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의 부리

왠지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 떠는 느낌. (나 아무래도 도킨스에게 단단히 세뇌된 듯…) 그러니까 현재진행중인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호들갑. 근데 과연 그럴까? 핀치 자료를 들이밀면 진화를 못 믿던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당신은 손톱이 자라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깎아보면 아는 거지 무얼.

부리의 1쩜 몇 미리 차이가 생사를 결정지었다고 감격하던데, 평균의 차이가 그 정도라면, 죽고 살은 집단간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얼마나 됐을지 조금 궁금했음.

스타일에 있어서도, 중간중간 고전 인용도 왠지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나중에 폼나라고 끼워넣은 것처럼 따로 노는 듯했음. 쩝.

나방 색깔이나, 물고기 색깔이나, 핀치의 부리 길이가 오락가락한다던가 하는 것은, 물론 자연선택의 작용인 것이 분명하지만, 창조론자 입장에서는 신이 설계한 원형prototype이 그 정도쯤은 가변적이었다고 선언해버리면 그만일 듯. 실제로도 새로 나타난 형질이라기보다는, 유전자 속에 숨어있던 과거의 형질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나타난 것을 목격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도 꽤 있다고 생각하고. 창조론자의 입장에서 목격하고 싶은 “진화”는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그런 진화지. 따라서 여전히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자연 상태에서는. 지성과 기록의 역사가 일이만년 안에 끝장나지는 않기를 바랄 수밖에.

말 나온 김에, 나 같이 집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은, 무언가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설득당한다. 실제로 검증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 책에서는 이런 걸 좀 흉보지만. 어쨌든.

더글라스 아담스 형이 이런 독실한 마음가짐을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는데, 다음과 같다.

Anything that happens happens, anything that in happening causes something else to happen causes something else to happen, and anything that in happening causes itself to happen again, happens again. Although not necessarily in chronological order.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고,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일이 다른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을 일어나게 하고,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일이 스스로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다시 일어난다. 굳이 꼭 시간순서대로일 필요는 없다.

진화 오라토리엄까지는 아니더라도, 진화 텅트위스터쯤은 되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진화를 떠받드는 무신론자인 이유를 셜록 홈즈께서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는데, 다음과 같다.

“When you have eliminated all which is impossible, then whatever remains, however improbable, must be the truth.”

“불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시키고 나면,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진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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