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과 빵상 아줌마

이번에 대선 후보로 출마해서 이인제와 얼추 맞먹는 득표율로 기염을 토했던 허경영 경제공화당 총재.
그리고 케이블 채널에서 외계인과 소통한다는 기인으로 소개되었다가 각종 인터넷 UCC의 소재가 되고 있는 빵상 아줌마 황선자씨.

요즘 인터넷은 물론이고 각종 주류 매체에서까지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 인물입니다.

우선 허경영씨 얘기부터.
허경영씨는 이번 대선 이전에도 딴지일보와의 이너뷰를 통해 인터넷 상에서는 황당한 사람으로 나름대로 널리 알려졌던 분입니다. 저는 이 분을 보면서 이번 미국 대선에 출마한 스티븐 콜베르가 떠올랐는데요.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대통령이 될 리가 없으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시도)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 자체와 그 과정이 적어도 일부 국민들에게 색다른 웃음을 선사했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꼽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외면적인 공통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상을 들여다 보면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스티븐 콜베르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의 미국 대선 출마 해프닝은 거대자본과 권력을 소유한 미디어와 그 스폰서에 의해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된 쇼비즈니스이며, 극예술의 사회 참여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어트려버리는 일종의 아-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대선과 관련해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싼 작가들과 변호인단에 의해 일정 선을 넘지 않도록 정밀하게 조율될 것이고, 만약에 어쩌다 그 선을 넘어가는 일이 있더라도 가능한 법적 피해로부터 스티븐 콜베르라는 ‘쇼비즈니스의 대유기 생명체 접촉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즉, 우리는 그를 보면서 안심하고 웃고 즐겨도 된다는 보장이 있는 거죠.

하지만 허경영씨는, 제가 아는 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뒤를 봐주는 거대자본이나 권력 그런 거 없이 혈혈단신입니다. 그가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쏟아내는 기이한 말과 행동들은 사전에 작가들에 의해 준비된 개그가 아닙니다. 그것은 눈 앞에서 벌어진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 만큼이나 생생한 현실입니다. 그걸 보면서 깔깔 웃는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입니다. 그 슬픈 웃음을 노리고 그를 게스트로 초청하는 피디는 아주 나쁜 새끼입니다.

(여담인데, 허경영씨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모르긴 몰라도 대선출마 보증금 5억이라던가 하는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국이 좀 더 선진국이었다면 아마 어느 단계에서 걸러졌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한국 대선이 진입장벽의 높낮이 조정에 실패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5천만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 선거쯤 되는 데에 아무나 출마할 수 있어도 안 되긴 하지만, 웬만한 사람이 출마할 수 없어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매번 이건 아닌데 싶은 사람이 한두 사람 정도 출마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는 것은 상당한 선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진입장벽을 사알짝 올리는 바람에 억울한 사람 한두 명 못 나오는 것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과 대화한다는 빵상 아줌마의 동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해본 것은 이게 대체 어느 방송국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중파에서 이런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면 정말 용서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가끔 비슷한 수준의 방송이 보이긴 하지만 말이죠.) 아무리 젊은 여자들을 벗겨대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막장 케이블 채널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 보셨나요? 그 영화에는 외계인이 지구인으로 위장해서 살고 있다고 믿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외계인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해 이상한 헬멧을 쓰고 있죠. 그 역할을 신하균이 맡아서 연기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의 생각과 행동은 기이하기 짝이 없고 보기에 우습다는 점에서 빵상 아줌마와 무척이나 닮았죠. 하지만 역시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시겠어요? 그것은 바로- 하나는 영화고, 하나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녀를 보면서 깔깔 웃는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입니다. 그 슬픈 웃음을 노리고 그녀를 취재/편집해서 우스갯거리로 만든 피디는 아주 나쁜 새끼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사람들 모이면 술이나 쳐마셔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에 오락거리가 부재하기 때문일까요? 보건복지 재정이 부실하기 때문일까요? 채널러 등에 대한 사회인식이 부족한 탓일까요? 미디어에 착취당하는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줄 시민단체는커녕 의인 하나조차 없기 때문일까요? 우리가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어려워진 첨단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어려워할 정도로 입시 위주의 교육만을 받고 있기 때문일까요?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귀찮아할 정도로 파렴치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람은 현실감이 없기 때문일까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저 한 순간의 웃음이라도 목마르기 때문일까요? 주류 미디어 자본조차 소재를 창조할 작가를 사지 못하고 현실에서 주워다 써야할 정도로 영세하기 때문일까요?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희생 제물을 발명해낼 정도로 문명화된 원시부족 사회이기 때문일까요? 왜 웃긴지는 상관없이 그저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일종의 결과만능주의 탓일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경영과 빵상 아줌마”에 대한 10개의 생각

  1. 사람들의 집단적인 행동양식을 문화라 부른다면, 코베어 리포트 같은 코미디 를 만들고 즐기는 문화와 한국 코미디를 만들어 내는 문화의 차이가 크지 않겠습니까. 이전에 쓰신 글 처럼, 한국에서 코베어 리포트 처럼 사람들을 놀린다면, 정치인들이나 시청자들이 너무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인신 공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반대로 미국에서 한국 코미디처럼 허본좌나 빵상 아줌마를 놀리면 사람들이 폭력적이고 잔혹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저도 코베어와 코미디 센츄럴의 고정 시청자인지라, 벌써 한국 방송들이 잔혹하다고 느낍니다. 드라마던 코미디건 주위 사람들을 때리고 굴리고 시원하게 까야 웃긴 상황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걸 시청하면 저는 그 폭력성에 얼굴이 찌푸러집니다.

    글쎄요, 저도 그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문화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 !@#… 미디어가 현실의 개인을 착취하는 것이야 어느 ‘선진 자본주의사회’ 인들 다르겠습니까… 그 개인들이 스스로 미디어에 착취당하고 싶어서 나선다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콜베르 리포르가 있어도, 제리 스프링거쑈도 있으니). 다만, 황당한 가십과 천박한 재미를 모토로 삼는 미디어가 하는가, 아니면 무려 지상파 공영방송이 그러고 자빠졌는가의 문제는 정말 큽니다.

  3. A/ 콜베르가 놀리는 정치인들은 적어도 암묵적이나마 대등한 상호 계약 하에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위의 두 인물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콜베르도 대상을 시원하게 까긴 마찬가지인데- 적어도 그는 링 위에서 심판 두고 장구 갖추고 투닥거리는 것이라면, 허경영이나 아줌마는 뭐랄까 건장한 패거리가 길 가던 노인네를 밟고 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유가 혹시 문화 차이라고 하더라도 극복되어야 할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c/ 하긴 “선진국” 미국이야말로 저질 리얼리티쇼의 원조군요. 착취가 훨씬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서로 장단점을 비교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게는 이게 개똥녀/술똥녀랑 비슷한 상황처럼 보여요, 당시 네티즌의 역할을 미디어들이 하고 있을 뿐.. 그런데 제 검색 실력 탓인지 흥미 위주의 방송/기사만 눈에 띄더군요.. 누드사진을 규탄하고 개똥녀/술똥녀 사태를 개탄하던 언론인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어요.

    이/ 대선 치르는 동안에야 언론에서 형식적인 예의나마 갖추고 있었습니다만, 요즘 테레비에 나오는 걸 보면 빵상 아줌마와 거의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 같더군요. 쩝.

  4. 핑백: 민노씨.네

  5. 허씨와 빵씨를 소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의 장애를 보고 놀리고 비웃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정말 씁쓸하더군요. 아마도 한국에는 돈의 논리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 자체가 아예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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