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우리 시대의 독특한 현상 중의 하나는 변절한 자유당원이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친숙한 주장과 더불어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적인 수단으로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유표되는 경향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적을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붕괴시켜야 한다. 그러면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그 적은 항상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상을 유표시켜 민주주의를 ‘객관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모든 독립적인 사상의 파괴를 포함한다. 이 주장은 러시아인의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제아무리 열렬한 친러시아파라도 모든 희생자들이 기소된 모든 죄를 지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단적인 사상을 유지함으로써 정권에 ‘객관적으로’ 해를 끼쳤고, 그러므로 학살하고 거짓 혐의를 씌워 망신을 주는 것도 매우 정당하다는 것이다. (…)

나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을 잘 알고 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과 자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모두를 알고 있다. 나는 다만 그러한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사실과 사백 년에 걸친 우리 문명이 그러한 주장에 반대되는 정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만 말하겠다.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현재의 러시아 정권이 사악한 정권이라고 믿어왔고, 승리를 바라는 전쟁에서 소비에트연방이 우리와 동맹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나는 요구한다. 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한 구절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존 밀턴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선택하겠다.

옛 자유라는 알려진 법칙으로

여기서 이라는 단어는 지성의 자유가 전통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독창적인 서구 문화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점을 강조한다. (…)

-조지 오웰. 『동물 농장』. 펭귄 클래식 코리아. 부록 1 「조지 오웰 서문」. 172-176쪽.

조지 오웰도, 국보법에 반대합니다. ㄳ.

21세기 대한민국도 서구 문화의 직계 후손입니다. ㄳ.

밥과 똥

(생략…) 의용군 체계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주요 목표는 장교와 사병들 사이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 사병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똑같은 봉급과 똑같은 식사 제공과 똑같은 군복을 입었고, 그들은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 만약 누군가가 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의 등을 툭툭 치며 담배를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럴 수도 있었으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하여간 이론적으로 모든 의용군은 민주적이었고, 계급도 없었다. 명령에는 반드시 복종해야 했으나, 명령을 할 때는 상관이 부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료에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했다. 장교와 하사관 등이 있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대 계급은 없었다. 다시 말해, 계급 명칭이나 계급장 등이 없었고, 부동 자세를 취하거나 경례를 하는 법도 없었다. 그들은 군대 내에서 일시적이나마 일종의 계급 없는 사회의 산 표본을 만들어 보고자 한 것이었다. 물론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내가 보아 온 것보다, 혹은 전쟁 때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완전한 평등에 가까웠다.
그러나 첫눈에 들어오는 전선의 복무 상태가 나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꼴의 군대가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점은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지적한 것이었다. 비록 이 지적은 사실이긴 하지만 이성적이진 않다. (생략) 훗날, 훈련과 무기 부족으로 인한 의용군의 잘못을 평등 체계의 결과라고 비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실제로 새로 모집된 의용군들은 군기가 안 잡힌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장교가 사병을 ‘동지’라고 불러서가 아니라, 신병들이란 항상 군기가 안 잡힌 오합지졸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민주적인 ‘혁명적’ 형태의 군기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믿을 만하다. 노동자들의 군대에서는 군기란 이론적으로는 자발적인 것이다. 그것이 계급에 대한 충성심에 근거를 둔 것임에 반해, 부르주아 군대의 군기는 궁극적으로 두려움에 근거를 두고 있다.(의용군을 대치한 인민군은 이 두 형태의 중간쯤이었다.) 의용군에서는 일반 군대에서 행해지는 기합이나 욕설 등이 전혀 없었다. 일반 군대에서 행하는 벌을 주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매우 심각한 군율 위반자에게만 한했다. 예를 들어 명령 불복종자에게는 바로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동지’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해서 해결한다. 사병들을 다루어 본 경험이 없는 냉소적은 사람들은 이런 방법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당장 말하겠지만, 사실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생략)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풀무질), 31-32쪽.

한국 군대를 저렇게 바꾸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나 빨갱이 아니니까 젭라 국보법으로 잡아가지 마셈. ㅋㅋㅋ)

전에 휘연님이 “군 민주화 어쩌구 하는데 사실 군이라는 조직 자체가 민주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잖아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군의 목적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마는 군 민주화는 여전히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상명하복식 계급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불가피한 필요악은 기능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한정해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인용한 오웰처럼, 제한적이나마 두 나라의 군대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ㅋㅋㅋ), 돌이켜보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 차별이었습니다. 야외에서 훈련을 받는 날, 땡볕 아래 짬밥차가 실어온 짬밥을 허겁지겁 받아 처먹고, 메이는 목을 축이기 위해 말통에서 공용컵에 물을 받아 처마시던 훈련병들과는 달리- 따로 도시락(?)을 챙겨와서 그늘막 아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음료와 함께 우아하게 잡수시는 하사관/장교들을 바라보며, 그 당시에도 열불이 좀 뻗치긴 했습니다만, 원래 군대라는 것이 그런 것이려니 했습니다.

초식동물인 양들이야 풀 뜯어먹으면서 목동의 소세지 도시락을 탐하지 않겠지만- 같은 인간끼린데, 나도 땡볕에 그늘막 좋아하는데, 나도 차가운 음료수 좋아하는데, 나도 우아한 도시락 좋아하는데, 솔직히 배알이 꼴렸습니다.

전에 의정부 보충대에서 악몽 같았던 화장실 청소 얘기를 썼을 때, 깨끗한 기간병 화장실은 따로 있었다고 살짝 언급했었죠. 이 때에도 군대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했습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 화장실 따로 있고 학생 화장실 따로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었더랬죠.

제주도 똥돼지들이야, 주인님들께서 위에서 쾌변하시면 밑에서 맛있게 냠냠쩝쩝하겠지만- 나도 사람인데, 나도 쾌적한 순백의 변기통 좋아하고, 내 똥이 지들 똥보다 더러운 거 아닐텐데, 솔직히 배알이 꼴렸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도중만큼은, 신성하다고 말로만 뻥치지 말고, 겨우 밥 먹고 똥 싸는 문제로 사람 배알 꼴리지는 않게 해주는 것이 군 민주화의 초석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펌] 부랑자 중산층

“쓰레기 같은 부랑자들을 동정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이들을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길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쓰레기, 쓰레기니까요.”

흥미롭게도 그는 동료 부랑자들과 자신을 교묘하게 차별화했다. 그는 6개월 동안이나 떠돌아다녔으면서도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자신만은 부랑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의 몸은 비록 구빈원에 있지만 정신만은 하늘 높이 솟아 중산층에 속해 있었다.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라는 책 138쪽에 실린 ‘구빈원’이라는 제목의 글 중에서.

국개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또 다른 국개론 즉, 민이 (우물 안) 구리을 주장하고 싶어진다.

국개론은 모든 사회 활동의 전제일지언정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적 어려움 같은 변명 뒤에 숨고 싶어질 때에는 구체적인 기한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하는 게 낫다.

나도 “정직한 글”을 쓰고 싶다. 아직까지도 그게 컴플렉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