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저는 보수적 전략이 우월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 수도 없이 많은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클릭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급진적인 변화를 시도했던 거의 모든 사례들이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극적 결말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호오가 갈림으로써 사회적 논란과 소모적인 대결구도를 초래하는 것 정도가 가능한 최선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실패는 노무현 전대통령도 몸소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이례적으로 대결구도조차 성립하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칭찬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신나게 욕하는 사람들만 많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수도 없이 많은  반례를 가지고 올 수도 있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 사례일 뿐입니다. 현재 세계 및 국내 정세는 안정세에 들어섰습니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이는 적절한 반례가 못되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수적 전략을 채택하여 성공한 사례는 얼마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적용 분야 역시 한정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급격한 변화 직후 원상태로 곧장 복귀하는 수구 반동을 칭찬하는 예 또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ps.  제목이 어디선가 본듯하다면 기분탓입니다.

Advertisements

응답

생명이란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생명의 신비를 알려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답니다.

어느날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했어요. 그는 그것을 읽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어요.

“그럼 우리 조상이 원숭이란 말이오? 우리 가문 시조께서는 서해안으로 흘러든 서국의 왕자라고 족보에도 다 나와있단 말이오.”

열심히 기도하던 와중에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했어요. 그는 그 책을 읽고 격분했어요.

“내가 유전자를 나르는 운반자란 말이오? 차라리 매일매일 똥 만드는 기계라고 하시오.”

결국 그는 그렇게 생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기도만 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보고 따졌어요.

“왜 그토록 기도했건만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어이 없다는 듯이 대답하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다윈을 보내주고 도킨스를 보내주고, 심지어 intherye를 보내어 이렇게 평소에 네가 좋아하던 짤막하고 재미있는 교훈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응답해주기까지 했는데도 네놈이 못 알아먹지 않았더냐.”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