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한다

원문: http://www.theonion.com/content/opinion/people_like_food

오늘날 사람들이 뭔가에 의견을 함께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늘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항상 잘 차려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만화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이 나오는 것만을 보고 싶어한다. 중간 지대는 어디에 있는가? 없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음식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한다.

자 내 주장에 반대하기 전에, 잠깐만 생각을 해보시라. 나랑 얘기해봤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하더라. 우리 엄마도 음식을 좋아한다. 내 동생도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 양아버지는 우리 엄마보다도 음식을 더 좋아한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도 음식을 좋아할 것이다. 그와 식사를 함께 했던 적은 결코 없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밥상 앞에서 커다란 사발에 마카로니 앤 치즈를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노숙자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허구헌날 내게 돈을 구걸하더라. 내가 보기에 음식이란 상당히 인기가 있는 듯하다.

또, 잘 생각해 보면, 음식이란 것에는 좋아할 만한 점이 참 많기도 하다. 맛도 있고, 먹기도 좋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뿐이지만, 그 두 가지만으로도 나는 음식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방금 막 또 하나가 생각났다. 음식은 아마도 우리가 입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건강에도 가장 좋은 것일 듯하다. 못 믿겠으면 아무 의사한테나 물어봐도 좋다.
그리하여, 과연,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 람들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서 큰 게 하나 있는데, 내가 지금 그것을 논박해보겠다. “편식하는 사람들은요? 그 사람들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이 의견의 일부는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편식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당장 주어진 음식들을 전부 다 싫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식 하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모든 음식을 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 직도 내 말을 못 믿겠는가? 모든 반대자들을 조용하게 만들 예시를 들어보겠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에, 내 친구 데일은 아스파라거스를 먹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혹시 얘는 음식을 싫어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가 닭구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즉, 그는 닭을 좋아하는데, 닭은 음식이므로, 따라서 그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다. 거 봐라. 편식하는 사람들도 음식을 좋아한다.

이건 사람들이 음식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많은 예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밖 에 나가보면 모두를 위한 음식들이 있다. 햄버거가 좋은 예다. 하지만 햄버거를 싫어한다고 해도, 고려해야 할 다른 음식들이 많이 존재한다: 스파게티, 치킨 너겟, 치즈버거, 씨리얼, 베이컨, 팬케익, 팟파이, 유제품 등. 어떤 사람들은 스타버스트 사탕이나 치즈크래커처럼 조리할 필요도 없는 음식을 좋아한다. 또한 찬 음식이나, 유동식, 부드러운 음식, 딱딱한 음식, 젤리를 채운 음식 같은 것들도 있다. 충분히 열심히 살펴보기만 한다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하나쯤은 찾게 될 거라는 점이 분명하다고 본다.

당신도 피자는 좋아하겠지.

사 람들은 음식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음식을 먹는 사이사이에 또 시간을 내어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래서 간식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맛도 좋은 간단한 음식 말이다. 수퍼마켓의 간식 코너는 아주 크고, 선택의 폭도 넓다.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해서 돈 주고 살 것이라는 사실을 수퍼마켓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걸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으며, 당신도 잘 들어보기만 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내가 통계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한 98%쯤은 되는 사람들이 음식을 매일 먹을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이나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점심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비율은 정말 높을 수밖에 것이다. 그들이 그 시간에 달리 무얼 하겠는가? 아기들조차도 음식을 못 얻어먹으면 울어댄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우리가 실질적으로 음식을 먹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는 증거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음식을 그토록 좋아하는 걸 수도 있겠다.

음식은 주변에 늘 있어왔다는 것: 이것은 하나의 팩트다. 마르코 폴로가 아시아에서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에도 음식은 거기에 있었다. 첫 추수감사절 때에도 음식은 거기에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류가 언제나 해온 바로 그것이다. 음식이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음식이 없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인류라고 부를 수나 있었을까? 우리는 아마도 꽤나 허기가 져 있거나, 아니면 죽어있을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제 마음을 열고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 진짜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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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만능론

결혼 직후 나는 마인 강변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독일령 비스바덴으로 전보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압수당해 산더미같이 쌓인 독일군 전문서류–미국 산업계가 사용함직한 발명품이나 제조법을 탐지한 서류들을 가려내는 민간인 기술진을 책임지게 되었다. 내가 수학도 화학도 물리학도 모른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내가 루스벨트 농림성에 취직했을 때 일찍이 농장 근처에 가본 일도 없었고 하다 못해 창틀 위에 아프리칸 바이올렛의 꽃분 하나 키워 본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문제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인문학자가 감독하지 못할 일이란–적어도 당시엔 그렇게 널리 믿어지고 있었다–아무것도 없었다.

커트 보네거트. 제일버드. 웅진. 65-67쪽.

인문학은 원래 만능이라능. 인문학의 과학 제어 능력은 그저 당연히 따라붙는 덤에 불과하다능.

[펌] 우리는 왜 패닉하나?

출처:
http://www.sciam.com/article.cfm?id=why-do-we-panic

우리는 왜 패닉하나?

스트레스에서 두려움을 거쳐 본격적인 공황 장애에 이르는 경로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가 당사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소식을 제공한다

할 아르코위츠와 스캇 O. 리리엔펠드 씀.

By Hal Arkowitz and Scott O. Lilienfeld

“퇴근하고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중이었어요,” 데이빗이 보고했다. “당시 스트레스가 아주 심했죠. 긴장은 했지만 집에 가서 쉬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빠방! 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았어요. 땀을 흘리고 덜덜 떨었죠. 생각들이 마구 오갔고, 내가 미치거나 심장마비가 오는 건가 걱정이 되었어요. 차를 길가로 빼고 응급실로 데려가 달라고 아내에게 전화했어요.”

데이빗의 공포는 이유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급실 의사는 데이빗(필자 중 한 명인 Arkowitz가 맡았던 치료 환자들 몇몇의 짬뽕)에게, 그가 공황 발작을 겪었던 거라고 말해주었다.
진 단 및 통계 매뉴얼Diagnostic and Statistica Manual(DSM)의 최근 판에서는 공황 발작을,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숨이 가빠짐, 땀 흘림, 떨림, 그리고 미치거나 분별력을 잃거나 죽는 것에 대한 걱정을 수반하는, 강렬한 공포나 격렬한 불안의 갑작스럽고 불연속적인 경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발작은 분명한 자극도 없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더더욱 두려움에 질리게 만든다. 인구 중 약 8에서 10퍼센트가 이따금씩 발작을 경험하지만, 5퍼센트만이 공황장애로 발전한다.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들 대부분이 때때로 경험하는 것처럼 단순히 걱정들이 쏟아지는 것과는 다르다. 공황 발작을 겪었던 환자들은 전형적으로 그것을 자신이 겪어본 중에 가장 무서웠던 사건으로 묘사한다.

연구를 통해 중요한 진전들이 이루어졌는데, 무엇이 첫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해명은 애초에 발작을 피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스트레스가 치명적 수준까지 차오르면, 아주 작은 양의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것으로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발작을 일으킨 사람은 그 사건이 느닷없이 찾아온 것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패닉 쪽으로 기울어진 유전적 경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심리학자 Regina A. Shih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한 리뷰 글에서 썼다. 그 장애는 가계를 따라 내려오며, 일란성 쌍동이 중 한 쪽이 공황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쪽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유전적으로 덜 비슷한 이란성 쌍동이보다, 두배에서 세배 높아진다. 이러한 발견이 환경 요인을 배제시키진 못하겠지만, 유전적 요소를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공황 장애는 환자들의 삶의 질에 심각한 제한을 가져온다. 환자들은 또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로 고통받기도 하고, 관련된 상황을 피하려 하기도 한다. 공황 장애의 진단을 받으려면, 환자는 난처한 상황(말하자면 교실 같은 공공장소)이나, 도움을 얻기 어려운 상황(예를 들어, 주변에 의료 시설이 없는 지역)에서 또 다시 발작을 일으킬까봐도 걱정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광범위한 회피를 수반하는 공황 장애에는, 광장공포증이 딸린 공황 장애로 진단이 내려진다. 극단적인 경우 환자들은 꼼짝없이 집에만 묶여있게 될 수도 있다.

정상적인 두려움에서 심각한 공포로

그토록 무력하게 만드는 발작의 근원은 무엇일까? 공황장애 및 관련 장애들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선구적 연구를 해온 보스턴 대학교의 심리학자 데이빗 H. 발로우David H. Barlow 같은 사람들은, 우리의 정상적인 “투쟁 도주 fight or flight” 반응이 심박수를 높이고, 실재하는 위험이 없을 때의 “오경보false alarms”(이와 반대로 실재하는 위험에 직면했을 때의 똑같은 반응은 “경보true alarm”라고 한다.)가 숨을 가쁘게 할 때 공황발작을 야기된다고 본다.
우리가 경보나 오경보를 경험할 때, 우리는 그로 인해 당시 나타났던 생물학적 반응과 심리학적 반응을 연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연합은 “학습된 경보learned alarms”이 되어 나중에 공황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외 부 환경과 내부의 신체적 계기(늘어난 호흡수 같은 것)가 둘 다 학습된 경보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하면 공황 발작을 경험하는데, 이는 그러한 생리학적 자극이 공황 발작 때와 유사한 신체 감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단발성 발작만을 경험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본격적인 공황 장애로 진행되는가? 발로우는 그와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종합하여 불안 장애의 통합 이론을 개발했다. 그 이론은 공황 장애로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소인들을 제시하고 있다.

  • 일상 생활의 사건들에도 과잉 반응을 하게 만드는 불안을 일으키는, 일반화된 생물학적 취약성.
  • (부모의 과잉 보호 같은) 어린 시절의 학습으로 인해, 세상이란 위험한 곳이고, 스트레스는 압도적인 것이라 통제될 수 없다는 불안을 일으키는, 일반화된 심리학적 취약성.
  • 어린 시절에 어떤 상황이나 사물이 위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고 학습하게 되는, 특수한 심리학적 취약성.

이 러한 취약성들을 가진 사람이 장기적인 스트레스와 공황 발작을 경험할 때 공황 장애로 진전된다. 첫번째 발작은 심리학적 취약성들을 활성화시키고, 외부와 내부의 계기에 대한 과민증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약한 자극제를 함유한 약만으로도 발작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좋은 소식은 있다. 특히 두 가지 발견이 공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안심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모든 공황 발작이 알려진 사건을 통해 유발된다. 당사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이것을 앎으로써 예측할 수 없다는 느낌에서 오는 걱정을 덜 수 있다. 둘째, 공황 발작이란 위험의 부재 상황에서 투쟁-도주 반응이 오작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움으로써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기초 연구는 우리가 공황 장애를 이해하는 것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치료법도 마련해주었다. 특히, 발로우와 그의 동료들은, 당신의 불안과 공황의 극복Mastery of Your Anxiety and Panic이 라는 저서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공황 통제 치료에 대해 썼다. 그 치료는 공황 장애에 대한 교육과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내부 및 외부의 단서들로의 다소 점진적인 노출을 통해, 신체 단서들의 파국적 해석을 변화시킴으로써 더 이상 발작을 유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치료법은 대부분의 사례에서 장기적으로 해당 장애에 대한 약물 요법을 능가했다.

[펌] 쟈니, 전장에 가다

달튼 트럼보는 『쟈니, 전장에 가다Johnny Got His Gun』를 썼습니다. 그 때문에 트럼보는 매카시 시대 때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옥까지 끌려갔습니다. 한동안 그의 이름으로는 어떤 글도 쓸 수 없었죠.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 책을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하셨습니까?

예술작품이 재미없는 강의보다 핵심을 정확히 전달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책을 필독서로 선정한 겁니다. 나는 전쟁을 주제로 10회에 걸쳐 강의 하면서 매번 전쟁을 반대하는 내 감정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어떤 학생이 하룻밤에 『쟈니, 전장에 가다』를 읽고 받은 충격이 열 번의 강의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달튼 트럼보는 전쟁의 잔혹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팔다리를 모두 잃고 눈과 귀까지 멀고, 모든 감각마저 잃어버린 채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군인이 전장에서 발견됩니다. 그야말로 심장이 뛰는 상반신과 뇌만 남은 군인이었습니다. 이 군인은 전장에서 구출되어 병원으로 옮겨지고 침대에 눕혀집니다. 이 소설은 이 군인이게 남은 뇌의 기능과 생각으로 꾸며졌습니다. 소설은 두 가지 얘기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상반신만 남은 군인의 생각입니다. 그는 생각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의 과거와 삶, 그가 살았던 작은 마을, 여자 친구, 그를 대대적으로 배웅하며 전장으로 보낸 마을 시장,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전투……. 그는 이 모든 것을 떠올리며 하나씩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병상에 누운 채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할 방법을 궁리합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감각 기능도 상실해서 진동만 겨우 느낄 수 있습니다. 햇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햇살의 따뜻함과 저녁의 서늘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감각만으로 그는 머릿속으로 달력을 만들어갑니다. 마침내 그에게 동정심을 가진 간호사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다행히 간호사는 영리해서 그가 머리를 가구에 부딪치면서 전달하려는 게 뭔지를 알아챕니다. 그는 머리를 가구에 부딪침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고 간호사는 그 메시지를 해독합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얘기를 나눕니다.

군 고위층이 그에게 훈장을 주려고 병원을 찾으면서 소설은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간호사를 통해서 그들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는 머리를 가구에 부딪치며 암호로 대답합니다. 그들에게 원하는 걸 말합니다. 물론 그가 원하는 걸 그들은 줄 수 없습니다. 그에게 팔과 다리를 어떻게 줄 수 있고, 잃어버린 시력을 어떻게 회복시켜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학교와 교실, 교회 등 사람이 있는 곳,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자신을 가리키며 그게 전쟁이라 말하고 싶다면서요. 하지만 그들은 규정에 어긋나므로 그런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그가 잊혀지길 바랍니다.

우리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배계급은 우리가 군인들을 잊기를 바랍니다. 지배계급은 다리를 잃고, 팔을 잃고, 시력을 잃은 채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쟈니, 전장에 가다』의 주인공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132-134쪽.

진실로 향하는 길

… 잘못된 사실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과학의 진보에 큰 해악을 끼친다. 그러나 잘못된 견해도 어느 정도의 증거를 바탕으로 지지된다면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건전한 즐거움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잘못으로 향하는 경로 하나가 폐쇄되는 동시에 진실로 향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기불이님께서는 과학책에 유통기한을 두자고 하십니다만, 흥! 1809년에 태어난 사람이 쓴 이 과학책, “인간의 유래”를 읽는 기쁨은 매우 컸습니다. 이 책에 유통기한을 둔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옛날옛적 유클리드의 과학책? “기하학 원론”이 직관과 연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희열을 준다면, 이 책은 경험과 귀납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순수한 기쁨을 준다고나 할까요. 신중함과 자신감을 모두 갖춘 성실한 지성만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입니다. 중간에 사슴이 어쩌고 풍뎅이가 어쩌고 줄줄이 나열할 땐 좀 졸렸지만 -_-; 그래도 지루한 부분을 견디고 나니까 막판에 다시 감동의 폭풍이 휘몰아칩디다.

“이거 왼쪽을 보니까 1234가 있고 오른쪽을 보니까 6789가 있음. 이건 아마도 5인 듯 ㅇㅇ.”

“1, 2, 3, 4, 5, 6, 7, 8, 9 다음에는 아마도 10이 올 것 같음. ㅇㅇ”

기본적으로 미취학 아동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렇게 간단한 논리만 가지고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다니, 짱 아닙니까? 열심히 지구 전역에서 동식물 표본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던 시대에 드디어 다윈이 생명의 주기율표를 발견한 겁니다. 사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던지라 월리스의 공동발견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다윈이 아니었더라도 생물 진화의 이론은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윈만큼 잘, 성실하게, 탁월하게, 간단하게™ 정리해서 내놓으려면 백년은 걸렸을 듯..

다윈이 어째서 중요한가

Why Darwin matters -Richard Dawkins

다윈이 어째서 중요한가

찰스 다윈에게는 큰 아이디어가 있었다. 분명 사상 최강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모든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그러하듯이, 그것 역시 매우 단순하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로 초보적이고, 눈부시도록 확실해서, 그 이전의 사람들도 그 근처까지 가보았으나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볼 생각조차 못했을 정도이다.

다윈에게는 다른 훌륭한 아이디어들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산호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그의 독창적이면서도 대체로 옳았던 이론이 그러했다. 하지만 생물학의 나머지 부분이 말이 되도록 해주는 지배 법칙이자 인도 원리를 제공한 것은, 『종의 기원』에 실린 자연선택이라는 그의 큰 아이디어였다. 그 차갑고 아름다운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자연선택의 설명력은 이 행성 위의 생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 중에, 원리상으로조차, 모든 행성 위의 생명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것이다. 우주 다른 곳에 생명이 존재한다면(나는 아마 그럴 거라고 보는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어떤 변형이 그 생명 존재의 기반으로 밝혀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윈의 이론은 외계 생명이 아무리 이상하고 낯설고 기묘할지라도 (그리고 나는 아마도 그것이 상상 이상으로 기묘할 것이라고 보는데) 똑같이 잘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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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재미있는 책이에요. 기회가 닿으시거든, 모쪼록 꼭 읽어보세요.

127-128쪽. 1부 마지막 부분.
회의주의자들은 우리가 이미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폭로하기를 즐기는 대단히 인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추론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일이 재미있기는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회의주의자이자 비판적 사고자인 우리는 감정적인 대응을 넘어서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잘못 사고하게 되는지, 과학이 어떤 식으로 사회적 통제와 문화적 영향을 받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계의 운행 방식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뿐만 아니라 사이비 과학의 역사까지 이해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운동들의 전개 양상을 보다 큰 그림으로 그려 보면, 그리고 그네들의 사고가 어떻게 잘못되어 갔는지를 헤아려 보면,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이 점을 가장 훌륭하게 말해 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노력해 온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서도, 통탄하기 위해서도, 모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회의주의자가 까발리는 사기와 자기기만의 세계 이야기를 듣고 나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죠. ‘바보 멍청이라서’라는 답이 당장 떠오르지만, 저자가 스피노자를 인용하면서까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빠지면 얼마든지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수가 있다는 것이겠죠. 뒤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얘기하면서 홀로코스트 얘기가 나올 땐 정말 슬펐어요. 꼭 홀로코스트가 아니라도 그렇게 무서운 얘기를 들으면 마찬가지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그 놈들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가장 쉽고 편하겠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빠진 오류에 대해 주로 다루는 책이지만,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사람들이 빠진 오류(그것을 오류라고 부를 수 있다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손가락질이 아니라 바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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