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오라토리오

교회가 예술의 주된 후원자가 된 것은 엄청난 부 덕분이었다. 역사가 다르게 전개되어 미켈란젤로가 거대한 과학관의 천장 벽화를 그리는 일을 의뢰받았다면, 그는 적어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만큼 감동을 주는 무언가를 그리지 않았을까? 우리가 베토벤의 <중생대 교향악>이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팽창 우주>를 들을 수 없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고 하이든의 <진화 오라토리오>를 못 듣는다는 것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리차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137-138쪽.

나도 유감스럽긴 한데, 도킨스의 가정에는 회의적임. 중생대나 팽창 우주, 진화 등을 예술 작품에 우려낼 정도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지적인 노력이 필요할 텐데, 그런 건 위대한 예술가의 인생을 낭비하는 측면이 좀 있음. 종교의 한 가지 미덕은, 굳이 시간 들여 머리를 쓰지 않고도 헌신적이고 숭고한 동기를 품게 해준다는 것.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기니까, 아무래도 이 쪽이 실용적;;; 감상자 쪽도 마찬가지.

읽다가 메모.

반뭐시기 운동

Rational Atheism: Scientific American
1. Anti-something movements by themselves will fail. Atheists cannot simply define themselves by what they do not believe. As Austrian economist Ludwig von Mises warned his anti-Communist colleagues in the 1950s: “An anti-something movement displays a purely negative attitude. It has no chance whatever to succeed. Its passionate diatribes virtually advertise the program they attack. People must fight for something that they want to achieve, not simply reject an evil, however bad it may be.”

반한나라당이나 안티조선 운동이 떠올랐음. ㅡ,.ㅡ

내가 종교인이 되었으려면

  • 난 무교이다. 정확히는 무신론자. 갈 데까지 가서 여기서 더 갈 데는 없는 거 같다. 반신론자가 남았나? 하하.
  •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지론자였음. 다들 뭐 하나씩 믿는데 뭔가 있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 싶었었다.
  • 더욱 어릴 땐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뭔가 있나 본데 그게 뭘까 궁금해론자였던 듯. 그래서 할머니의 구약을 뜻도 모르면서 읽어봤었더랬다.
  • 가끔씩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만약 특정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되었으려면 내 삶 속에 어떤 요소들이 더 필요했을까?
  1. 종교 존재 감지: 누군가 종교라는 걸 믿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희박.
  2. 많은 교인 수: 근데 그 종교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10~30%. 무난. 이게 내 어린 시절에 해당.
  3. 부모님: 태어나 보니 부모님께서 특정 종교인이었다면. 50% 안팎으로 크리티컬.
  4. 친척과 이웃: 그런데 아는 이웃이나 친척집도 전부 그 종교를 믿고 있다면. 20% 추가 데미지.
  5. 교통과 통신: 지구 반대편에는 세부 내용이 전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떼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 90% 이상. 아니, 오히려 거기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면. 99.9% 확률로 확정! ㅊㅋㅊㅋ.

반대로, 난 그래서 누가 “모태신앙이에요”라고 그러면, ‘아.. 50%는 먹고 들어갔구나.’라고 생각함. 중세까지의 사회 꼬라지도 이해가 감.
현대사회는 대략 10~90% 비율로 이해 가능과 이해 불가능.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건 아직도 이해해보려고 다각도로 노력중. (한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낭비시키고 있다는 점에 종교에 또 한 가지 해악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려나? ^^;)

만들어진 국가

배송 받아 놓고 아직 읽지는 않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에, “아이에게 특정 종교를 주입하는 것은 아동학대”라는 말이 나온다고 들었다. 아이는 ‘특정 종교-free’하게 길러져야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무슨 종교를 굳이 가지겠다 그러면 뭐 그럼 그러려무나 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줄로 안다.

신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일부 집단에게는 꽤나 도발적으로 들릴 지 몰라도, 국가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당연한 소리다. 그런 국가는 종교보다 역사가 훨씬 짧은 인공물이며 근대국가에서는 종교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이 망상인 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기 때문이지만, 국가가 망상이 아닌 것은 있는 만큼만 있다고들 보(고 있다고들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아이에게 특정 국적을 강요하는 것이 아동학대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중삼중국적으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이상적인 게 아닐까? 어째 이를 부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쩌면 국가라는 망상의 시작점이 아닐까?

이중국적이 병역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겠답시고 한국 국적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국가라는 망상이 커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벌 위조

요즘 뉴스란은 연일 학벌 위조 의혹 제기/ 자백으로 시끄럽다. 조국의 근대화는 21세기가 된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착착착 진행되고 있구나. 22세기가 되기 전에는 완료되겠지…

그건 그렇고 처음에는 자백하는 사람들에 대한 여론이 너무 관대한 것 같아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계속 쏟아져나오는 걸 보고 괜히 관대했던 게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1. 대중은 학력 관련 사기가 만연하다는 걸 은연 중에라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나만 몰랐을 지도. 하는… -,.-
  2. 그리고, 이토록 만연한 부조리에 대한 처벌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아마 해방 직후 친일파를 때려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할 것 같다는. 물론 그게 잘 하는 짓이라는 얘기는 아님.
  3. 그래서 오히려 현재의 자진 신고 기간™이 끝난 후가 두렵다. “너 왜 그때 말 안 했어?” 하고 때려잡기 시작하면 모르긴 몰라도 무지무지 잔인해질 것 같다.

아님 말고.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
[terrorist] <명사> 테러를 일삼는 사람. <동의어> 폭력주의자.

테러
[terror] 폭력 수단을 써서 적이나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위 또는 공포에 빠뜨리는 행위. ¶ ~ 사건.

저격이나 폭탄은 폭력 수단이 맞음. ㅇㅇ 아무래도 테러나 테러리스트라는 말의 의미에 원래 없던 도덕적 가치 평가가 들어간 듯. 심증 뿐이지만-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대체할, 반대되는 개념으로 “독립운동가”가 제시되는 걸 보면 거의 확실. -_-;; 독립운동가이면서 테러리스트일 수는 없다는 기묘한 흑백논리. 이중잣대가 필요할 땐 거부감 없이 비판적으로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 (‘진중권의 이중잣대’ 지적도 마찬가지로 기묘했음.) 케로로 曰 “고레와 고레. 소레와 소레.”

현재 활동 중인 테러리스트들도 지네들이 보기엔 도덕적으로 훌늉한 평가를 스스로들 매기고 있음. 따라서 테러리스트=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보류할 필요가 있을 듯. 테러는 행위를 칭하는 용어이고, 테러리스트는 그 행위자를 칭하는 용어일 뿐. 뭐? 일본은 절대악이라서 보류할 필요가 없다고? 흠좀무.

금자에게 “세상에는 좋은 유괴와 나쁜 유괴가 있어..”라고 했듯이, “세상에는 좋은 테러와 나쁜 테러가 있어..”
내가 하면 좋은 테러고 나한테 하면 나쁜 테러. ok?
뭐? 둘을 구분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걍 나쁜 테러로 통일하자고?
유괴는 통일이 정답이겠지만, 테러는 선택지가 둘. 통일하거나 보류하거나.

나는 보류파. 통일하면 더 헷갈려서.

otaku1.gif
저격은 했지만 테러는 아닙니다.
폭탄은 던졌지만 테러는 아닙니다.

전설의 푸른 수염

“Dorothy was flabbergasted,” I said to Circe. “She said to me: ‘Why don’t you do that all the time?’ And I said to her, and this was the first time I ever said ‘fuck’ to her, no matter how angry we might have been with each other: ‘It’s just too fucking easy.’”

보네거트 소설 중에 bluebeard라고 있다.

그 주인공이 왕년에 캔바스에 색테이프 붙여놓는 추상 작품을 만들어 유명한 현대 미술가 노인네인데, 사실은 어릴 적에 일러스트레이터 장인 밑에서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마스터한 바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 사람이 어쩌다가 슥삭슥삭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걸 보고 아니 왜 이렇게 안 그리냐고 묻자 저렇게 대답했다. it’s just too fucking easy라는 대답이 심금을 울린다. 비속어의 적절한 사용실례..

피카소 같은 사람들 그림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한다는 소리가 “사실 피카소도 그냥 그림 되게 잘 그려..” 같은 건데, 쟤가 정말로 못 그려서 저렇게 그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이해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실 어렵게 그린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못된다. -_-;;

자기만족적 예술 따위..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