 번역서의 문제였고, 독서를 방해할 정도로 심하다 싶은 문제들도 종종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상당 부분이 번역자 자신보다도 출판사측의 부실한 검토 문제인 듯. 책에 써있는 출판사 홈페이지(www.eclio.co.kr)에 글을 남길까 했는데, 마땅히 남길 곳도 없기에 걍 이 밑에 달아둔다. (사실 이 책을 출판했었다는 사실을 찾을 수도 없었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 대해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자식이 부모의 발가락을 닮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쪽. 감수자 최재천의 추천사.

내가 김동인의 소설 내용을 잘못 알고 있던 건가? 자식이 부모의 발가락을 닮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사람 발가락이 다 거기서 거기 대충 똑같이 생긴 건데, 그런 발가락을 보고 자기랑 닮았다며 위안을 얻는, 오쟁이진 남자 얘기 아니었나. 흠. 누가 자기랑 미남/미녀 배우가 닮았다고 그러면 “그래.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인 것이 닮았다.”며 놀리듯이.
그나저나 최재천 교수의 글은, 읽을 때 어딘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 느낌의 원천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는 연단 위의 교장선생님을 연상케 한다.

갓 태어난 거위 새끼는 하늘을 나는 새의 그림자를 보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어미 거위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매로 인식한다.어미 거위의 그림자를 보고는 겁을 먹지 않지만 매의 그림자가 싶으면 재빨리 달아난다.
27-28쪽.

목이 길고 꼬리쪽이 짧은 어미 거위, 목은 짧고 상대적으로 꼬리쪽이 긴 매, 따라서 대충 뭐 이렇게 –x- (x는 날개) 생긴 그림자 그림 한 장이라도 넣어줬어야지. 그냥 왼쪽 오른쪽이라고 말로만 설명해버리면 어쩌자는 거임? 나야 딴데서 이 얘기를 그림과 함께 본 적이 있어서 무슨 얘긴지 대충 알아들었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뭥미 했을 듯. 작가에게, 그림 안넣고 글로만 묘사하는 데에 무슨 강박이 있나 싶음.

기원후 2세기 그리스의 의학자 갈렌(…)
33쪽.

별거 아닌데, 갈렌->갈레노스라고 써야 하지 않을까.

그 비밀을 품고 있는 ‘본성’과 양육’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셰익스피어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1612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 『폭풍우 The Tempest』에서 프로스페로(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작가 자신과 가까운 인물. 모든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의 원형)는 자신의 양자 칼리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악마놈, 그놈은 악마야. 타고난 악마.
아무리 가르쳐도 그놈의 천성은 고칠 수 없단 말야.

34-35쪽.

이건 명백히 번역자의 잘못. 바로 앞에 ‘본성’과 양육’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서의 셰익스피어 얘기를 하고 나서 등장하는 인용문인데, 정작 인용된 내용 속에는 본성이나 양육이라는 말이 한 마디도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돼? 앙? 내가 아무래도 너무 이상해서 구글로 막 스펠링도 어려운 셰익스피어를 영어로 쳐넣는 고생 끝에 직접 원문을 찾아봤어. “A devil, a born devil, on whose nature Nurture can never stick”이라고 나오네. “악마, 타고난 악마, 그 본성에, 양육이 도통 안 먹히는 놈” 뭐 이런 얘기인 것 같아. 물론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은 이렇게 어거지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전문 문학번역자의 번역을 찾아옮기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단어의 유래를 설명하기 위한 인용의 경우엔 최소한 원문을 같이 실어주기라도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읽는 사람 벙찌잖아. 그렇다고 어떤 번역본을 인용했는지 밝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더블 벙찜…

선승(참선하고 있는 중-역주)
71쪽.

역주에 약간 의문. 선불교 승려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선승(참선하고 있는 중-역주)”라고 하기보다는. 음.

길게 꼬인 분자 사슬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에 천문학자들 눈에 비친 행성의 모습이나 20세기 초반 물리학자들이 바라보던 원자의 모습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손댈 수도 없는 작은 점일 뿐이었다.
73쪽.

현미경으로 행성 보신 적 있으세요? 본 적 없으면 말도 하지 마세요.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다윈은 런던동물원에서의 실험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나는 런던동물원의 아프리카산 큰 독사 앞에 있는 두꺼운 유리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뱀이 갑자기 달려들어도 절대 놀라서 뒤로 물러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습격에 내 결심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뒤로 펄쩍 물러났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와 이성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위험을 상상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14~115쪽.

이건 문제점이 아니라, 나 자신이 했던 비슷한 짓이 떠올라서 재미있길래 기록해둠.
https://intherye.wordpress.com/2006/03/31/injection/
다윈이랑 같은 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ㅋㅋㅋ

어느 날 교수회의에서 윌슨이 생태학자를 한 명 더 채용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윌슨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신이 나갔답니까?”/”무슨 뜻입니까?”/”생태학자를 채용하려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18쪽.

둘 중 하나(아마도 후자)는 왓슨일텐데. 번역하면서 둘 다 윌슨으로 써버리는 실수를 한 듯. 혼자 정신 나간 듯이 자문자답하는 꼴이 됐다.

그는 한 식물학자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꽃의 속명을 지었다는 사실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 (“더구나 그 꽃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자신의 자서전 『내 인생의 추억 Memories of My Life』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우생학에 대한 간단한 설명 몇 줄과 함께 ‘갈토니아 칸디칸스’의 그림을 조그맣게 삽입했다.
131쪽.

여기서 “그”는 골턴. 역자는 인명과 학명을 한글로 옮길 때 골턴Galton과 갈토니아Galtonia와의 연관성을 좀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암수가 한 몸인 이 초파리는 그리스어 ‘여성gyne’과 ‘남성andr’을 따서 ‘자웅모자이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174쪽.

‘여성gyne’+남성andr’ = ‘자웅모자이크’ -_- 이 역시 원문 병기가 필요한 부분.

그 명판 위에는 수컷 초파리 다리에 있는 성즐(수컷 초파리의 앞다리에 있는 까만점-역주)의 현미경 사진을 붙였다. 수컷은 성즐을 이용해 암컷에 달라붙는다.
211쪽.

역주가 없는 것이 나을 뻔했다. 까만점 가지고는 암컷은커녕 어디에도 달라붙을 수 없으니. 성즐이라는 것이 그저 까맣기만 한 점 같은 것이 아닐 거라는 걸, 나 같은 문외한도 내용만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피상적으로 어딘가에서 베껴오는 역주라는 삘링…

213쪽 이후에 계속 나오는 ‘피리어드’ 유전자는 158쪽에서 ‘주기period’라고 불렀던 유전자와 같은 것인 듯. 겨우 몇십 페이지 떨어져 있다고 용어통일에 실패하면 찜찜하지.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복제생물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로 작은 가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217쪽.

복제생물이 그리스어로 작은 가지? 말이 안 되잖아. 역시 원문 병기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데 번역자가 홀랑 빼먹었다.

“나는 스물세 번째 호메오박스(초파리의 호메오틱 선택 유전자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염기배열-역주)는 연구하고 싶지 않다.”
309쪽.

또 하나의 있으나마나 한 역주. 龍(용 용). 뭐 이런 느낌.

진실로 향하는 길

… 잘못된 사실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과학의 진보에 큰 해악을 끼친다. 그러나 잘못된 견해도 어느 정도의 증거를 바탕으로 지지된다면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건전한 즐거움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잘못으로 향하는 경로 하나가 폐쇄되는 동시에 진실로 향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기불이님께서는 과학책에 유통기한을 두자고 하십니다만, 흥! 1809년에 태어난 사람이 쓴 이 과학책, “인간의 유래”를 읽는 기쁨은 매우 컸습니다. 이 책에 유통기한을 둔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옛날옛적 유클리드의 과학책? “기하학 원론”이 직관과 연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희열을 준다면, 이 책은 경험과 귀납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순수한 기쁨을 준다고나 할까요. 신중함과 자신감을 모두 갖춘 성실한 지성만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입니다. 중간에 사슴이 어쩌고 풍뎅이가 어쩌고 줄줄이 나열할 땐 좀 졸렸지만 -_-; 그래도 지루한 부분을 견디고 나니까 막판에 다시 감동의 폭풍이 휘몰아칩디다.

“이거 왼쪽을 보니까 1234가 있고 오른쪽을 보니까 6789가 있음. 이건 아마도 5인 듯 ㅇㅇ.”

“1, 2, 3, 4, 5, 6, 7, 8, 9 다음에는 아마도 10이 올 것 같음. ㅇㅇ”

기본적으로 미취학 아동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렇게 간단한 논리만 가지고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다니, 짱 아닙니까? 열심히 지구 전역에서 동식물 표본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던 시대에 드디어 다윈이 생명의 주기율표를 발견한 겁니다. 사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던지라 월리스의 공동발견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다윈이 아니었더라도 생물 진화의 이론은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윈만큼 잘, 성실하게, 탁월하게, 간단하게™ 정리해서 내놓으려면 백년은 걸렸을 듯..

고등학교 생물-쉬어가는 페이지: 인소 이야기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스페인의 한 모험가가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야만인들에게 사육 되고 있던 몇 마리의 인소들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그 발견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보다도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소들을 최초로 발견한 선장은 인소들의 흰 피부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큰 눈을 보고, 이들이 침몰한 선박에서 표류하다가 야만인들에게 납치 당한 백인들일 거라고 오해하고는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그래서 직접 선내의 전 병력을 지휘하여 섬 안의 야만인들을 모두 학살하고 그들의 손으로부터 최초의 인소들을 구출하게 됩니다.

포로로 잡은 야만인들의 몸짓을 통해 이러한 인소들이 그 근처에 있는 수십 개의 섬들 전역에 걸쳐서 가축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선장은 당장 항해를 중단하고 뱃머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본국의 왕을 설득하여 야만에 맞서 전세계에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리라는 기독교 문명의 사명을 품고,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함대를 이끌고 나서게 됩니다.

물론 최초의 몇 마리를 본국으로 데리고 오는 도중에, 그리고 데리고 온 뒤에도, 인소들에게서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기는 했습니다. 인소들에게 아무리 말을 시켜봐도 그것들은 사람의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았을, 우물거리는 소리를 가끔씩 내기는 했지만, 알려진 주변 국가들의 어떠한 언어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야만인들의 오랜 비인도적 취급에 대한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유별난 관심을 좀 끌었던 것은 그들의 생식기였습니다. 최초 구출된 몇 마리 중에 단 한 마리밖에 없었던 수컷 인소의 거대한 고환가 성기가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은밀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의 종교적 윤리관에 따라 이 사실을 공공연히 입에 담는 것은 금기시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적 금기만 아니었더라면, 다른 암컷들의 생식기 역시 그 수컷의 생식기에 알맞을 정도로 비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이, 각자 개인적으로 그 사실을 발견했던 귀족 남성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세간에 회자될 때 쯤에는, 이미 토벌 함대가 바다를 떠난지 몇 주나 지난 뒤였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사명감으로 달아오른 함대의 출격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인소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큰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천, 수만에 달하는 야만인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수천에 달하는 인소들을 구출하여 본국으로 데려오면서, 최초의 개선 분위기와 축제 분위기는 점차 이 미지의 동물에 대한 의심과 공포로 바뀌어 갔습니다. 새로 데리고 온 수천 마리의 인소들 중에도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인소가 단 한 마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수컷들의 생식기는 하나 같이 비정상적으로 컸고, 암컷들 역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함대가 최초로 구출해온 인소들 중에는 임신중이던 암컷이 있었는데, 함대가 귀국하던 중에 선내에서 인소를 출산하였으나, 그 신생아가 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선내를 걸어돌아다니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수 년 동안 그 신생 인소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려는 노력 또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일이 년이 지나자 인소와 인간 사이에는 후손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밝혀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대중들의 여론은 날로 악화되었고, 신체 구조가 인간과 상당히 다르다는 해부학적 증거들도 발견되었습니다. 몇 년 후 인소는 신이 빚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가 신을 흉내내어 만들어낸 짐승이라는 교회 당국의 공식 발표가 나기에 이릅니다. 숫컷 성체들의 머리에서 발견되는 뿔의 흔적이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소들은 아프리카에서 생포해온 흑인 노예와 함께 숙식을 함께 하며 백인들로부터 값싸고 부리기 쉬운 노동력으로 수백 년 동안 착취 당했습니다. 다만 흑인들은 문명국의 인간들과 후손을 보는 것이 가능했으며,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소들은 여전히 인소들끼리만 생식이 가능했으며 인간적 지성의 징후는 그 후에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소는 노동력으로서도 흑인들보다 선호되었습니다. 초식 특성과 성체가 되는 데 이르는 기간이 흑인들보다 훨씬 짧다는 것도 그러한 인기에 한 몫 했습니다. 흑인 노예들이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고 함께 살아가게 된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인소들은 인간 사회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흑인 해방에는 인소들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소들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인류의 사촌 동물들보다도 훨씬 더 먼 옛날에 갈라져나온, 소과의 동물이라는 것이 유전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진화학자들은 수렴진화의 탁월한 교과서적 예로서 인소의 품종개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살아오면서 자연적 돌연변이를 통해, 그리고 태평양 야만인들의 품종 개량을 통해, 인간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한 외양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멸망한 태평양 문명에서 출토되고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불과 수만 년 전만 해도 네 발로 걸어다니던 털복숭이 인소들이, 두 발로 걸어다니는 데까지 불과 수천 년, 그리고 인간과 비슷한 골격과 피부를 갖게 되는 데까지 또 다시 수백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 멸망한 문명이 적어도 수만 년전부터 품종 개량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소들의 인간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인소들을 사육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인소들이 가진 빠른 적응 특성입니다. 돌연변이가 잦은 인소들의 품종 개량은 불과 몇 세대만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태평양 문명의 품종 개량 결과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도 가지고 있던 특성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는 유용한 특성임에 틀림 없습니다. 멸망한 원주민들이 인소들을 만들어낸 이유가, 실용적 목적 때문이었는지 종교적 맹목 때문이었는지는 이제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오늘날 그 실용성은 현대 사회를 원활하게 작동시켜주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인소들은 사회의 각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인소들의 타고난 순종적인 특성에, 인간과 거의 동일한 신체 구조 덕분에 인소들의 활용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현재 유일하게 활용이 어려운 분야는 지적 노동이 필요한 영역들 뿐입니다. 그 외에는, 인간을 배치하기에 너무 위험하거나 더러운 일에 전문적으로 특화된 인소들이 각 생산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수백 년 전부터 매춘을 위해 외모와 생식기 쪽이 특화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소들이 제공하는 저렴하면서도 고품질의 노동력이, 자칫하면 인권 유린의 장이 될 뻔 했던 사회 각 분야에서 인간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또한 인소들은 그 고기 또한 보통의 소들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으면서도 영양이 풍부해서 오늘날 전세계 식단의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인소 새끼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나, 젖인소의 젖으로 만드는 유제품들도 품질이 매우 좋습니다.

최초에 매춘을 위해 특화되었던 품종들의 경우, 최근 실제 인간을 넘어서는 그 초자극적 아름다움이 광고계를 넘어 연예계 일반에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미 길거리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각종 화장품이나 의류 광고용 스틸 사진들은 늘씬한 전문 인소 모델들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일부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인소들은 고유의 이름까지 가지고 전문 에이전시에 의해 사육되며 고급 사료를 공급받으며 전문 의료진의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인소들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말은 못하지만, 컴퓨터 그래픽과 더빙 기술의 발달로 가수와 연기자로까지 그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에는 인소 유전자에 인간 언어 유전자를 삽입하여 인소와 사람간에 대화를 가능하게 하려는 개량 노력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과학자들은 최근 수백년째 정체되어있던 인소들의 지능을 높이는 데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소들의 적응력을 고려할 때 앞으로 개량과 응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리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들도 집에 있는 인소들을 앞으로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각자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