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깨나 물조심! 얕은 물도 다시 보자!

심야특선 – 어둡고 이상한 이야기 9선 -게렉터블로그

1번 이야기를 읽고 예전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강하게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일인데요.

10년쯤 전에 저와 동생, 부모님 이렇게 4인 가족이 남반구의 한적한 해변에 놀러갔을 때였습니다. 물장구용 판대기 하나만 믿고, 멋도 모르고 살짝 깊은 곳에 들어간 저는 갑자기 밀려온 살짝 높은 파도에 그만 그 판대기를 놓치게 됩니다. 물안경도 없어서 눈도 못 뜨고, 짠물은 입 속으로 들어오고, 간신히 판대기에 연결된 끈은 놓지 않았던 지라 질끈 감은 눈으로 줄 끝에 달린 판대기를 짚어보지만, 전신을 의지하려는 저를 야속한 판대기는 높지도 않은 파도에도 홀라당홀라당 뒤집히기만 하고, 결국은 그 마지막 끈조차 놓쳐서,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스스로 해결해봐야겠다는 사춘기 자존심 같은 것도 버리고, 살려주세요를 외치려다가, 아 맞다 여기는 남반구였지 싶은 마음에, 입에 공기가 닿을 때마다 필사적으로 “헤-ㄹ프!”(그래도 ㄹ을 굴려주는 것이 중요.)를 두어번쯤 외쳤습니다.

짠물 몇 모금 마시고 나니까 아 이거 이러다 죽겠구나- 싶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정신줄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지라, 떠 있던 시간이 꽤 되고, 바닥에서 발이 살짝 떨어진 순간부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이지도 않는 바닥을 향해 발을 뻗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 ㅡ,.ㅡ 발이 닿는 게 아니겠습니까? 가슴께밖에 안 되는 물이었던 겁니다! 손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조~기서 젊은 사람 몇몇이 “몰라, 뭐야 쟤…”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물가로 기어나왔습니다. ㅋㅋㅋ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해변가에 있던 가족들 말로는, 동생이 “오빠 빠졌나봐…”라고 눈치를 챘었고, 수영을 못하시는 아부지께서는 도움을 요청하고 계셨다더군요. 그러니, 아마 제가 거기서 물 먹고 혼절했어도, 다행히도 그냥 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로선 말로만 듣던 “주마등”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몸소 실감했던 순간이었고-
그래서 저 괴담도 그냥 괴담이 아니라, 얼마든지 당장이라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느껴집니다. 남의 일이 아니니까요..

이제 판대기 없이 수영장 레인을 왕복할 정도로 수영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물 속에서 근시인 눈도 뜰 수 있긴 하지만, 지금도 약간만 깊은 곳에서 물이 조금이라도 코나 입으로 들어가면, 당시의 죽음의 공포가 재현되어, 뭐든지 다 불 테니까 제발 살려만 주세요- 하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근데 뭐 이 씨발놈아, 뒤질래? 물고문이 수영 같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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