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순서에 따른 정치적 태도

파시스트와 절대군주제주의자들

396쪽. 파시스트와 절대군주제주의자들

영국의 심리학자 한스 이젠크는 정치사상의 2차원 모형을 주창했다. 그는 보수주의/자유주의 차원 말고도 정치적 태도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박약/완고 차원을 제안했다. 이젠크의 모형은 정치적 목표와 전술 사이의 구분을 강조한다. 완고한 개인들은 단호한 정치적 행동을 선호한다. 완고한 개인들이 보수주의 정치를 신봉할 경우 그들은 통상 법과 질서, 강력한 군대, 사형 제도의 필요성을 지지한다. (생략) 보수주의든 자유주의든 완고한 개인들은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프랭크 설로웨이, 타고난 반항아, 393-394쪽.

전에 사형제도 얘기하면서 알기 쉬운 예시로 인종 차별 얘기 좀 꺼냈던 적 있는데, 일면 비슷하다고 한 것을 가지고 똑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인종차별은 반대하지만 사형은 찬성하는 사람 기분을 좀 상하게 했던 것 같아서, 내가 좀 심했나 싶은 기분이 든 적이 있다.

근데 책을 읽다가 위와 같은 도표를 읽고 나니, 까짓거 뭐 비유인데, 따지고 보면 못알아듣는 사람이 더 문제인 거고, 너무 식상하기 짝이 없는 비유였던 듯도 싶어서, 기왕 하는 비유 앞으로는 좀 덜 식상하고 상큼한 예시를 좀더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 도표를 참고하려고 했는데, 강제병역은 아직 예로 삼기엔 한국사회에서 사형제도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다음 번에는 유대인이나 파시스트, 아니면 절대 군주제를 써먹어 보는 수밖에 없겠다.

제 입장

입장을 밝히는 블로그를 운영하리라 마음 먹었으니 일단 밝혀둡니다.
혹시 읽다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시더라도 때리지 말고 말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굽신굽신.

귀찮으신 분들을 위한 한줄 요약:
친구놈이 넌 왠지 촛불집회 나갔을 거 같다 그러길래, 아직은 안 나갔다고 그랬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는 미국산 소고기의 한국 수입에 딱히 반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한미FTA에도 딱히 반대한다고 보기 좀 그렇습니다. 반대급부나 대책이 부족한 졸속 협상과 졸속 타결에는 당근 반대합니다만, 이미 외국 정부를 상대로 협상되고 타결된 것을 어떻게든 도로 홀랑 뒤집어야만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까지 격하게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복덕방 장기판에도 무르기는 없기 때문입니다. 재협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신 내어줄 무언가-아마도 더 큰-를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번 줬으면 땡이었어요. 미국이 호구도 아니고.

저는 또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서 이명박을 찍지 않았읍니다만, 어쨌거나 “우리”가 뽑은 적법한 대통령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쇠고기 수입 조건을 완화해주는 대신에 이명박 통장으로 미국 정부의 뒷돈이 들어왔다는 것이 밝혀지거나 하지 않는 이상, 이번 협상이 탄핵 사유까지는 절대로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소고기 협상을 비롯한 외교 행위는 대통령이 적법하게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 완전히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말 나온 김에, 저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고 있습니다만, 이명박이 아싸리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그게 탄핵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탄핵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걸 이유로 탄핵하자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만, 마찬가지 맥락에서 때리지 않아도 된다면 때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경찰의 과도하고 성급한 폭력 행사에 반대합니다. 공권력의 힘은 매뉴얼에서 나오지 군화발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치적 행동이 괴담에 기반하는 것이 약점이 되듯이, 공권력이 군화발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은 공권력 정당성의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때리라고 있는 곤봉일지라도, 언제 어떻게 누구를 때려야 한다는 것이 엄격하게, 구체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제한되지 않는다면 조폭이 들고 있는 각목이나 빠따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공권력의 폭력 사용 자체가 반대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폭력은 공권력의 기반입니다. 기반이 튼튼할수록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만요. 또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의 선례가 쌓이고 쌓일수록 그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이겠죠.

공자님께서는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십만명쯤 모이면 그 중에 반드시 강간범, 주정뱅이, 외계인 등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위대에서 간혹 불거지는 개별 폭력 행위에 좀 더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도 그 많은 젊은 남자놈들 중에 막나가는 놈 한둘 없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한 일이겠습니다만, 갸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하고, 만약 드러나더라도 막바로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교육받고 훈련받은 체계적 조직만이 갖출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저 개개인이 모였을 뿐인 시위대가 종종 폭주하는 것은 경찰이 폭주하는 것보다 좀 더 관대하게 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인데, 버스를 탈 때마다, 대체 왜 버스기사들은 신호등과 차선을 안 지키고 과속을 하면서 배차 간격도 안 지키고 운전을 할까- 궁금했습니다. 택시가 그러는 건 쉽게 이해가 갔습니다. 난폭운전이 개인의 이익으로 직결될 테니까요. 하지만 버스 기사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럴까 정말 이상했습니다. 처음엔 민족성 탓인가, 성격 탓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직결되지 않는 이익을 어거지로 결부시키는 부조리한 원리가 분명히 내재하리라고. 이를 테면, 빨리 갈수록 휴식시간이 늘어난다거나, 늦게 갈수록 월급이 까인다거나 하는. 그 원리를 타파하지 않는 이상, 버스기사들은 영원히 난폭하게 운전할 겁니다.

이 얘기를 왜 하나. 경찰의 폭력진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돌출행동을 하는 개인이 나오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훈련받은 조직이 떼로 그럴 때엔 확실히 배후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겁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아마도 경찰이 개념을 찾기 전에 시내버스 운행이 얌전해질 것 같습니다…

끝으로- 대선 직후, 저는 앞으로의 몇 년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대한민국에 확립된 민주주의를 믿…고 있었습니다.

저를 정말로 두렵게 하는 것은 미국 소가 아니라, 이를 테면, 이명박 대통령이 컴맹이라는 것을 핑계로 청와대의 전자문서 시스템인 이지원을 내다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석에서 구두로 결정되는 전근대적 정치로 회귀해버려서, 나중에 이명박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못했나 살펴볼 수 있게 해줄 증거가 애초에 만들어지지조차 않는 것입니다. ㄷㄷㄷ 전 이게 정말로 진짜로 무서워요.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또한,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각종 공사 사장 등을 을러대어 물러나고야 말게 하는 정부의 야매질입니다. 이런 것은 제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견제 장치인 법치주의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5년간 통채로 말아먹는 거야 설마 불가능하겠지만, 얼마나 허물어질지 걱정은 꽤 됩니다.

정치, 종교 관련글 자제?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라던가, 그런 모임에서 운영하는 게시판 등등에서 주로 접해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그게 왜 그런 것이냐 하믄, 정치나 종교 관련 얘기는 친목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거꾸로, 딱히 친목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곳에서까지 정치적, 종교적 침묵을 요구하는 것은 좀 오바입니다. 특히나 개인 블로그에서는 뭐 선교 활동을 하든, 정치 알바 노릇을 하든 주인장 맘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스무 살 넘은 성인이 정치적, 종교적 입장조차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흉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드러내는 블로그를 운영할 것이냐, 감추는 블로그를 운영할 것이냐 하는 건 자기 맘이겠지만.

그나저나 정치, 종교적인 것이 왜 친목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느냐 하믄, 정의상, 정치적, 종교적 어쩌고는 어쨌거나 서로간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걸랑요.

제 특기가 바로 무리한 도식화인데, ㅋㅋㅋㅋ,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믄, 우선, 정치적인 것-은 주어진 모든 사실들을 각자가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나서도 서로간에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입니다. (ex. 물이 반이나 찼군요. vs. 물이 반밖에 안 찼군요.) 그래서 정치 얘길 제대로 하려면 대체 어디에서 서로 입장이 갈리는 건지 사실 합의의 상한선을 일단 확인하는 게 중요해요. (ex. 이 컵의 용량은 240ml인데, 물이 120ml 들어있음. ㅇㅇ)

그리고 종교적인 것-은 심지어 주어지는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아가면서까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로 종교적인 것입니다. (ex. 이 잔에 든 것은 H2O, 즉 병시나 산소 물이군요. vs. 이 잔에 든것은 물이 아니라 피이니라. vs. 이 잔에 든 것은 무안단물이니라.)

이 얘기를 갑자기 왜 하느냐.
요즘 모기불 통신의 기불이님께서는, 끽해야 쫌 정치적인가? 싶은 이야기를 쓰고 계실 뿐인데(그나마도,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걸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께서 왱알왱알거리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