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기

‘The Stupidity of Dignity’ by Steven Pinker – RichardDawkins.net

이런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최악의 것은, 다음과 같은 덜 문명화된 형태의 음식물 섭취이다. 아이스크림 콘을 핥아먹는 것(비격식적인 미국에서는 수용되게 되었으나,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먹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마치 고양이 같은 행위) … 길거리에서 먹는 것(심지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즉 약속 시간 사이에 따로 먹을 짬이 안 난다던가)은 자기 통제력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배의 노예가 되었음을 뜻한다. … 잘라서 입으로 나르는 데에 도구를 쓰지 않음으로써, 무슨 짐승 마냥 이빨을 사용하여 씹을만한 분량을 찢어내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 이런 마치 개 같은 먹기는, 꼭 그렇게 먹어야만 한다면, 마땅히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한다. 우리들이 부끄럼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들은 우리의 부끄러운 행동을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뭐병 여병추스러운 인용문인데 너무 재미있기에 혼자 보기 아까워서 겨털 번역.
이런 사람이 생명윤리에 관한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불러낸 사람이라니 미국 꼬라지도 참 안 됐다 싶다.
원문은 짧지만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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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 관련글 자제?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라던가, 그런 모임에서 운영하는 게시판 등등에서 주로 접해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그게 왜 그런 것이냐 하믄, 정치나 종교 관련 얘기는 친목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거꾸로, 딱히 친목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곳에서까지 정치적, 종교적 침묵을 요구하는 것은 좀 오바입니다. 특히나 개인 블로그에서는 뭐 선교 활동을 하든, 정치 알바 노릇을 하든 주인장 맘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스무 살 넘은 성인이 정치적, 종교적 입장조차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흉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드러내는 블로그를 운영할 것이냐, 감추는 블로그를 운영할 것이냐 하는 건 자기 맘이겠지만.

그나저나 정치, 종교적인 것이 왜 친목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느냐 하믄, 정의상, 정치적, 종교적 어쩌고는 어쨌거나 서로간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걸랑요.

제 특기가 바로 무리한 도식화인데, ㅋㅋㅋㅋ,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믄, 우선, 정치적인 것-은 주어진 모든 사실들을 각자가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나서도 서로간에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입니다. (ex. 물이 반이나 찼군요. vs. 물이 반밖에 안 찼군요.) 그래서 정치 얘길 제대로 하려면 대체 어디에서 서로 입장이 갈리는 건지 사실 합의의 상한선을 일단 확인하는 게 중요해요. (ex. 이 컵의 용량은 240ml인데, 물이 120ml 들어있음. ㅇㅇ)

그리고 종교적인 것-은 심지어 주어지는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아가면서까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로 종교적인 것입니다. (ex. 이 잔에 든 것은 H2O, 즉 병시나 산소 물이군요. vs. 이 잔에 든것은 물이 아니라 피이니라. vs. 이 잔에 든 것은 무안단물이니라.)

이 얘기를 갑자기 왜 하느냐.
요즘 모기불 통신의 기불이님께서는, 끽해야 쫌 정치적인가? 싶은 이야기를 쓰고 계실 뿐인데(그나마도,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걸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께서 왱알왱알거리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캐치22

이런 책을 이제야 읽다니. 괜히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화 한다면 제목은 “요사리안, 군대에 가다”가 어떨까. 어릴 때 “어니스트, 학교에 가다” 이런 거 좋아했었는데. 대충 그런 삘로. 읽기가 약간 힘들어서 번역탓인가 했는데, 원래 문체부터도 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인 듯하다. 아무렴 어때.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 울다가 웃다가 엉덩이에 X나게 해주는 책임. ㅇㅇ

그냥 인상깊었던 한 단락만 퍼다 놓기로 함.

요사리안은 역시 추워서, 걷잡을 수 없이 떨었다. 스노든이 더러운 바닥에 온통 쏟아놓은 흉측한 비밀을 허탈하게 내려다보면서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의 창자가 전하는 뜻을 이해하기는 간단했다. 인간이란 물질이다. 이것이 스노든의 비밀이었다. 창문에서 던지면 그는 떨어지리라, 불을 붙이면 그는 타버리리라, 그를 묻어버리면 그는 다른 쓰레기나 마찬가지로 썩으리라. 영혼이 사라지면 인간은 쓰레기이다. 그것이 스노든의 비밀이었다. 모두가 곪았다.

“난 추워요.” 스노든이 말했다. “난 추워요.”

“어이, 어이.” 요사리안이 말했다. “어이, 어이.” 그는 스노든의 낙하산 줄을 당겨서 하얀 나일론 천으로 그의 몸을 덮었다.

“난 추워요.”

“어이, 어이.”

무신론자가 아니라 어떤 특정 종교의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어이, 어이.”가 아닌, 원래 멋지고 경건하고 심오한 뜻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어이, 어이.”와 완전히 똑같은, 보다 형식화된 표준 문구를 되뇌일 수 있다는 뜻이겠지.

간혹, 저렇게 말문이 막힐만한 상황에서는, 누가 버튼이라도 꾹 누른 듯 튀어나오는 그 주절거림이 부러울 때가 있기도 하다.. 종교들이, 장례식처럼, 살면서 몇 번 안 치르는 상황들에 유난히 특화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난처함을 해소해주는 좋은 틈막이로서의 종교 가설’이라고 해두자. ㅋㅋ

그건 그렇고 오르라는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식스핏언더에 아서 역으로 나왔던 배우가 자꾸만 연상됐는데, 지금 찾아보니 66년생. 꽥. 완전 동안이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