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닦는 휴지 이야기

이미 몇 년 된 이야기입니다.

훈련소에서 똥 닦는 휴지를 일인당 한 달에 하나 줬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똥 닦는 습관이 각기 다르죠. 훈련소에서 제가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제 휴지 사용량이 상당히 적은 편이고, 또 규칙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칸수를 재어 끊어 쓰는 사람부터가 별로 없더군요. 손에 후두루룩 말아서 쓰던데 그렇게 한 다음 어떻게 쓰는지는 저도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첫 달에 휴지 하나씩을 나눠줬습니다. 첫 달의 반도 안 지났을 무렵부터 자기 분량의 휴지를 다 써버리고 남의 휴지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명이 한 방에서 동고동락하는 뜨거운 전우애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서로 팬티까지 훔쳐가는 배틀로얄의 세계에서는 다들 자기에게 남은 휴지의 양에 대해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빌려 쓰고, 구걸해서 쓰고, 심지어 몰래 쌔벼쓰는 인간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훈련소를 나와 보충대로 들어갔던 두번째 달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 땐 인간의 학습능력이란 것에 대해 큰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치약과 구두솔로 닦아야 했던 훈련소 새 막사의 화장실과 달리 수십년 된 보충대의 화장실은 바가지로 물을 퍼 내려야 했고, 소화전 호스로 청소 대작전을 펼쳐야만 했습니다. 물론 기간병 화장실은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고 있었지만, 청소는 할 망정 거기서 쌀 순 없었죠. 교직원 화장실마냥 드럽고 치사한 느낌이랄까.. 추석이 끼는 바람에 그런 보충대에서 일주일 남짓 살아가는 동안 단 한번도 똥을 싸지 않았던 용자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동기들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저는 첫날에 굴복하고 코를 막고 울면서 닫히지 않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양손으로 꼭 부여잡고 밑이 보이지도 않는 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똥을 싼 후 바가지로 물을 퍼다 똥물을 내렸었거든요.

보충대를 나서기 하루 전쯤인가 처음으로 px를 이용할 시간이 주어집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동기들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은 바로 두루마리 휴지였습니다. 은전한닢이 갖고 싶었다던 아저씨의 마음을 똥구멍 깊숙히에서부터 사무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하얗고 두꺼운 휴지 한 롤. 난생 처음 가본 피엑스에서 이거 하나를 샀더니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 휴지 한 롤을 가슴에 품고 고이고이 쓰다듬으며 먹었던 과자가 뭐였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나도 마음껏 똥 닦을 휴지를 쓸 수가 있구나 하는 기대에 부풀어 그날 저녁밥은 많이도 퍼먹었습니다.

그 다음날 의정부 캠프 잭슨에 들어가게 됩니다. 카투사 교관은 아이들 간격을 벌려놓더니 바닥에 개인 물품을 쏟아놓으라고 합니다. 그가 제 휴지를 집어들며 이런 건 필요없다며 냅다던져버렸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올 뻔했습니다. 아니 왜. 아니 도대체 왜?! 내 똥은?! 내 똥은 어떡하라고?!

한 방에 서너 명 들어가는 방 두 개마다 하나씩 욕조 딸린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탐스러운 미제 휴지가 걸려 있었습니다. 비록 보송보송 엠보싱도 아니고, 기름종이처럼 거친 미제 휴지였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 공용 휴지를 쓰라니 양키놈들의 몰상식함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부터 마음껏 풀어쓰는 룸메이트들을 보며 이제 앞으로 저 휴지가 떨어지면 나는 똥을 쌀 때마다 샤워기로 온수 비데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잠시. 휴지는 떨어지면 바로바로 재보급되었습니다. 쓰는만큼 쓰고, 다 쓰면 새로 줬습니다. 울 뻔했습니다. 더 이상 변기 청소를 치약 묻힌 구두솔로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소화전 호스를 땡겨다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ajax와 paper towel과 409 spray가 즐비했습니다. 오오 뷰티풀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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