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시장에 기반한 경제체제는 이미 해체된 지 오래에요. 사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 없던 시절에나 주창하던 허울 좋은 슬로건이죠.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계획경제만한 것이 없어요. 문제는 초기의 계획 경제라는 것이 발상은 좋았는데, 처리해야 할 경제 규모에 비해 그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도구라고는 연필과 종이밖에 쓸 수 없던 시절이었던 지라, 그저 주먹구구식 돌려막기에 불과했다는 거에요. 사실 역사 시대를 통틀어 관료제 정부가 존재했던 나라 치고 어느 정도는 계획 경제 체제가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기도 하구요. 근현대에 이르러 국가 경제규모의 확장이 처리능력의 향상을 크게 앞질러 버렸던 것 뿐이죠. 생각해 보세요. 한 세기 전에 이미 증기기관과 내연기관 등으로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이 나라 저 나라와 온통 연계되어 일국의 경제규모는 커질대로 커졌어요. 이런 경제를 계획하는 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봤자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케인즈쯤 되는 천재들이 각 나라마다 수십 명씩 있었다면 모를까. 웬만한 대가리 아무리 모아봤자 별 거 안 되거든요. 여기를 건드리면 저기가 터져나오고, 저기를 건드리면 여기가 터져나오고. 터지면 메꾸고, 메꾸면 또 터지고. 그 꼴을 겪고 나니, 자유시장이 역시 최고라는 인식이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널리 퍼지게 된 거죠. 그런데 사실은 아니라는 거죠.”

이게 뭔 개소린가.

“그런데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충분히 많은 경제주체들끼리의 상호작용에 경제를 내맡기는 꼴이거든요. 마치 생태계 같은 거죠. 건드리지 않고 그냥 방치해두면 알아서 대충 잘 돌아가고, 타격을 입어도 저절로 회복되는. 이런 식의 경제 체제는 물론 꽤 안전하긴 해요. 대체로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역시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체제까지는 못 되고, 정말로 위험한 수준의 위협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대안이 없던 시절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컴퓨터 성능이 좋아진 지금은, 이를테면 지구 크기의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만들고도 남는다 이겁니다. 더 이상 경제라는 생태계를 자체 보존 기능에만 맡겨두고 방치할 필요가 없는 거죠.”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내가 물었다. “그럼 정부의 경제 관련 정책들은 뭡니까? 그게 다 저 컴퓨터의 지시사항인 겁니까?”
“몇몇은 그렇죠. 하지만 대개의 정책들은 그냥 마음가는대로 펼치는 것이에요. 경제의 핵심 부분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컴퓨터가 알아서 조정해주거든요.”
“경제의 핵심 부분이라니요?”
“그러니까, 국제 경제 속 우리 국가 경제의 전체적인 흐름을 결정짓는 거시적 경제변수들은 이미 컴퓨터의 완전한 통제 하에 있습니다. 왜 몇 년 전에 대한민국이 OECD에 가입하지 않았더랬습니까? 그게 사실은 무슨 경제 컴퓨터로 구동되는 나라들의 모임 대충 그런 뜻이에요. 이미 가입된 나라들이 가입되지 않은 나라에 기술 이전은커녕 그게 뭐하는 모임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지만, 뭔가 낌새를 눈치챈 나라들이 자체적으로 무슨 수를 써서든 그러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고 나면, 자동적으로 편입이 되는 거죠. 몰래 만들어 쓸 수도 없어요. 컴퓨터로 계획된 경제체제의 패턴 인식 기능은 시스템에 덤으로 따라오다시피 하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EU처럼 개별 국가들 여럿이 모여서 만든 사례도 있긴 하군요.”

“그럼 대통령은 뭐하러 있는 겁니까?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대통령이 무슨 경제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것들은 다 뭐에요.”
“음, 그게 좀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인데요. 이런 말 들어보셨죠? ‘ 이게 다 대통령 누구 때문이다…’라는 말… 대통령은 바로 그걸 위해서 있는 겁니다.”

이 새끼가 장난하나. 어디서 포탈에 악플다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그게 무슨 이유야. 험악해진 내 표정을 잠시 살피더니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농담이 아니에요. 아무리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도 국지적인 부작용까지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계산된 오차범위내의 부작용만을 초래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믿을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그걸 컴퓨터가 계획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왠지 화가 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집이 무너지는 이유, 내가 잘리는 이유, 세금을 올리는 이유… 이게 모두 어딘가의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웬놈의 프로그램이 내놓은 계산 결과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도대체 왜 컴퓨터 따위가 계산한 밝은 미래를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해야 하나?’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 것이 뻔하죠.”

“그거야 교육 수준을 높이고, 잘 설명하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완화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닙니까?”
“그렇지가 않아요. 비슷한 예로, 병을 진단해주는 프로그램이나 수술을 해주는 로봇도 이미 예전에 출시되어 웬만한 의사보다 나은 성공률을 보여준다는 얘기 들어보셨죠? 하지만 실제 현장에는 투입할 수가 없어요. 바로 환자들의 불신과 불명확한 책임 소재 때문이죠. 아무리 사람보다 성능이 좋다고 설명해주고 보여줘도 도무지 믿지를 않아요. 아니 설사 그걸 믿는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요. 오진이나 의료 사고로 인한 피해를 과연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보험 등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다 치더라도, 사람들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콩밥도 먹이길 원하거든요. 손가락질할 수 있는 대상을 원하죠. 불합리한 인간을 위해서 일하는 기계와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불합리해져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 의사 프로그램 개발자나 수술 로봇 설계자, 그것도 아니면 기계를 만들었거나 점검하거나 작동시키는 기술자를 욕하면 될 거 아니에요?”
“아까도 곤란하다고 말씀드렸듯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니까요. 사실 프로그램 개발자나 로봇 설계자는 완벽하게 만든 거나 다름 없거든요. 평균적인 인간 의사를 상회하는 진단율과 수술 성공율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100%라는 건 현실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 완벽한 물건조차도 오작동이 아닌 완전한 정상작동을 통해서 오진과 사고를 일으킨다는 말이죠. 사람 몸이 그렇고, 이 물리적 세계가 그렇고, 그것과 관련된 수학이 그래요. 이건 더 이상 설계 미스나 프로그램 버그도 아니고 점검불량이나 오작동도 아니고, 그저 통계학적인 문제에요.”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끄는 프로그램이 벌써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그 수준에 이른 정도가 아니에요. 완벽 그 자체죠. 더 이상 완벽할 수는 없어요. 실제 우리 경제 속에 일어나는 온갖 혼란과 정부실패처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갖가지 시장실패 역시 사실은 모두 미리 예상된 국지적 현상들일 뿐이에요. 모든 것은 예정대로 착착 좋아지게끔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죠. 정말로 태양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돌발 변수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어요. 거의 모든 자연적 변수들과 모든 인위적 변수들이 포함돼요. 심지어 혁명이나 전쟁도 예상되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OECD에 가입되어 있는 웬만한 선진국들은 이미 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서로 간에 주요 인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시켜 놓았기 때문이죠. 뭐 각자의 행위가 자동적으로 수집되기 때문에 일부러 공유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죠. 사실상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가, 그리고 실제로 구현해냈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선진국들 모임이랍시고 만들어놓고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대체 뭘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문에 나오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하는 건 그냥 즐겁게 놀다오는 파티일 뿐이고, 같이 간 관련 기술자들이 밑에 따로 모여서 디버깅이며 프로토콜이 어쩌고 하는 얘기들만 하다가 와요. 산유국들도 비슷한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고는 하더군요. 전반적인 경제 컴퓨터까지는 아니고, 석유에 관해서만 운용할 수 있는, 핵심기능을 뺀 제한적인 솔루션을 러시아에 돈으로 샀대요. 선진국들로서도 뭐 손해볼 건 없죠. 돌발 인자가 그만큼 줄어들고 예측 가능한 인자는 크게 늘어나는 셈이니까. 러시아가 몰래 백도어를 심어놨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좀 말이 안되고요. 하여튼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다…’라는 것은 단순히 유행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책임 소재를 찾아서 비난해야만 비로소 기분이 풀리는 개별 국민들로부터,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보장시켜주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대통령이 없다면 우리 국가 경제는 며칠 안에 완전히 마비될 겁니다. 덤으로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가려주는 장막 역할도 해주고 있구요.”

“그게 말이 돼요? OECD 가입국들이 전부 대통령을 가진 것도 아니잖아요. 그 나라들은 대통령 없이도 잘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
“그럼 한국도 대통령이 없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솔직히 그건 좀 타성적인 측면이 있어요. 뭐 굳이 우리도 대통령제 말고 딴 걸로 하자면 할 수도 있죠. 그런데 괜히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나 할까요. 고장나기 전까진 그냥 쓰는 그런 느낌이죠.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경우엔 고장날 리가 없다는 것 정도? 현재 대한민국은 그냥 대통령 임기 끝날 때마다 새 대통령으로 갈아치우는 것만으로도 잘 돌아가고 있어요. 덕분에 욕하는 사람들도 질리지 않고요.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모방해서 대통령 대신 다른 사람이 욕을 먹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그런데 뭐하러 그래요. 요는 우리 대통령에 해당하는 인물을 컴퓨터 구동 경제 체제를 가진 다른 모든 국가들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임기에 차이가 있기도 하고, 한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똑같아요.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책임 소재, 비난 대상을 던져주는 거죠. 이건 그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일 뿐이에요. 누구는 빵을 먹고, 누구는 햄버거를 먹긴 하지만, 힘쓰는 데 쓰이고 나머지는 똥 되는 건 다 마찬가지죠.”

“그럼… 이 사실을 국민들이 알면 안되겠네요?”
“당연하죠.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죠. 그건 연예인의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는 거랑 비슷할 거에요. 알고 보면 뻔한 건데 기정사실화되면 절대로 안되는, 그런 정보죠. 이 컴퓨터의 존재는 궁극적으로는 숨길 수가 없어요. 언젠가는 알려질 수밖에 없죠. 그 시기는 대략 15년에서 20년 후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다 우리 컴퓨터가 계산해낸 결과죠. 그 때쯤 되면 각자 독립적으로 그 실체를 파악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수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매크로로 주식투자를 하는 개인들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때쯤엔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대충 되어, 충격 역시 계산 범위 내로 천천히 완화된다는 거죠. 그때 가서 대통령 대신 내세워 욕먹을 후보들을 여러가지 시험해보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가정용과 휴대용 전자오락기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더군요. 어차피 그때쯤엔 개별 국가가 아니라 전체 세계 단위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어느 나라 사람 하나를 데려다 앉히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지기도 할 거에요.”

“어차피 알려질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네. 갑자기 대통령의 실체가 알려져버리면 그 시기를 무리하게 앞당기는 꼴이 되어버려요. 완화는커녕 잘 달리던 차를 콘크리트벽에 꼴아박는 셈이 되어버리죠.”

메롱.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에 대한 13개의 생각

  1. 본문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 없지만, 확실히 윗대가리의 가장 큰 임무가 일이 터졌을 때 책임을 뒤집어써 주는 거죠. 엔터프라이즈같은 데면 또 모르겠지만 매니지먼트가 전부인 관료 조직같은데서는 더욱 더. -_-
    며칠 쉬시나 했더니 역시 어김없이 방언 은사가 터져나오는군요. 오오 위대한 날라댕기는 스파게티 괴물님의 촉수 은사를 받으신 분…

  2. 아이 참, 유쾌하기도 하지. 이래서 똑똑한 대통령은 욕을 더 먹게 되어있는 겁니다. 욕을 먹을 자리에 있으면 욕먹을 짓을 해야하는데 욕먹을 짓을 안하면 당연히 욕을 더 먹게 되고 (응?) 그래도 안하면 더더더 먹게 되고 (응응?)

  3. 농담을 너무 길게 늘이다 보면 어라 이게 재미가 있는 건가 스스로 알쏭달쏭해지곤 하는데, 그래도 재미있게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스카르/ 상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사실 oecd도 별로 신경 안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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