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사회주의 주기도문

다시 공자와 예수 그리고 우리 의사 아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인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덜 고통스러운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내가 그들만큼이나 좋아하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 나의 고향인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 출신인 유진 데브스다.

간단히 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진 데브스는 내가 아직 네 살이 채 되지 않은 1926년에 생을 마감했다. 데브스는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다섯 번이나 출마했고, 1912년 선거에서는 총 투표수의 육 퍼센트에 육박하는 구십만 표를 획득했다(당시 직접 투표가 어땠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데브스는 선거 유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층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하층 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범죄형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존재하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혹시 사회주의적인 무언가가 여러분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는가? 훌륭한 공립학교나 전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처럼?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가재처럼 기어나올 때 당신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가? “하층 계급이란 것이 있는 한 나는 하층 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있는 한 나는 범죄형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있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예수가 설파한 산상수훈의 팔복도 그와 비슷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뭐 이런 식이다.

-커트 보네거트, 나라 없는 사람, 9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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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쿨잇

이 책에서 펴는 주장은 간단하다.

  1. “지구 온난화는 현실이며 인간이 일으켰다.” 현세기 끝 무렵에는 결국 인간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2.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격렬하고, 불길하며, 코앞에 닥친 결과에 대한 주장은 심하게 과장된 경우가 많다.” 그런 과장으로부터 좋은 정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3. 비록 좋은 의도일지라도 터무니없이 노력하기보다는 “지구 온난화에 대해 더 단순하고 더 현명하며 더 효율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실행하는 대규모의 값비싼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은 먼 미래까지도 파급 효과가 적거나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4. “지구 온난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 균형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세계에는 기아, 가난, 질병 같은 심각한 문제가 무척 많다. 수조 달러를 퍼부어 과감한 기후 정책을 추진하느니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더 많은 사람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도울 수 있을뿐더러 성공할 가능성도 훨씬 높다.
비외른 롬보르, 쿨잇, 26-27쪽.

저자분께서 대단히 친절하시다!

세상만사 다 귀찮은 분들께서는 이거 네 줄만 읽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셔도 되겠다.

2008년에 읽은 책 중 5권 꼽기

1. 캐치22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심할 때 읽어보세요.

2. “종의 기원”을 꼽을까 했는데, 이건 어차피 다들 읽으실 테니까, 인기곡 대신 숨은 명곡을 추천하는 빠돌이의 심정으로 인간의 유래

왠 지 고리타분할 것 같아서 미루기만 하다가 2008년에야 다윈의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솔직히 그저 원전으로서의 아우라 때문에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되어 있으리라고 내심 넘겨짚고 있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뻥뻥 내지르고 우기는 책은 아닐까 쪼끔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니까 킹왕짱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생 읽어봤던 그 어떤 것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기록이 깨질 수 있을 지조차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인류의 모든 책이 들어있는 도서관에 불이 나서 딱 한 권만 구해낼 수 있다면 저는 종의 기원을 들고 나오겠습니다. 마침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A.D. 200),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라고 합니다. 올해 안에 꼭 읽어보세요.

3. 회의적 환경주의자

기왕이면 환경 제대로 지키자는 책으로 읽었는데, 분위기를 대충 보니까 환경 안 지켜도 된다는 책으로 까이고 있는 듯하다;;; 헐.

4. 행복의 공식

전에 친구 생일에 러셀의 행복론을 선물한 적 있는데, 올해 다른 친구에게는 이 책을 선물했다.

5. 며칠 전까지였으면 타고난 반항아를 꼽을 뻔했는데, 연말연시에 걸쳐 읽은 “개성의 탄생”으로 변경.

이건 뭐 욕쟁이 할머니가 따로 없음. 설로웨이를 거의 황우석급으로 발라버리네.
그 개성적인 문체만으로도 올해의 책 등극. 다 만 실질적으로 세상에 추가하고 있는 정보면에서는 약간 미흡한 듯. 비유를 하자면 “xx 먹으면 10년을 더 산다!”는 돌팔이 약장수들 까는 것까진 참 유익한데, 끝에다 “인간의 수명에는 순환계, 호흡계, 신경계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뭐 이런 걸 덧붙인 느낌. 한국에 허준이 있다면 미국에는 프로이트가 있는 듯.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사형 제도에 대한 태도의 유전 가능성은 0.50이며, 조직적인 종교는 0.46, 독서는 0.37이다.”

ps. 벼.. 별로 다독가는 아니라능 !

[펌] 로봇에게 육식을 묘사하기

“하지만 말해다오, 미얌락. 너는 이리저리 걷고 철벅거리고 쩝쩝거리고 부들부들 떨고 몸을 흔드는 에너지를 어떻게 얻는가?”

공주가 물었다.

“공주님, 제가 사는 그곳에는 털이 없는 변종이 아닌 다른 창백얼굴들도 있습니다. 주로 네 발로 다니는 창백얼굴들인데, 저희는 구멍을 내어 그들을 죽이고, 그들이 남긴 부분을 썰고 다지고 찌고 굽습니다. 그런 다음 저희는 그들의 육체를 저희 육체 안에 합칩니다. 저희는 376가지의 서로 다른 살해 방법과 28597가지의 서로 다른 시체 조리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이라고 불리는 구멍을 통해 그들의 몸을 저희 몸에 채워 넣는 것은 저희에게 끝없는 즐거움을 줍니다. 사실 우리에게 시체 조리의 기술은 우주비행보다 더 높이 평가받고, 위胃여행, 혹은 미식gastronomy이라는 용어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문학astronomy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공동묘지 놀이를 하고 논다는 것인가? 너희의 네 발 달린 형제들을 담는 관 노릇을 하며?”

이 질문은 위험한 저의를 품고 있었으나, 현자에게 지시를 받은 페릭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이것은 놀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필요를 위대한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렘. 사이버리아드. 335쪽.

[펌] 쟈니, 전장에 가다

달튼 트럼보는 『쟈니, 전장에 가다Johnny Got His Gun』를 썼습니다. 그 때문에 트럼보는 매카시 시대 때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옥까지 끌려갔습니다. 한동안 그의 이름으로는 어떤 글도 쓸 수 없었죠.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 책을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하셨습니까?

예술작품이 재미없는 강의보다 핵심을 정확히 전달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책을 필독서로 선정한 겁니다. 나는 전쟁을 주제로 10회에 걸쳐 강의 하면서 매번 전쟁을 반대하는 내 감정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어떤 학생이 하룻밤에 『쟈니, 전장에 가다』를 읽고 받은 충격이 열 번의 강의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달튼 트럼보는 전쟁의 잔혹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팔다리를 모두 잃고 눈과 귀까지 멀고, 모든 감각마저 잃어버린 채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군인이 전장에서 발견됩니다. 그야말로 심장이 뛰는 상반신과 뇌만 남은 군인이었습니다. 이 군인은 전장에서 구출되어 병원으로 옮겨지고 침대에 눕혀집니다. 이 소설은 이 군인이게 남은 뇌의 기능과 생각으로 꾸며졌습니다. 소설은 두 가지 얘기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상반신만 남은 군인의 생각입니다. 그는 생각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의 과거와 삶, 그가 살았던 작은 마을, 여자 친구, 그를 대대적으로 배웅하며 전장으로 보낸 마을 시장,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전투……. 그는 이 모든 것을 떠올리며 하나씩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병상에 누운 채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할 방법을 궁리합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감각 기능도 상실해서 진동만 겨우 느낄 수 있습니다. 햇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햇살의 따뜻함과 저녁의 서늘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감각만으로 그는 머릿속으로 달력을 만들어갑니다. 마침내 그에게 동정심을 가진 간호사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다행히 간호사는 영리해서 그가 머리를 가구에 부딪치면서 전달하려는 게 뭔지를 알아챕니다. 그는 머리를 가구에 부딪침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고 간호사는 그 메시지를 해독합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얘기를 나눕니다.

군 고위층이 그에게 훈장을 주려고 병원을 찾으면서 소설은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간호사를 통해서 그들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는 머리를 가구에 부딪치며 암호로 대답합니다. 그들에게 원하는 걸 말합니다. 물론 그가 원하는 걸 그들은 줄 수 없습니다. 그에게 팔과 다리를 어떻게 줄 수 있고, 잃어버린 시력을 어떻게 회복시켜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학교와 교실, 교회 등 사람이 있는 곳,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자신을 가리키며 그게 전쟁이라 말하고 싶다면서요. 하지만 그들은 규정에 어긋나므로 그런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그가 잊혀지길 바랍니다.

우리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배계급은 우리가 군인들을 잊기를 바랍니다. 지배계급은 다리를 잃고, 팔을 잃고, 시력을 잃은 채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쟈니, 전장에 가다』의 주인공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132-134쪽.

[펌] 비동물성 고기는 가능할까?

동물권 « decadence in the rye

‘스컴 스키밍’은 배우기가 어렵지 않았다.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치킨 리틀’에게서 잘라낸 지 얼마 안 되는 슬라이스로 아침을 먹고, ‘커피스트’로 입가심을 한다. 커버올 작업복을 입은 다음 그물을 들쳐 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가운 햇볕을 쬐며, 몇 에이커나 되는 해조류가 덮인 탱크 위를 걷는다. 천천히 걷는다면, 30초 정도마다 맛있는 탄수화물이 숙성되어 튀어나온다. 그 위를 스키머)더깽이를 긁어내는 국자)로 살짝 긁어내어 수직 갱도 속에 던져 넣는다. 그 속에서 그것들은 한데 뭉쳐지거나, 변형 처리되어 치킨 리틀에게 먹일 포도당이 된다. 그리고 치킨 리틀은 슬라이스되어 배핀랜드에서 리틀아메리카까지 사는 사람들이 먹을 식량으로 공급된다. 한 시간마다 물통의 음료수를 마시고, 소금 캡슐을 삼킨다. 두 시간마다 5분씩 쉰다. 해가 질 때면 커버올을 벗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역시 치킨 리틀의 슬라이스). 그리고 자기 개인 시간을 보낸다.

프레더릭 폴과 콘블루드의 판타지 소설, 『우주 상인』에서 미래의 식생활에 대해 상상해본 내용이다. ‘치킨 리틀’은 거대한 고깃덩어리로, 직경 수백 피트나 되며, 해조류를 먹으며 배양기 속에서 자란다. 이 아이디어는 공상과학소설 작가들보다 더 저명하고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1932년,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썼다. “앞으로 50년 후면, 우리는 닭을 통째로 키워서 그 가슴살이나 날개만 먹고 만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적절한 수단을 통해 그런 부위만을 키우면 되는 것이다.” 처칠의 예언은 미래의 식량 생산보다는 히틀러의 침략 무기 쪽에서 더 나았지만, 그건 그의 타이밍이 어긋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물권리 운동 쪽에서는 내연기관이 수백만 마리의 수송용 소와 말들의 고통을 없애준 것처럼 결국 ‘시험관 고기’가 지금 식육용으로 희생되고 있는 수십억 마리의 동물의 고통을 없애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미 채식주의 햄버거, 소시지, 베이컨 등등의 가짜 고기 제품들을 보았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유행하면서 제례 의식에 고기가 쓰이는 일이 없어졌으며, 황제의 요리사들은 글루텐과 두부를 써서 여러 가지 고기 요리나 해물 요리와 유사한 맛의 요리를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황제는 계속해서 중국의 전통 요리들을 즐길 수 있었다. 오늘날 이 전통은 아직도 중국계 채식주의자 식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채식주의자들은 ‘가짜 고기’에 반대하는데, 그것이 고기야말로 음식의 중심이라는 인상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육식자들도 이를 싫어하는데, 그 맛과 질감이 고기와는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관 고기’는 가짜 고기 같지 않고, 진짜 고기와 같은 맛과 질감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론상으로는 배양기에서 고기를 키우는 편이 동물을 통째로 키우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처칠의 말처럼, 먹을 수 없는 뼈나 건강에 좋지 않은 지방, 그리고 내키지 않는 내장까지 만들 것 없이 곧바로 스테이크나 닭가슴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양 고기는 공장식 농장 고기보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적을 것이다. 어떤 배설물도 내놓지 않을 테니까.

과학자들은 이미 실험실에서 소량의 근육 조각을 생산했다. 2001년,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과학자 한 사람이 두 명의 네덜란드 기업인과 함께 인공육 생성법 특허를 신청했다. 근육 세포를 영양소 용액에 넣고 그 분열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네덜란드 사람들 말고도 미국에서 몇몇 과학자가 인공육 생성을 연구했으나, 아직은 성공사례가 없다. 하지만 결국은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진짜 문제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고기가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얻은 고기에 비해 경제성이 있느냐이다.

어느 과학자는 지금 실험실에서 생성에 성공한 근육 조각이 킬로그램당 500만 달러에 해당된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 컴퓨터를 하나 만드는 데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보통 가정에서 하나씩 두고 쓸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언젠가 배양 고기가 식량 생산의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면, 우리는 육식에서 아무런 윤리적 문제점을 보지 않게 되리라. 물론 이때 원형 세포는 살아있는 동물의 세포이다. 그러나 그런 세포는 무한히 분열-복제될 수 잇으므로, 이론상으로는 한 마리의 동물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기를 공급하고도 남게 된다. 사람의 식사거리가 되기 위해 어떤 동물도 고통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피터 싱어, 짐 메이슨. 죽음의 밥상. 376-378쪽.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우리 시대의 독특한 현상 중의 하나는 변절한 자유당원이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친숙한 주장과 더불어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적인 수단으로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유표되는 경향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적을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붕괴시켜야 한다. 그러면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그 적은 항상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상을 유표시켜 민주주의를 ‘객관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모든 독립적인 사상의 파괴를 포함한다. 이 주장은 러시아인의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제아무리 열렬한 친러시아파라도 모든 희생자들이 기소된 모든 죄를 지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단적인 사상을 유지함으로써 정권에 ‘객관적으로’ 해를 끼쳤고, 그러므로 학살하고 거짓 혐의를 씌워 망신을 주는 것도 매우 정당하다는 것이다. (…)

나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을 잘 알고 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과 자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모두를 알고 있다. 나는 다만 그러한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사실과 사백 년에 걸친 우리 문명이 그러한 주장에 반대되는 정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만 말하겠다.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현재의 러시아 정권이 사악한 정권이라고 믿어왔고, 승리를 바라는 전쟁에서 소비에트연방이 우리와 동맹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나는 요구한다. 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한 구절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존 밀턴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선택하겠다.

옛 자유라는 알려진 법칙으로

여기서 이라는 단어는 지성의 자유가 전통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독창적인 서구 문화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점을 강조한다. (…)

-조지 오웰. 『동물 농장』. 펭귄 클래식 코리아. 부록 1 「조지 오웰 서문」. 172-176쪽.

조지 오웰도, 국보법에 반대합니다. ㄳ.

21세기 대한민국도 서구 문화의 직계 후손입니다.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