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신학이 철학의 한 분야라고 보는 것이 드문 오해가 아닌 듯하다. 음.. 한때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던 적은 분명히 있었으나, 신학이 철학의 한 분야였던 적은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뭐랄까, 신학은 아마도 인류 최초의 학제간 학문-_-이 아닐까 한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동원(‘동원 예비군’ 할 때의 그 동원)된다. 협력이 아님. 과거 신의 섭리 설명을 위해 플로티노스의 형이상학이 동원되고, 신 존재 증명을 위해 (당시) 최신의 논리학이 동원되고, 기타 등등 했던 것이, ‘신학은 철학의 한 분야’라는 오해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신학이 동원한 학문은 철학만이 아니다. 종교적 사건의 연대측정을 위해 역사학도 동원된다. 각종 유물과 문서 해석을 위해 문헌학, 고고학 등등도 동원된다. 십자가 조각이었다고 믿어지는 나무쪼가리를 검증하기 위해 탄소연대측정법까지 동원된다! 예수가 걸쳤다고 믿어지는 천쪼가리를 검증하기 위해 DNA까지 동원된다! 교회당 설계를 위해 건축학, 음향학, 심리학도 동원된다. 미술, 조각 음악도 동원된다. 원리상 신학을 위해서라면 동원되지 못할 학문이 없다. 그 중 철학이 가장 오래됐고, 따라서 가장 오래 동원됐을 뿐이며, 아직도 재탕삼탕 우려먹느라 동원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오늘날 창조론 같은 종교의 뻘짓은 그 이천년 묵은 관성적 시대착오에서 비롯되는 것인 듯하다. 사실 창조론과 그 떨거지들은 과거 철학을 동원했듯이 과학을 신학에 동원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게 왜 시대착오냐 하면, 요즘 애들은 머리가 굵어서 그렇게 만만치가 않거든. 심지어 요즘엔 철학도 니들한테 봉사는커녕 동원되는 거조차 싫어하거든. 슈퍼컴퓨터가 쌩쌩 돌아가는 세상에 아직도 엉터리 전제 끼워넣어 신존재 증명이나 하는 허접한 논리 아무도 신경 안 쓰거든. 옛날처럼 학문을 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여건을 갖춘 곳이 수도원 뿐이라면 그나마 굽신굽신할텐데, 요즘엔 니들 말고도 많거든. 메롱. 메롱.

뭐 그렇다고.

만들어진 신

책 내용하고는 별 관계 없는 얘기.

겨우 진중권 보고 잘난 척한다는둥, 무례하다는둥, 대중 무시/혐오한다는둥 하는 애들한테 읽히고 나서 반응을 살펴보고 싶은 책. 무릇 음악에는 선율이 있고, 리듬도 있고, 화음 등등이 있어요. 사람 말에는 목소리가 있고, 감정이 있고, 내용이 있어요. 그 내용 중에는 또 사실 전달이나 의견/주장 같은 게 있는데, 그것에 동원되는 재료를 개념이라고 부르고, 뒷받침하는 구조를 논리라고 불러요. 그런데 분명하게 표현된 감정 뿐만 아니라, 딱히 표현하지도 않았는데 지맘대로 억측해낸 감정까지 혼자서 막 변태같이 느껴대고, 정작 내용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 일종의 음치 같은 것이 아닐까 함. 그러고 보면 또 이런 사람들이 지 얘기할 땐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요…

전에 이 책을 두고 안 봐도 내용이 훤하지만 트랜스포머 보는 기분으로 보겠다 그런 적이 있는데. 역시 도사마. 트랜스포머 KIN.
전해듣는 온갖 사례와 인용들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둘만한 책임.

참 437쪽에, “‘게이(gay)’가 ‘신이 아직 돕느냐(Got Aids yet)?’의 약어가 아니라면 쓰지 말라”라는 인용을 보고 이게 뭔 소릴까 했는데, 문득 정신집중 캠프가 떠올랐음. 아마 ‘에이즈 아직 안 걸렸냐?’라고 하는 게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