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옥탑방의 마야 : 뉴타운, 아무도 속지 않은 사기

저야말로 뭘 알고 쓴 게 아니라,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가해-피해의 각도를 좀 달리해본 것 뿐이었는데, 하늘빛마야님께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잘 풀어서 써주셨고, 덧글로도 흥미로운 얘기가 오갔군요. 우왕ㅋ굳ㅋ.

사실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찌질하게 느껴져서 차마 말 못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으니… 저는 사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는, 운하를 일종의 뉴타운 개발처럼 여기는 “시골” 사람들의 의지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더랬습니다. 비록 당락을 결정한 요인까지는 못되더라도. ㅡ,.ㅡ (말 나온 김에 다 쏟아내고 가자. 언급 자체가 찌질한 이야기 하나 더: 저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가 편모 가정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쿨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아예 안 다루죠. ㅋㅋㅋㅋㅋㅋ)

덧글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던데, 뉴타운 뻥카 공약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농담이 아니라 현금 박치기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이명박, 시장은 오세훈인 상황에서 “우리도 뉴타운” 공약 같은 것은 필패의 전략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인터넷 회사들처럼 “당선시 현금 100만원씩 제공!” 같은 것 말고는 진짜 답이 안 나옵니다. 먼 미래의 복지사회 나부랭이에 대한 희망…보다 비교적 가까운 미래의 시세차익에 대한 희망…보다 더 가까운 것이 즉시 제공되는 현찰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부자 동네 재산세 공유” 같은 건 쫌 먹힌 듯. 마치 사교육을 통한 입시 경쟁처럼 상대적 우위 한계 효용의 극한까지 탐하는 뉴타운보다야 차라리 이런 게 낫겠다. 뭔 소리래… 하여튼.) 농담이 아니라, 이거 어떻게든 하지 않는다면, 막장으로 치닫는 테크트리가 벌써부터 눈에 선합니다. 오세훈 시장 임기에 뉴타운이 추진이 안 되면, 모르긴 몰라도 이번에는 같은 당 사람들인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협조하여 뉴타운 추진하겠다는 시장 후보가 나와서 당선될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이거 무슨 나선력도 아니고.

그러니까 서울 민심은 뉴타운으로 장악하고, 지방 민심은 운하로 장악하면 됨. 이건 뭐 완전 백년지대계임. 무슨 재벌 창업자 생가 방문 코스 같은 게 처음엔 우습게만 보였는데, 배용준 닮지도 않은 인형에 안경 씌우고 목도리 감아놓고 일본인 관광객 끌어보자는 동네에서 생활해본 적이 있는지라, 지금은 그게 농담 같지가 않음.

아무리 지역구 단위로 뽑는다지만, 아파트 부녀회장이 아니라 국회의원 뽑는 것인 이상, 이토록 노골적으로 지역 이기주의를 건드려서 당선되는 현상황은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나라 전체를 위한 의정활동”이기도 하니까요;;; 지역 이기주의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저 이기주의 되게 좋아합니다. 자기 이익을 따라 투표한 개별 유권자들이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저라도 그럴 거 같습니다. ‘지역구 의원을 뽑는 것이지만, 나라 전체를 위해서 딴 사람을 뽑아줘야지.’ 따위 망상은 저 같아도 안 합니다. ㅋ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후보들은 원래 그게 하는 일이니 탓할 생각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뭔가 잘못되어버린 듯한 현 상황 자체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적절한 제도를 만들 사람들을 잘 뽑으면 되..겠지만, 바로 “그” 제도의 문제입니다! 차라리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죠. 헐. 뭔가 하긴 해야 할 거 같은데 뭘 해야 할 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 일본이라도 공격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렇게 시스템이 막장으로 치닫지 않고 잘 돌아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은, 적절한 피드백일 겁니다. 의지 표명 차원을 넘어 실제 구라를 깠던 몇 놈은 오함마로 찍어버리는 것이 당선 자체를 취소시키는 것이, 전략적 뻥카…를 넘어선 구라 공약 남발에 적절하게 선을 그어두는 본보기 차원에서도 킹왕짱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돌아가는 꼴이 아무래도 힘들 거 같고. 그렇게 법으로 처리가 안 되면, 최소한 다음에 두고 보자 정도의 상식적 반응이라도 나와야 하겠습니다만, 현재로선 아무래도 유권자들도 공범인 거 같으니, 오히려 뉴타운 공약이 구라였다는 사실이 언론 등에 거론되는 것 자체를 싫어할 거 같고. 역시 묵시록적 버블이 내일이든 백년 뒤든 터져야만 되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 머리로는 대충 이렇게 망상적 문제 인식까지밖에 못 가고 탁 막혀버리는지라, 해결책을 내놓을만한 사람, 해결책을 찾고 있는 듯한 사람, 특히 현재로서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사람들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형 존치/폐지의 논리와 감정들

0.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거의 전세계적으로- 식인풍습이 없어졌습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일 겁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신분 차별이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아동에게 노동을 착취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는 종교/사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시대에 뒤쳐진 바보 멍청이라고 욕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이제야 인정할까말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최고로 큰 기업에서 노조를 못 만들게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사형을 거의 폐지하다시피 했으면서도 되살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보 멍청이입니다.

1. 사형 폐지의 논리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

제가 파악하는 바, 사형 폐지론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쥐고 있을 수 있는 진리는 “반드시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까지입니다. 굳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수를 죽여버리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공동체가 이루고자 하는 바-즉, 위험인물 격리, 범죄 감소, 살기 좋은 세상-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것까지가 사형 폐지의 핵심 논리입니다. 여기에 ‘위험인물 척살’ 같은 것을 은근슬쩍 끼워넣는 미꾸라지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말살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상쇄됩니다.
제게 사형수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경우를 들라면, 사형수가 감방 안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교도소 바깥으로 뇌파를 삐리삐리 마구 쏴대서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거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2. 사형 존치의 논리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사형제도의 창시, 존속 또는 부활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밝혀야만 할 것은, 사형을 폐지할만한 전적으로 논리적인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사형을 국가의 제도로서 유지시켜야 할 논리까지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135개국과, 그 중에서 지난 10년간 한 건의 사형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았던 우리 대한민국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죽여버려야만 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명백한 거짓으로 밝혀진 주장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형 존치론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대한 논리적인 주장은, 사형 폐지론자들과 비슷한 형태의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 정도입니다.

3. 사형 폐지의 감정 -지식, 지성, 도덕, 공감능력

그리하야 사실 전적으로 논리만 가지고는 사형의 무조건적 폐지라는 일견 극단적인 결론까지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절대로 죽이지 말자”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현대 인류 문명의 쾌거인 인권의 개념을 온몸으로 촉촉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 이전에 각자의 심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1)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권 개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거나, 2) 들어봤지만 머리가 나빠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거나, 3) 그 따위꺼 흥하고 콧방귀를 뀔 정도로 심성이 고약한 사람이라거나, 4) 인권 따위 자기와 상관 없는 문제라고 치부하는 독불장군이라면 “꼭 죽이지는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죽여버렸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얼마든지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사형의 폐지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그러니까 막판에는 1) 지식과 2) 지성과 3) 도덕과 4)공감능력의 문제이지,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적 근거에 수긍하더라도. 막판에 인권지식과 이해능력과 도덕감정과 공감의 능력을 통해 폐지라는 결론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나름의 엉뚱한 결론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분들이 바로 ‘논리적인 사형 존치론자’들의 실체입니다. 하긴 네 가지 중에 적어도 한두 가지 이상은 갖춰야만 하는 문제인지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기가 좀 미안하기는 합니다. 아직도 여성 참정권을 인정 못하고, 흑인이 인간임을 인정 못하는 심성을 가진 분들이 있듯이, 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이죠.

4. 사형 존치의 감정 -보복 감정, 정의감, 핑계, 공포감 그리고 타성

“꼭 살려두지 않아도 된다면 그냥 죽여버리자”는 주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통 보복 감정이나 불타는 정의감, 나름의 논리, 공포감 같은 것이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것도 없이 완전히 논리적으로 막바로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을 요즘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우선 보복 감정. 나쁜놈을 찢어죽이고 쳐죽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폐지론자인 저도 이해하는 바입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우리 개개인이 자비와 용서의 감정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국가도 그 감정을 그대로 반영해야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분들은 정말로 능지처참해야 할 놈들까지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훌륭한 국가라면, 우리 중 다수의 마음보다는 우리 중 훌륭한 분의 마음을 반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제 마음이 훌륭하지는 못해도, 훌륭한 분들의 마음과 행동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며, 그 본받음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제도를 통해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메소포타미아인이 아니고, 우리의 법은 더 이상 비석에 새겨두는 열 줄 짜리 메모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서 그 년/놈을 용서해주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년/놈의 죄를 봐주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 그 년/놈의 죽음만큼은 면해줄 정도로 우리가 훌륭해지는 겁니다.

정의감은 폐지론자라고 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존치론자들만의 미덕이 아닙니다. 폐지론자들도 범죄자들을 잡아서 심판해야 한다는 정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치론자들 중에는 세상에 자기들만 정의로운 줄 알고 폐지론자들을 무슨 범죄 옹호론자쯤으로로 몰아세우는 분들도 계신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정의감은 양측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존치론이냐 폐지론이냐는 이러한 정의감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타는 정의감은 존치론의 이유가 못됩니다.

가끔씩 보복 감정과 불타는 정의감 외에, “밥값 아깝다”는 이유를 경제 논리랍시고 들고 나오는 분들이 계신데, 굳이 논리라고 부르자면 논리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을 밥값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처럼 개화한 문명사회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받은 현대인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그럴듯한 핑계를 원하는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비슷한 핑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엔 심지어 “그 놈들은 사람이 아니니까”처럼 막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걸 논리랍시고 대는 사람들은 논리가 아니라 놀리는 거라고 봅니다.

제가 뭐라고 타박하기 가장 찜찜한 것이 공포감입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발 뻗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막연한 감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입니다. 그 조건에, 어떤 사람의 생사여부가 들어가게 될 경우 이 근원적인 공포는 적극적인 사형존치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분들께는 사형제도 폐지하자고 말하기가 정말로 미안합니다. 거미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거미는 익충이에요 하는 기분이고,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관람차 재미있어요 하는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막연하고 불합리한 공포를 국가처럼 큰 사회의 제도에까지 반영시킬 필연성이 없으며, 어떤 경우엔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해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사형을 폐지한 나라들에서 이런 분들이 집단 공황증세라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구요.

그러나 제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타성입니다. 이건 뭐 논리도 아니여 핑계도 아니여 그렇다고 무슨 감정의 표현도 아니여. 그냥 “아 몰라 하던대로 하지 귀찮게 뭘 바꿔.”, “그냥 대충 놔둬. 죽든 말든 뭔 상관이야.”, “뭐 나쁜 놈이라고? 그럼 죽으라 그래.”, “인권? 그게 뭥미. 몰라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아 귀찮아. 꺼져.”, “아 법 있는데 왜 집행을 안한대, 그냥 해, 왜 안 해.”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용량이 부족한 건지, 속도가 딸리는 건지. 도통 답이 없어요.

5. 가야 할 길

우리 모두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연쇄살인마도 있지만, 우리 중에 예수와 부처도 있다면, 우리가 어느 쪽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들의 공동체를 이끄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보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답을 찾아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형폐지론은 무슨 시대를 앞서나가는 새로운 주장이라거나,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변적이고 이상적인 몽상 따위가 아닙니다. 이미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나라에서,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10년 동안 입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발자국을 찍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앞서 갔고, 우리 앞에는 꽤 훌륭한 길이 나 있습니다. 그냥 터벅터벅 따라가기만 해도 됩니다. 편하지 않습니까? 그런 길들 중에는, 아직 먼저 간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좀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직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 폐지라는 잘 닦인 길을 향해 우리는 이미 몇 걸음 뗐습니다. 거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